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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읽기]레시피가 문제지, 내 요리가 무슨 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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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읽기]레시피가 문제지, 내 요리가 무슨 죄람
  • 삐리용
  • 승인 2021.08.06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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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다산책방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다산책방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다산책방

“화로 안엔 갇힌 불은 아마 인간에게 몽상의 첫 주제이고 휴식의 상징이며 휴식으로 부르는 초대였다. 불타오르는 장작을 앞에 둔 몽상 없이는 휴식의 철학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기에 불을 앞에 둔 몽상을 빼는 것은 불의 진실로 인간적인, 그리고 최초의 효용을 잃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멋있게 쓸 수 있는 철학자는 아마도 가스통 바슐라르가 유일하다. 그의 책들을 펼치면 음식과 부엌과 요리에 대한 아름다운 에피그램을 한 가득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줄리언 반스에게서는 이런 아름다운 에피그램을 기대할 수 없다. 애당초 불가능한 노릇이다.

줄리언 반스? 그가 어떤 소설가이기에?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 한 토막은 이런 식이다. 노아는 신의 뜻에 따라 방주를 만들고 동물들을 태우는데, 그 목록에 없는 좀벌레가 몰래 방주로 숨어든다. 좀벌레는 불청객이었지만 아주 중요한 목격자가 된다. 노아의 방주에서 벌어진 그 모든 외설과 방탕과 어이없는 실체에 대한 증인!(《10 1/2장으로 쓴 세계역사》 중 ‘밀항자’ 편) 줄리언 반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의 메시지를 좀벌레를 통해 신랄하게 비튼다. 아마 인간이라는 족속의 어쩔 수 없는 욕망, 로고스가 요구하는 단일한 세계와는 결코 쉽게 화해할 수 없는 제멋대로인 인간의 삶을 드러내고자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줄리언 반스는 그런 점에서 지적인 반항아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그런 그가 ‘늦깎이 요리사’가 되어 요리에 대한 글을 썼다. 그가 스스로를 늦깎이 요리사라고 말하는 것은 부모로부터 요리를 배우지 못했으며, 살면서 조금씩 요리를 알게 됐다는 의미이다. 우리말 제목은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지만 원제는 'The pedant in the kitchen'이다. 부엌의 현학자? 단어 pedant는 보통 현학자라고 옮기는 것 같은데, 역자의 주에는 이렇게 설명되고 있다. pedant은 ‘학식을 자랑하며 뽐내는 사람’이 아니라 ‘실속 없는 이론이나 빈 논의를 즐기는 깐깐한 공론가’를 뜻한다. 꼰대, 투털이, 헛똑똑이 정도? 혹은 그 모든 게 뭉뚱그려진 이미지랄까.

아무튼 자신을 pedant라고 명명한 줄리언 반스는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그가 설마 바슐라르를 닮지는 않겠지? 설마 알렉산드르 뒤마의 아들이나 로시니처럼 자신이 미식가임을 한껏 뽐내고 있지는 않겠지? 설마 미슐렝을 흉내내 음식에 별을 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럼 정말 ‘밥맛’인데! 하지만 그것은 한낱 기우였다. 줄리언 반스는 줄리언 반스였다!

가령 “왜 요리책은 수술 지침서처럼 정밀하지 않을까?”라고 투털대는 사람에게 부엌과 요리와 사람들에 대한 행복한 이미지의 몽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또 이런 식. “현학적이지 않은 요리사는 흔히 현학적인 요리사를 잘못 이해하고 우월한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에헤, 난 레시피 따위는 안 봐'라며, 그런 요리사를 마치 섹스 교본을 옆에 펴놓고 섹스하는 사람 취급한다.” 이 ‘독학요리사’에게 내밀한 욕망의 역동성‘을 보여 달라고 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스는 글을 쓰는 소설가답게, 소장하고 있는 백 권 남짓의 요리책들의 레시피에 대해 많은 말을 한다. 도대체 레시피가 왜 이 따위냐는 것이다.

책이든, 인터넷이든 타인의 레시피에 의지해 음료, 빵, 요리 등을 만들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레시피와 그 레시피의 주인에 대한 저주를 퍼부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 경험이 없다면 당신은 외계인임이 틀림없다. 세상의 모든 레시피는 결코 완전하게 해독되지 않는 암호문일 뿐이다. 반스가 시비 걸고 있는 것을 예로 들면, 중간 크기의 양파의 크기는 도대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일까? 커런트 한 줌이면 도대체 어떤 손을 기준으로 하는 것일까? 중간 온도라면 도대체 어떤 오븐을 기준으로 몇 도에 맞춰야 하는 것일까? 도대체 왜 요리책의 저자들은 이 따위일까?

레시피의 언어는, 절대적인 지침이라는 의미에서 로고스를 닮았다. 그러나 그 로고스는 결코 완벽히 실현될 수 없는 지시사항일 뿐이다. 레시피를 따르는 자의 솜씨 없음과 더불어 부엌의 빈약한 장비를 탓하기 십상이지만, 로고스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문학의 언어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하는 것이라면, 레시피의 언어는 말해져야 마땅한 것을 마땅하게 말하는 것이지 않은가. 상징주의 문학을 닮은 레시피로 인해 우리는 그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던가!

“요리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교훈은, 요리책이 아무리 솔깃해 보여도 어떤 요리는 반드시 음식점에서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사실이다.” 줄리언 반스의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 부엌의 현학자인 아내의 말이기도 하다. 나는 아내가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건강했으면 좋겠다! 이게 요리에 대한 나의 유일한 몽상이자 기도이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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