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휘공 프로젝트 '2018 사남굿설문대' 중 엉장매코지의 퍼포먼스(사진=한진오 제공)
불휘공 프로젝트 '2018 사남굿설문대' 중 엉장매코지의 퍼포먼스(사진=한진오 제공)

세상의 시작이며 끝인 곳에서

하늘이 갰다. 수평선이 바다와 하늘을 위아래로 나누지 않았다면 끝없이 파란 무한의 공간이라고 착각할 만도 했다. 물음표는 바다를 향해 불거진 성벽 같은 바위 언덕을 천천히 타고 올랐다. 누가 다듬은 것처럼 반듯하게 각이 진 바위들이 거대한 돌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물음표는 체스판의 말처럼 바위 무더기 위를 칸칸이 디뎠다.

언덕 끝의 높다란 바위 끝에 올라선 물음표는 마치 바위의 정령이 빙의한 듯 한참 동안 굳은 채 생각에 빠졌다. 생각이라기보다 의문부호 투성이의 궁상이 도진 것이 적실했다. 이곳에 오르면 밀린 숙제가 한방에 풀릴 것 같아 뻔질나게 찾아왔지만 늘 그렇듯 도돌이표만 만나기 일쑤였다.

여신의 전설지 중에서도 단연 첫 손에 꼽히는 이야기를 품은 엉장매코지, 그동안 물음표가 수천 번은 디뎠을 바위마다 발자국 아닌 의문부호가 빼곡하게 박힌 듯했다. 여신 설문대께선 어찌하여 이곳에서 다리 놓기를 중단했을까? 단지 명주치마를 얻지 못해서 다리를 선물하지 않은 것일까? 거친 갯바위와 용암의 기포 같은 몽돌이 드넓게 펼쳐진 조천리와 신흥리 사이의 바다 기슭에 이렇게 생뚱맞은 언덕은 또 뭐란 말인가? 사람이 쌓아놓은 요새처럼 단단한 엉장매코지는 어떤 해답도 알려주지 않은 채 요지부동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연륙의 미련이 남긴 흔적들

지리적 조건을 따져볼 때 제주는 망망한 바다 한가운데 홀로 솟은 고립무원의 섬이다. 머나먼 옛날 신화의 시대 어느 날 설문대가 섬을 탄생시킨 뒤 만생명이 깃들게 했다. 모든 생명들은 넘쳐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완결된 우주였던 제주섬에 홀딱 반해 나날이 번성하며 특유의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그 생태계 속에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섬사람들은 섬 바깥의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키워갔다. 자유롭게 바다를 넘나드는 새와 물고기들로부터 전해 들은 바깥 세상이 보고 싶어 미칠 지경에 이르자 그들의 창조주에게 청원을 들었다. 

“우리에겐 하늘을 날아오를 날개도 없고 파도를 가를 지느러미도 없습니다. 부디 바다 건너 세상과 이 섬을 잇는 다리를 놓아주소서.”

섬사람들의 청원에 못 이긴 설문대는 헤진 명주 치마를 새것으로 바꿔주면 다리를 놓아주겠노라는 약속을 했다. 이에 섬사람들은 온 섬의 부지런히 누에를 치는 한편 명주를 있는 대로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그 사이 설문대께서도 섬 곳곳을 둘러보며 다리 놓기에 마땅한 장소를 찾아다니며 구멍이 숭숭 뚫린 치마폭에 흙과 바위를 주워 담아 바다를 메우러 나섰다. 섬 서쪽 바다에 기다란 뚝을 쌓고 다시 동쪽에 몇 곳을 점 찍어 같은 방식으로 다리를 놓을 터를 다지다 치마가 너무 낡아 더는 못하기에 이르자 새 치마를 기다리며 일손을 멈췄다.

조천읍 조천리 엉장매코지(사진=한진오 제공)
조천읍 조천리 엉장매코지(사진=한진오 제공)

한편 염원의 실현에 한껏 고무된 섬사람들은 자신들이 끌어모은 명주가 산더미처럼 쌓이자 드디어 치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구나 잘 아는 결말처럼 명주 한 통이 모자라 치마는 끝내 완성되지 않았다. 명주 백 필이 한 통인데 백 통이 있어야 거대한 여신의 치마를 만들 수 있었으니 섬사람들의 꿈은 아흔아홉 통의 명주와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결국 섬사람들은 여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설문대 또한 일손을 거두고 머리에 얹고 있던 족두리를 한천(漢川)의 너럭바위 위에 남겨놓은 채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그리하여 섬사람들은 설문대가 다리를 놓다만 흔적을 찾아다니며 아흔아홉의 포한을 담은 전설을 넋두리처럼 노래하기에 이르렀다. 설문대가 다리를 놓다 만 흔적은 한림읍 한수리 앞바다의 대섬, 조천읍 신촌리의 대섬, 표선읍 표선리의 흰모살개 해변, 그리고 가장 널리 알려진 조천읍 조천리의 엉장매코지라고 한다.

