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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최저임금 현실화와 원청 사용자성 인정 요구하는 민주노총 집회. (사진=독자 제공)

 

고등학교 졸업 후 늘 일을 했다. 주휴수당 미지급을 위해 근로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대형 커피전문점 '알바생'이기도 했고, 퇴직금 미지급을 위해 공공기관과 ‘쪼개기 계약’을 맺은 '청년인턴'이기도 했다. 휴게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백화점에서 초과 근로를 군말 없이 받아들였던 '감정근로자'기도 했고, 비영리단체에서 이른바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는 '활동가'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해서는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 '시간제근로자'기도 했고, 88만원 세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기성세대기도 했고, 부당해고자의 자리를 메워 '일이 돌아가게 만든' 동조자기도 했다.

만성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한국사회에서 노조 없는 사업장 근로자는 ‘까라면 까’야 했다. 고용노동부 '전국노동조합조직현황'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이 2019년 기준 12.5% 뿐이라니 입사한 회사마다 노조가 없는 것도 당연했다. 최근 제주 화북공업단지 내 제조업체는 노조 활동을 방해하려다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기도 했다. 

1980년 오월의 봄을 지나 1987년 6월 항쟁 성과로 이제는 대통령도 직접 뽑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민주주의는 언제나 회사 문 앞에서 무너졌다' 

다른 사업장에서 원직 복직을 위해 싸우는 해고 노동자,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 체불임금을 받기 위해 고층건물에 올라간 한시직 노동자. 그들 역시  '알바생' '청년인턴' '시간제근로자' '감정노동자'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일용직' '프리랜서' 등으로 불렸지만 서로 동일 노동자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충격적 사건들'을, 개별적 존재에게 일어난 '불행한 사고' 정도로 여겼다. ‘공장을 멈추면 손해가 발생하고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기업 입장을 걱정하는 일부 언론 보도에 일견 동의하기도 했다.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살고, 경제가 살아야 국민도 잘 살 수 있다니까. 

최저임금 오르면 시급도 오르겠지 했는데 오히려 점장은 근무시간을 줄였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만 시작되면 경영계는 '경제 위기론'을 꺼내들었다. 다니던 회사는 "상황이 어렵다"며 월급 동결을 요구 해놓고, 개인용도로 쓰는 법인차량을 '재규어'에서 '포르쉐'로 바꾸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은 1,933조로 2019년 기준 세계 12위 규모라는데, 시간과 열정을 갈아넣어 받은 월급은 한 달 고정비(집세·공과금·식비 등)로 반 토막 났다. 좋아하는 사람 밥 한끼 사주는 일에 인색하고 싶지 않은데, 좋아하는 커피 사 먹는 일에 주저하고 싶지 않은데, 밑 빠진 가난은 나와 타인에게 옹색하게 굴게 했다. 

1987년 8월 18일 현대중공업에서 출발해 남목고개를 넘어 시청을 향해 행진하고 있는 울산 현대그룹 노동자들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987년 8월 18일 현대중공업에서 출발해 남목고개를 넘어 시청을 향해 행진하고 있는 울산 현대그룹 노동자들 (출처=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왜 노동자란 계급 정체성 없이 사장실 화초만도 못한 근로자로 살았을까.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롯데·대우조선·현대 등 자본가들이 참여한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심으로 신경영전략 연구가 진행됐다. △노동시장·노동시간·임금 유연화 △현장완결 노무관리 시스템 도입 △종신고용·연공서열·멸사봉공 등 일본식 기업문화 도입 △공기업의 민영화 등이 신경영전략의 주요 내용이다.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모는 정리해고, 파견근로, 비정규직, 탄력근무 논의가 시작된 게 이때부터다. 곧 진출하게 될 사회가 노동자를 근로자로 고쳐쓰고 있는 줄 모르고 천진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다.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종속돼 일한다는 개념으로 사용자 관점에서 노동을 부르는 용어다.

대기업 중심으로 먼저 도입한 신경영전략은 노동 조직 해체와 노동자 통제 측면에서 나름 성과를 보였다. '자본 집행위'라 불리기도 하는 정치권은 신경영전략을 모든 회사로 확장하기 위한 입법화에 나섰다.

김영삼 정부가 정리해고와 근로자 파견제 도입을 위해 추진한 노동법 개악은 노동자들이 '96-97 노동자 총파업'으로 일단 막아놨지만, 1998년 외환위기(IMF)가 찾아왔다.

위기는 신자유주의를 제도화하는데 적극 활용됐다. 김대중 정권은 "위기를 함께 극복하자"며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완전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같은 정책은 대량실업과 고용불안으로 이어졌다. '경제위기'는 벗어났지만 '노동위기'가 찾아왔다. 이때 비정규직 법제화도 소리소문없이 진행됐다. 

