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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원 생기면 제주가 건강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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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병원 생기면 제주가 건강해질까?
  • 조수진 기자
  • 승인 2021.08.11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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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정책 라이브러리 시즌2 ‘전환의 꿈! 정책으로 말하다’ ①
박형근 제주대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 강연자로 나서
지난 4일 오전 제주투데이 회의실에서 열린 수요정책 라이브러리 시즌2 ‘전환의 꿈! 정책으로 말하다’ 첫 번째 강연에서 박형근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 4일 오전 제주투데이 회의실에서 열린 수요정책 라이브러리 시즌2 ‘전환의 꿈! 정책으로 말하다’ 첫 번째 강연에서 박형근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 4일 오전 제주투데이 회의실에서 제주가치와 제주대안연구공동체가 공동 주최하는 수요정책 라이브러리 시즌2 ‘전환의 꿈! 정책으로 말하다’ 첫 번째 강연이 열렸다. 

이날 박형근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가 ‘코로나19 시대, 제주지역 의료 현실과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책 과제는?’ 주제로 발표했다. 

“‘치료 잘하는 좋은 병원이 주변에 있으면 건강하고 오래 살 거 같다’, ‘내가 서울 강남에 살면 안 죽을건데 서귀포에 살아서 죽을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수년 전 서귀포시가 서귀포의료원을 제주대학교병원에 위탁해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서귀포시민들이 ‘치료 잘하는 병원이 있으면 건강하고 오래 살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서귀포시에 ‘큰 병원’이 생기면 서귀포시민들의 건강은 좋아질까? ‘실력 좋은 의사’와 ‘최신 의료 장비’, ‘발전된 의료 기술’ 등이 사람들을 건강하게 한다는 인식은 지난 20세기 초중반까지 유효했다. 

“옛날에 맹장염(충수염)이 발병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갑자기 배가 아파서 데굴데굴 일주일간 구르다가 죽게 되죠. 그런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죽을 줄 알았던 사람이 감염된 충수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으니까 멀쩡해지는 거예요. 사람들이 수술받으면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거죠.”

감염병 역시 마찬가지다. 치사율이 30%에 이르렀던 천연두 바이러스 감염병은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고 세균의 전파를 막기 위한 격리 치료 방법이 나오면서 1980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고됐다. 

‘의료를 이용하면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좋은 치료를 차별 없이 받으면 질병이 소멸할 것이라는 게 당대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여기에 ‘평등을 추구하고 사회 계급과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진보세력의 이념과 접목되면서 무상의료 서비스를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 원칙 방침을 구체화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에도 이 같은 시대적 인식이 반영됐다. 해당 조항은 “농·공인의 면비(비용을 면제함)의료를 보급·실시해 질병 소멸과 건강을 보장함”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영국에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모든 국민에게 무상의료를 제공하는 체계(NHS)가 설립됐다. 무료로 치료를 해주면 질병이 없어지고 아픈 사람이 줄어들면서 계급 계층 간 ‘건강 불평등’ 격차가 해소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영국 노동당이 NHS 운영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작성한 보고서 'INEQUALITIES IN HEALTH; BLACK REPORT'. (사진=박형근 교수 제공)
영국 노동당이 NHS 운영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작성한 보고서 'INEQUALITIES IN HEALTH; BLACK REPORT'. (사진=박형근 교수 제공)

그들의 생각은 맞았을까. 노동당은 NHS 운영 30주년을 맞아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1980년 위원회가 작성한 보고서(INEQUALITIES IN HEALTH; BLACK REPORT)에 담긴 내용은 예상과 달랐다. 계층에 따른 건강 불평등 현상은 여전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무상의료 서비스는 왜 건강 불평등 격차를 좁히지 못했을까. 전문가들은 그 답을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에서 찾았다. 그리고 ‘의료’만으로는 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이른다. 

‘건강 증진’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캐나다 라론데 박사의 보고서(1974)에 따르면 개인의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을 네 가지로 나눴다. 각 요인이 죽느냐 사느냐에 미치는 영향은 보건의료 요인이 11%, 생활습관 요인이 43%, 환경 요인이 19%, 생물학적 요인이 27% 등이다. 

“실제 의료가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얼마 되지 않죠. 결국 의료라는 데 돈을 더 써야 하는가하는 질문에 ‘글쎄’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21세기 초 미국 보건의료 건강 관련 전문가들은 ‘건강 결정요인’ 개념을 정리했다. 이에 따르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엔 여러 층위가 있다. 마치 생태계처럼 각 층위 간 상호작용을 거쳐 건강이 결정된다. 

가장 중심엔 개인이 타고난 선천적 요인(연령, 성별, 유전 등)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를 개인의 생활 습관(흡연 여부, 음주 여부, 운동 여부, 식습관 등)이 둘러싸고 있다. 그 바깥은 사회, 가족, 지역사회 관계망이, 그 바깥은 생활·노동환경, 가장 바깥은 사회·문화·경제·정책적 요인이다. 

