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파우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43파우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몇 년간 한의원 상담석 옆자리엔 항상 제주 4·3에 대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소개한 “What is the Jeju April 3rd uprising and massacre?(4·3 항쟁과 학살이 무엇인가)” 영문 책자가 지키고 있다. 미국 환자들에게 책자를 읽어보라고 권유하면 대부분 다음 진료 때까지 성실히 읽어 온다.

그들의 반응은 대체로 같다. 일단 3만 명 이상 희생된 사건이란 것에 충격을 받고, 자신을 치료하는 의사가 희생된 유족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위로와 함께 굉장한 유대감과 공감을 보낸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다.

20년 넘게 미국에서 살다 보니 그들의 반응은 충분히 예견할 정도는 된다. 철저한 주관적 판단이지만 그들은 대체로 개인간의 감정 공감 능력과 표현은 상당히 뛰어나지만, 그 감정이 생기게 된 상황이나 전체적인 배경 부분으로 들어가면 자신들의 감정이나 의견들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부분 때문에 공동체 의식보단 개인주의적 경향이 강하다고 하는 것 같다.

전체적인 배경과 상황에 대한 설명과 이해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역사적 사건들과 그 당시 시대를 지배했던 사상과 경제체계, 정치적 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해야 하고 자료들을 찾아내야 하는데 감히 내 수준에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작업이었다.

거기에 더해 미국 한인사회는 대부분 박정희 시대나 제5공화국 시절 미국으로 이민 온 세대가 주를 이룬다. 젊은 시절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왔기에 한국의 정서 역시 젊은 시절 반공과 보수로 철저히 무장된 분들이 대부분이다.

제주 4·3을 이야기하면 빨갱이 남로당원들이 일으킨 폭동이고 그 폭동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이 죽어간 사건이라고 어렴풋하게 인식하고 있다. 지금은 의식 전환들이 많이 되었다고 한들 아직 제주 4·3의 길은 길고도 먼 여정의 길임에 틀림 없다. 

한인사회나, 미국 주류사회나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접근 방법을 고민하다 지쳐갈 무렵 강호진 4·3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 소개로 보스턴에 있는 양수연 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양수연 대표 역시 4·3유가족이다. 그의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가 4·3 희생자들이며 큰아버지는 불법 재판을 받아 무죄 선고된 355명 수형인 중 한 분이시다. 7월 29일에는 죄없이 광주 형무소에 갇혀 행불이 된 작은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일반재판 재심청구를 했다고 한다.

이런 가족사를 둔 그녀의 아버지는 4·3의 아픈 트라우마를 마음과 영혼속에 가둬둔 채 삶을 살다 지금은 제주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양수연 대표(현 미주기념사업회와 유족회 회장)와의 만남은 내 고민의 매듭을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2017년 5월24일 백악관 앞에서 미국이 4·3 진상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사진=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공)
2017년 5월24일 백악관 앞에서 미국이 4·3 진상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사진=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제공)

미국 주류사회에  4·3의 전체적 상황과 배경에 대한 설득은 지속적인 영문저널 발간과 한국과 미국 내 대학생들에게 직접 교육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데 우리는 의견을 같이 했다.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7월 16일 정식으로 재미 4·3기념사업회와 유족회를 출범하게 되었다. 공식 명칭은 '4·3 FAU- Jeju 4·3 memorial and families association of the U.S.'다. 약칭은 4·3FAU(4·3파우) 현재 존스 홉킨스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김유정 씨가 사무총장을 미흡한 내가 부회장을 맡았다. 

미국은 유독 도서관 문화가 많이 발전했다. 각 동네마다 도서관이 있고 이곳에서 각종 세미나, 모임 등도 가능하게 되어 있다. 더욱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너무나 친숙하게 방문하는 곳이 도서관이다. 시간 나면 나도 도서관을 찾아 한국 책들을 뒤적이곤 한다.

영문저널 발행 타깃은 미국 도서관이 될 것이다. 미국 각 지역 도서관에 제주 4·3저널을 배포한 뒤 관심 있는 분들을 조직해 이들에게 제주 4·3을 알리는 세미나를 개최할 계획이다. 저널 발행과 세미나 교육을 진행 할 청년위원회 10명도 이미 뽑아 놓은 상태다. 

이들은 Johns Hopkins University(존스 홉킨스 대학교), Northeastern University(노스 이스턴 대학교), Boston College(보스턴 대학), Brandeis University, MCPHS(Massachusetts College of Pharmacy/ 보스턴 소재 약대), 경희대학교, 서강대학교 재학생들이다. 각 대학교수와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아 선발하였다. 프로그램의 이름은 Walden Korea(월든 코리아)다.

월든은 미국의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하버드 대학 졸업 후 현대의 문명사회에 대한 반성과 대안으로 2년간 은둔한 곳이다. 자립과 평화와 친자연적인 검소한 삶을 통해 인간 주체성에 대한 확신을 설파한 사상적 토대기도 하다. 월든은 미국인들에게는 마음의 수도원과 같은 곳으로 나약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이상주의적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의 사상에서 피어나는 향기는 과거 우리 제주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 도둑도, 대문도, 거지도 없는 친자연적인 곳에서 철저히 하나가 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살았던 곳. 삶은 가난하고 척박했지만 사람들간의 유대감은 진실로 강했다. 이상적인 인간들이 모여 힘든 삶을 의지하며 살았던 아름다운 공동체 '제주'

'4·3파우'는 미국에서 '코리아 월든 제주'를 기억하게 만들것이며, 이상적 사회였던 제주가 어떻게 이념의 칼날 아래 쓰러져 갔는지 미국인들에게 알릴 것이다.

월든 코리아 제주를 늘 사랑하고 기억하며, 지면에 일일이 밝히지 않지만, 출범식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양영준
제주 한경면이 고향인 양영준 한의사는 2000년 미국으로 이주, 새 삶을 꿈꾸다. 건설 노동자, 자동차 정비, 편의점 운영 등 온갖 일을 하다가 미 연방 우정사업부에 11년 몸담은 ‘어공’ 출신. 이민 16년차 돌연 침 놓는 한의사가 되다. 외가가 북촌 4.3 희생자다. 현재 미주제주4.3유족회준비위원을 맡고 있으며 민주평통워싱턴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다. 제주투데이 칼럼 [워싱턴리포트]를 통해 미국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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