아흔아홉에 담긴 여신의 메시지

설문대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다리 놓기의 사연은 제주라는 섬이 지닌 지리적 조건을 해설하는 설화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보니 이에 해석도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해석의 역사가 깊은 만큼 다양한 견해가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천편일률적으로 그 귀결점이 이른바 ‘나인 콤플렉스’다. 100을 채우지 못해 99에 그친 것이 지리적으로 고립된 섬이라는 점과 정치적으로도 중앙의 속박을 받는 변방으로 이어진 한계를 반영한 설화라고 해석하는 것이 나인 콤플렉스다. 설문대의 다리 놓기 설화는 아흔아홉골의 전설과 짝을 이뤄 섬의 한계성을 부연해왔다. 한라산의 골짜기가 백을 채웠으면 왕도 나고 범도 나는 완벽한 섬이 되었을 텐데 아흔아홉에 그친 탓에 이루지 못했다고 해석되는 것이 아흔아홉골의 전설이다. 

이와 같은 나인 콤플렉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세상 어느 곳이든 그곳에 오랜 신화와 전설이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자신들의 터전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주술적 세계관에 잇닿아 있다. 그들이 숭배하는 신이 세상을 창조했으며 그 중심이 자신들의 터전이라고 여기는 것은 신화가 지니는 공통적인 서사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제주를 섬이라는 제한성과 변방이라는 한계에 가두려고 하는가? 물론 유사 이래 끊임없는 자연재해와 외세의 수탈과 학살에 수난당한 이력에 근거한 해석인 점에 대해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99라는 숫자에 사로잡혀 콤플렉스로만 해석하는 것은 온당할까?

달리 생각해 모든 창조신화가 우주의 중심을 노래하는 것과 설문대 설화를 견주면 어떻게 풀이될까? 설문대가 육지까지 다리를 놓지 않은 이야기는 자신이 창조한 섬이 세상의 중심이며 그 자체로 완결된 우주임을 선언했다는 메시지를 품은 것은 아닐까? 신성의 상징인 족두리를 벗어놓고 사라질 정도로 자신의 모든 권능을 담은 이 섬을 있는 그대로 두라는 계시라고 해석도 지나치지 않겠다. 여신은 자신의 권능을 제주섬의 대지며 온 생명에 이르는 자연만물에 깃들게 했다. 권능을 모두 쏟아낸 섬을 영원히 지키라는 것이 여신의 뜻인 셈이다.

설문대 설화와는 다른 계통이지만 아흔아홉골의 전설도 마찬가지다. ‘왕도 범도 못 낳은 섬’이라는 레토릭 역시 콤플렉스가 아니라 차별과 갈등이 없는 상생의 자연관을 담아낸 이야기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를 명주 아흔아홉으로 짠 콤플렉스의 그물에 가둬놓고 연륙의 꿈을 여전히 지우지 못하는 신세인 듯하다.

이제는 왕과 같은 권력이 생겨나고 범과 같은 맹수가 생겨나고 뭍과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다리'가 놓이기를 기대하는 꿈을 접어야 할 때다. 수천 년동안 이 섬을 지켜온 모든 생명들과 영원한 상생을 이어가라는 아흔아홉의 메시지를 제대로 풀이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섬을 파헤치고 깨부수는 파멸의 행진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굿 퍼포먼스 전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한진오.(사진=김재훈 기자)
한진오

한진오는 제주도굿에 빠져 탈장르 창작활동을 벌이는 작가다. 스스로 ‘제주가 낳고 세계가 버린 딴따라 무허가 인간문화재’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는 자신의 탈장르 창작 활동에는 굿의 ‘비결정성’과 ‘주술적 사실주의’가 관통한다고 소개한다. 저서로 제주신화 담론집 ‘모든 것의 처음, 신화’(한그루, 2019), 희곡집 ‘사라진 것들의 미래’(걷는사람, 2020)가 있고 공저로 ‘이용옥 심방 본풀이’(보고사, 2009) 등 다수가 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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