건강 결정요인. (사진=박형근 교수 제공)
건강 결정요인. (사진=박형근 교수 제공)

#질병관리 →건강증진, 패러다임 전환

“20세기엔 질병이 있을 때 어떻게 치료하느냐가 화두였다면, 지금은 건강 결정요인을 어떻게 관리하고 대응할 것이냐로 바뀝니다.”

‘질병관리’ 시대엔 의료체계를 정비하고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며 전문가 중심으로 사람들의 건강에 접근했다. 하지만 ‘건강증진’ 시대엔 건강한 환경을 구축하고 건강 위험요소를 관리하며 주민과 지역이 참여해야 한다. 

공중보건(public health)을 증진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국가의 역할은 기존의 의료 서비스 제공을 넘어서 다양한 결정요인을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 역시 의료 서비스를 제공 받는 수동적인 주체에서 생활 습관 등을 관리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건강 정책의 특수성

“일본의 경우 공무원이나 직장 보험가입자를 제외하곤 지역가입자 보험을 지방정부가 관리합니다. 그러니까 지방정부가 예산을 덜 쓰기 위해 지역주민들의 건강 관리에 신경을 쓰게 되는데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내려받는 우리나라의 지방정부는 그렇지 않죠.”

우리나라 건강 정책에는 다른 나라와 차별되는 특수성이 있다. 첫째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이라는 것. 상대적으로 지방정부의 재량권은 매우 제한된다. 그 이유는 서울이든 제주도이든 강원 산골이든 의료 격차가 커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국가가 표준화한 매뉴얼과 예산을 배정한다. 자연스럽게 지방정부의 주민 건강에 대한 관심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의 건강 관리 역량이 낮다보니 ‘좋은’ 의료기관이 서울로 집중되는 현상을 해소하기 어렵다. 

또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재원이 공공 중심으로 이뤄졌으나 서비스 공급은 민간 병원 중심이라는 특징이 있다. 민간 병원을 통제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두고 있다. 국내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은 보험가입자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강제 규정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원으로만 병원을 운영하려면 수익이 낮은 분야엔 투자를 꺼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되도록 ‘돈이 되는’ 진료를 해야 인건비를 비롯한 각종 비용을 충당할 수 있다. 큰 병원이 중증외상센터를 기피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형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응급환자가 들어오면 흉부외과, 마취학과, 신경외과 등 다양한 전문의가 필요하다. 여러 명의 전문의가 한 환자의 수술 때문에 외래진료와 수술, 강연 등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을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돌봄 서비스라 불리는 커뮤니티케어 분야에선 국내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박 교수는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나중에 노인들이 지불 능력에 따라 굉장히 불행한 일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 분야는 앞으로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오전 제주투데이 회의실에서 열린 수요정책 라이브러리 시즌2 ‘전환의 꿈! 정책으로 말하다’ 첫 번째 강연에서 박형근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지난 4일 오전 제주투데이 회의실에서 열린 수요정책 라이브러리 시즌2 ‘전환의 꿈! 정책으로 말하다’ 첫 번째 강연에서 박형근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의료관리학교실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그렇다면 제주는?

제주지역은 1980년대 이전엔 제주의료원과 서귀포의료원 등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의료 서비스를 공급하는 구조였다. 이후 1990년대까지는 한라병원과 한국병원, 중앙병원 등 민간 중소병원 중심으로 공급이 확대됐다. 

2000년대에 들어선 제주대학교 의과대학이 들어서고 제주대학교병원이 문을 열며 600병상 급 종합병원 중심의 병원 서비스 공급 체계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도내 종합병원과 다른 병원들 간 경쟁이 촉발하면서 시설 현대화와 서비스 질이 향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만 최근 들어 의료 수준을 발전시킬 동력이 거의 소진되면서 지역 병원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병원 생태계를 변화할 수 있는 전략 수립과 추진이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제주도 정치권, 행정력, 시민사회의 공감대가 필요하다. 단순히 공급과 투자의 논리로는 해결할 수 없다. 

박 교수는 제주도 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는 환자 중 경증환자 비율(61.1%)이 전국(57.6%)과 비교해 높은 점에 주목했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 중 많은 수가 야간이나 휴일에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서라는 것. 

또 1980년대 만들어진 제주 보건지소의 경우 이용률이 낮아 비효율이 발생하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대체할 대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도내 종합병원과 서울 대형병원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제주도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과 비교해 제주도는 인구 수가 적기 때문에 그만큼 지방정부의 정책·재정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도민 사회의 요구와 활동이 구체화돼야 하고 제주도 정책의 우선순위로 자리 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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