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나는 최근 2주간 열렸던 올림픽을 통해 잊고 있었던 어떤 감각에 대해 떠올렸다. 여성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며 몸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운동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이전에 운동 경험을 통해 얻었던 감각을 아주 오랜만에 도로 떠올린 것이었다. 이것은 나에게 있어 꽤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건강한 생활의 필수요소인 ‘규칙적인 운동’을 습관적으로 등한시하기 때문이다. 애써 운동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는데, 아마도 그 저변에는 하루 2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공부가 아닌 운동에 할애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있다. 운동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있다고 해서 대단한 효율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8살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학교라는 공간과 지식노동에서 크게 벗어나 본 일이 없는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가만히 앉아 머리를 쓰는 것이 당연한 환경이었다. 몸은 머리를 옮겨주고 지탱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건강한 몸’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잘 쓸 수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추상적인 개념처럼 느껴지는 체력과 건강한 몸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 들이는 품 또한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다. ‘운동을 한다’라는 단순한 행동에 더해 운동을 하기 위해 마음을 먹고, 헬스장까지 가는 시간, 운동을 하고 난 후 몰려오는 피곤하고 나른한 감각 등, 이 일련의 행동들이 더 부담스러웠다. 그렇기 때문에 바쁘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운동이었다. 가치 판단을 함에 있어 몸은 일에 밀린 것이다. 하지만 석사학위를 끝낸 후 체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운동에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시도해 보았던 운동 중 하나가 이번에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 클라이밍이었다. 클라이밍은 기본적으로 벽에 고정되어 있는 각양각색의 홀드들을 어떻게 잡고 딛고 밟아 마지막 홀드까지 도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머리를 쓰는 것과 동시에 경사진 벽에 매달려 있기 위해 발끝에서부터 손끝까지 힘을 고루 주며 균형을 잡아야한다. 코스의 완주를 위해 전신에 힘을 주고 벽에 매달려 있어 본 결과, 나는 난생처음으로 내 몸의 감각에 대해서 익혔다. 몸을 움직이기 위해 온몸을 뒤덮고 있는 근육의 존재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처음 느껴보는 근육들이 많았다. 이렇게 힘을 주면 몸이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처음으로 내 몸과 머리는 서로 연결된 유기체라는 것을 느낀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 번 시작된 나의 몸에 대한 이해는 일종의 해방이자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클라이밍 문제를 풀며 느끼는 스릴과 완주한 후의 쾌감이 엄청났다. 운동을 하며 쾌감을 느낀다는 감각 또한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헬스장에서 단순하게 러닝머신을 뛰는 단조로운 운동보다 훨씬 재밌었다. 사실 나는 움직이는 것이 싫은 게 아니라 지루한 것을 못 견디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운동을 하러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의 귀찮음은 존재했다. 하지만 적어도 계단을 오를 때 쉬이 허덕이지 않게 되었다. 잘 먹고 잘 자게 되었다. 처음으로 나는 따로 시간을 내어 내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한 투자 가치를 몸소 이해한 것이다.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 나 자신을 목도하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다.

그 후로도 내 몸을 이용한 자아 찾기는 봉쇄령 기간에도 계속되었다. 집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그 시간은 굳이 운동을 하기 위해 어디론가 가서 무엇을 해야 한다는 틀을 깨주었다. 방구석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아서 하기 시작하며 좀 더 다양한 종류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로이 발견한 운동 자아는 바로 춤을 추는 것이었다. 유튜브의 많은 선생님들을 따라 춤을 추며 나는 꽤 흡족한 자아 찾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여태 클라이밍이나 필라테스와 같은 다소 정적인 운동만을 선호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몸을 격정적으로 움직이는 춤 같은 것도 재밌게 따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클라이밍을 할 때처럼 어떤 몸동작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관절을 굽혀야 하고 어떤 근육을 써야 하는지를 거울을 보며 고민해야 했다. 난생처음 이렇게 오랫동안 거울을 본 것도 처음이었고, 내 몸을 자세히 관찰할 수도 있었다. 나는 어떤 체형이고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며,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사실 내 몸을 움직이고 탐구하는 것에 있어 상당히 흥미가 많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시간을 거슬러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원래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어린이는 아니었다. 종일 뛰어다니며 놀고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몸을 움직이며 나 자신을 찾는 즐거움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기 시작했을까. 나이가 들며 가장 우선적으로 두어야 하는 가치가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과 등치 되어 버리기 시작하며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더 잘 쓰기 위해서는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데 오히려 나 스스로 몸을 가두고 포기하는 것을 선택했었다. 그리고 이 사고방식은 생각보다 관성적이어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도 쉬이 잊어버린다.

대학원생들 사이에서는 수명을 줄여 가방끈을 늘린다며 자조적인 농담을 하곤 한다. 글이 잘 써지지 않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잠깐 일어나서 운동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선택인데, 그게 잘 안 된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책상에서 일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나에게 지도교수님은 하루에 1시간 정도는 산책이라도 꼭 하라고 하신다. 아직도 매일 1시간씩이나 운동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좀 지루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올림픽 중계를 보며 운동에 대한 열정이 피어오른 김에 몸을 움직이는 감각에 대해 더 탐구해 볼 생각이다. 분명 이전처럼 즐거운 발견을 또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엔 양궁에 도전해 볼까 한다.

 

 

 

 

 

김지민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제주 4·3에 대해 연구 중인 김지민은 온 마을이 키운 박사 과정생이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제주와 런던을 잇는 [지민in런던]은 매월 둘째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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