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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읽기]숏컷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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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읽기]숏컷이었구나?!
  • 노지
  • 승인 2021.07.30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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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무관심》
한승혜 지음, 사우
《다정한 무관심》한승혜 지음, 사우
《다정한 무관심》
한승혜 지음, 사우

어쨌든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스포츠에 대단한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한창 진행 중인 게임까지 외면할 정도는 아니다. 승리하는 경기는 승리까지 해서 좋다. 어떤 경기는 선수들의 기량 자체가 거의 아름다움의 경지에 올라 좋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승리하는 경기일 때 마음이 편하고, 보는 재미도 있다. 양궁처럼 믿음직한 종목은 몇 번이고 되돌려 봐도 좋다. 큰 기대가 없던 수영 경기처럼 또 다른 괴물을 발견한 종목은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데 최고다.

그러니 이런 시즌에 무관심하기란, 게다가 다정하게 무관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 선수를 응원하는 마음은 상대 선수에 대한 적의로 급발진하기 쉽다. ‘우리’ 선수에 대한 기대감은 종종 오버페이스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황선우 아는 척 하지 말자’는 댓글들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과거 박태환 선수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너무 큰 부담감 때문에 스타트 실격을 했던 일을 기억하는 네티즌들은, 결선 진출이 목표였다는 황선우 선수를 ‘모르는 척 하는 것’으로 응원했다. ‘황누구 수영 선수야?’, ‘황선우가 누구야? 황선홍은 알아.’, ‘황시목이 이번에 수영해?’, ‘그래서 우리는 이 선수 언제 아는 척 하면 돼?’ 등등의 댓글로 재치 있는 응원을 보냈다. 이 호들갑스런 모른 척 속에 담긴 귀여운 선의와 진심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장착하는 매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정한 무관심’은 이상한 조어지만, ‘황선우 모른 척하기’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진의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부제가 ‘함께 살기 위한 개인주의 연습’이라는 사실을 덧붙이면 조금 더 다정해 보이려나. 한 사람의 개인으로 잘 존재하기 위해서,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적당한 거리두기 그게 여기서 말하는 ‘다정한 무관심’이다.

책에는 ‘노브라’에 관한 에피소드가 하나 등장한다. 자신이 노브라인 걸 선언하는 여성들의 SNS를 보던 어떤 남성의 볼멘소리. “혼자서 안 하면 되는 일을 굳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느냐”는 것이다. 브라가 불편하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티 내지는 말아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알기는 알 거다. 티 내지 않고 노브라로 살 방법은 별로 없다. 모든 계절에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패딩만 입고 사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노브라를 선언하는 여성들은 속옷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를 고백하는 게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선언 같은 걸 하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피곤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는 사람은 더 피곤하다.

이 에피소드에 덧붙여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홍어를 먹을 때는 남몰래 요청해서 먹었다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홍어는 일종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낙인의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소한 것까지 다 신경 쓰고 피곤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불평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사실은 그 ‘피로함’이야말로 포인트이다.” 자기 정체성을 그렇게 피로한 방식으로 증명하거나 감추어야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차별당하고 싶지 않다고? 그럼 네 정체성을 감춰. 헤어스타일을 바꿔. 게이임을 드러내지 마. 사투리 쓰지 마. 브라를 하고 다녀. 히잡을 쓰지 마. 홍어를 먹어서는 안 돼. 장인이라 불편하다는 얘기를 하지 마.”

하지 말아야 할 것 투성인 세상이고, 어떤 대목에서 오해의 과녁이 세워질지 모르는 세상이다. 양궁의 메달리스트인 안산 선수는 요즘 온라인에서 가장 들끓는 과녁이 되었다. 숏컷 헤어스타일, 광주 출신, 세월호 뱃지 착용 등등이 '페미니스트' 징표로 제시된다. 나는 그녀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 궁금하지 않다. 설령 그녀가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전혀 좋아하지 않는 방식의 마초 성격을 뿜어냈더라도 양궁 선수로서 응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안산을 향한 이상한 아우성은, 지금 이곳이, 숏컷 여성들에게, 광주 출신들에게, 세월호 사건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편견 가득한 세상이라는 불편한 진실만을 확인시킬 따름이다. 그 편견은 종종 악의적이다. 《다정한 무관심》에서 저자는 에릭 호퍼를 인용한다. 우리 증오의 생김새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말이다.

“증오는 우리의 부적합함, 쓸모없음, 죄의식, 그 밖의 결함을 자각하지 못하게 억누르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표현이다. 여기서 자기 경멸이 타인에 대한 증오로 변질되며, 이 변질을 숨기기 위해 매우 단호하고 집요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 부정적 에너지를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나와 다른 그에 대해서 조금 덜 미워하고 조금 더 다정할 것, 나와 다른 그의 정체성에 대해서 조금 덜 집요하고 조금 더 무관심해질 것. 이런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따름이다.

뒤돌아보면 나 역시 학창시절 내내 늘 숏컷이었다. 그리고 머리 때문에 언제나 칭찬 받았다. 귀밑 3센티미터라는 단발 규정을 한 번도 어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교실 앞에 불려나가 모범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군인처럼 짧은 머리를 한 선생님이 막대봉을 한 손에 쥐고 말했다. 머리치장 하느라 괜한 반항하지 말라고. 그는 그게 나를 얼마나 치욕스럽게 만들었는지 모를 것이다. 스무 살 이후 나는 십여 년 동안 숏컷을 한 적이 없다. 지지고 볶고 노랗게 조금 더 노랗게 물들이고 다녔다. 몹쓸 세상이여, 내 머리에 조금 더 다정해다오. 나의 순종과 반항에 조금 더 무관심해다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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