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폭염이 시작되었다. 무더위에 한방 먹어서인지 띵띵한 머리는 제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무거워진 머리만큼 이장일기 내용마저도 자꾸 무거워져 여러 차례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결국 약속한 마감 날짜를 넘겨버리고 말았다. 무더운 여름엔 거하게 차린 무거운 밥상보다 가볍고 시원한 국수가 당기는 법! 그래서 이번 달에는 무더위에 열무김치 국물에 국수를 대충 말아먹듯 최대한 신변잡기적이며 가벼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제목은 이장 사용설명서!

한때 ‘내 몸 사용설명서’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사용설명서는 어떤 제품을 사용할 때 도움을 주기 위해 제작된 소책자 형태의 매뉴얼을 말한다. 이 글은 매뉴얼이라고는 하지만 이장 사용 방법을 설명해주는 건 아니다. 그저 이장 생활에 대해 평소 주변 사람들이 자주 질문하던 것들을 정리해 봤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직업으로서 이장에 도전하고 싶으신 분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 글이라고 애써 의미를 부여해 본다.

#월급 얼마 받아요?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을마다 다르다. 일단 행정에서 이장들에게 교통비와 행정을 보조하는 수고비 명목으로 매월 55만원을 통장에 입금한다. 그리고 우리 마을의 경우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매달 70만원을 이장에게 지원한다.

그럼 120만원으로 생활이 되냐고? 당연히 안 된다. 특히 상호 부조문화가 발달한 제주에서는 경조사비 지출이 많다. 그러다보니 이장들은 대부분 '투잡스'다. 농어업에 종사하거나, 가게를 하시는 분들도 많다. 나의 경우도 4인 가족에 아이들도 어린지라 오전에는 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알바를 뛰고 오후에 리사무소로 출근한다. 물론 인구가 수 천명이 넘는 큰 마을 이장님들은 리정에 전념할 만은 충분한 월급을 받으시는 분들도 있다. 반대로 우리마을보다 더 열악한 곳도 있다고 들었다.

#이장이 뭐, 하는 일이 있나요?

전국 각지 이장들이 들불처럼 일어날 질문이다.(전국의 이장들이여, 단결하라!) 이장의 업무는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행정에서 요구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역할. 그래서 1970년대까지 이장이 별정직 공무원이었는데, 1981년 지방공무원법이 개정되면서 공무원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여전히 관청은 이장을 ‘선출직 10급 공무원’처럼 잘 이용해 먹는다. 마을과 관련해 복잡한 일이 생기면 이장에게 떠미루기 일쑤다. 또 관에서 행사가 있을 때는 동원하기 제일 만만한 자원이다.

관청 뒤치다꺼리와 함께 이장은 마을회의 수장으로서 마을의 예산과 재산 등을 관리하고, 보조금을 신청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민들의 민원 처리를 해낸다. 더불어 이장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단골 민원으로는 클린하우스 쓰레기 분리수거 문제, 가로등 설치 민원, 제초 작업 등이 있다. 집 수도가 고장 났으니 고쳐달라는 경우도 있었다. 또 하루는 새벽에 전화가 울렸다. 집 앞 도로에 로드킬 당한 노루 사체가 있으니 치워달라는 요청이었다.

#몇 시까지 근무해요?

우리마을 리사무소는 평일 오후 5시까지 문을 연다. 하지만 이장(및 사무장) 휴대폰 번호를 주민 대부분이 알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그리고 평일과 주말 가릴 것 없이 벨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바쁠 때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오는 전화를 패스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 차례 반복해 걸려오는 전화를 모를 체 할 수는 없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일요일 오후에도 마을 어르신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8월 10일 말복날 마을 최고령 어르신과 함께 할 오리고기 점심 약속을 잡았다. 암튼 이장의 근무시간은 ‘워라밸’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 좋은 점은 없나요?

이장을 하면서 좋은 점은 무엇보다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해결될 때 느껴지는 뿌듯함이 가장 크다다. 그리고 나처럼 육지에서 온 새내기 제주도민이 알기 힘든 제주마을의 문화를 빠르게 알게 되는 장점이 있다. ‘제주문화단기속성과외코스’라 할 만하다. 마을 포제나 제주의 경조사 문화 등도 이장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다. 부가적으로는 여러 이장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각 마을의 도민 맛집을 찾는 쏠쏠한 재미도 있다. 그 도민 맛집이 어디냐고 묻는지 마시라. 아직 친한 이장님들이 많지 않아서 전수받은 정보가 많지 않다는 건 안 비밀!

영화 '홍반장' 포스터
영화 '홍반장' 포스터

혹여나 이 글을 읽고 이장들의 애환을 조금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고(故) 김주혁 씨와 엄정화 씨가 주연한 영화 ‘홍반장(2004. 감독 감석범)’ 감상을 권한다. 진부하고 뻔한 로맨스만 제외한다면 이 작품이야말로 전국 이장님들의 고충을 웃음과 예술로 승화시킨 역작이 아니던가! 더구나 이 영화는 마을공동체 문화가 살아있는 서귀포 법환마을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코로나19로 극장을 찾기 힘든 요즘, 가족 모두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집콕극장의 상영작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이상영 선흘2리장(사진=김재훈 기자)
이상영 선흘2리장(사진=김재훈 기자)

 

선흘2리 마을회장 이상영 씨는 '20년간 학교에서 지리와 사회를 가르치다 제주로 이주한 지 3년째인 초보 제주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2년 전에 참여한 마을총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이 된 후, 최근 이장으로 선출·임명되었다. 1973년생인 이상영 이장의 고군분투 마을공동체회복기를 매달 1회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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