2004년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적으로 터지자 노무현 정부는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제정에 시동을 걸었다.  

2007년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된 이 법은 비정규직 대량 해고와 '쪼개기 계약'을 야기해 되레 비정규직 울리는 용도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IMF 이후 구축된 국내 노동시장은 기업 규모(대기업·중소기업)와 고용 형태(정규직·비정규직)에 따라 분절됐다. 

1차 노동시장에 속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법의 보호 아래 고용안정과 꾸준한 임금상승을 누리고 있고, 2차 노동시장에 속한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2차 노동시장에서 1차 노동시장으로 이동 할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졌고, 소득양극화는 점점 심해졌다. 비정규직부터 경험한 'IMF 세대'는 '직장인=파리목숨'이 당연한 줄 알았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 6월 24일 오후 7시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제주지역 노동자대회에 참석한 문순신 제주공항 노동자. (사진=박소희 기자)

제주는 어떨까.

처음 제주에 내려왔던 2014년 “여긴 제주라서 월급은 많이 못준다”는 면접관 말에 제주 자체가 보너스라 최저 생계비만 벌어도 괜찮다 생각했다. 당시 연세 200만 원 안팎으로 농가형 주택 정도는 구할 수 있을 때였다. 

입도 이듬해, 편의점 알바 임금실태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최저임금이 5,580원이었는데, 편의점 노동자들은 4,000원대를 받고 있었다. 2012년 의무화된 ‘근로계약서’도 대부분 작성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하자 한 편의점 노동자는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하니까 일 크게 만들지 마세요”라고 했다. 

시민사회단체가 다니던 커피전문점의 주휴수당 미지급 문제를 공론화했던 적이 있다. 그로 인해 밀린 주휴수당은 받았지만, 주당 근무시간이 줄었다.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알바 하나를 더 구했다. 그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었다"며 사측이 아닌 시민사회단체를 탓했던 기억이 났다. 

부당해도 자족하는 노동, 좀 나아졌을까? 

캐나다에서 유학중인 친척동생에게 유학을 마치면 제주에서 같이 “먹고 살자”고 한 적이 있다. 그 친구가 제주에 놀러 왔던 지난 5월, 전문가 자문에 기초해 만들고 있던 노동기획 초안을 보여줬더니 “이거 보니까 제주에서 못살겠다"며 '제주살이'를 거절했다. 

신자유주의 지침서 신경영전략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부추겼다면, 국제자유도시라는 이름의 제주판 신자유주의 실험은 '임금은 적고 비정규직은 많은' 2차 노동시장을 극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1차 노동시장으로 이동할 가능성 자체가 아예 차단돼 있으니 꿈 많은 청년은 제주살이를 거절 할 수 밖에. 

작년 12월, 35년 전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 노동자로 남은 김진숙 씨의 복직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500여대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모였다.(사진=독자제공)
작년 12월, 35년 전 한진중공업 마지막 해고 노동자로 남은 김진숙 씨의 복직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500여대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모였다.(사진=독자제공)

그래도 으쌰!!

약 5000만의 인구 중 2000만이 자본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임노동자다. 플랫폼 노동자, 농어민, 잠재적 노동자(구직자, 학생, 군인 등) 등 임노동자에 포함하지 않는 수치까지 합하면 더 많다. 

시민 대다수가 노동자인 상황에서 사회 전체는 왜 사용자 편을 들고 있는 걸까. 나도 노동자고, 당신도 노동자고, 시민 대다수 노동자인데, 왜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은 힘이 없을까. 

자본의 편에 선 일부 언론과 정치권은 노동문제를 사회문제로 다루지 않고 시장 혹은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켰다. '최저임금 인상에 휘청하는 경영계'는 걱정하면서도 노동문제는 산업 발전과 국가 성장의 틀 밖으로 은폐시켰다. 이같은 은폐는 사업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 동일한 노동자라는 연결성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노동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인재 도외유출, 농촌 고령화, 높은 자살률, 우울증 증가, 소득격차 등 제주사회가 떠안고 있는 문제를 풀 수 없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전환사회 논의에서도 노동은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생존과 직결된 만큼 지속적인 의제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제주투데이가 창간기획으로 노동편을 준비한 이유다. 전국에서 가장 열악하다는 제주의 노동현실을 진단하고, 생산주체인 지역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존중사회를 위한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래 맹아이므로, 으쌰!! 제주노동.

 

2일 제주시 오라동 소재 사무실에서 글노동 중인 박소희 기자.(사진=김재훈 기자 / 편집 박소희 기자)
2일 제주시 오라동 소재 사무실에서 글노동 중인 박소희 기자.(사진=김재훈 기자 / 편집 박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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