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초대의날 '혼저옵서'에서 선보일 풍물연습을 하고 있는 받침반 친구들 (사진=볍씨학교)
부모님 초대의날 '혼저옵서'에서 선보일 풍물연습을 하고 있는 받침반 친구들 (사진=볍씨학교)

제주학사에서는 '가족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부모님을 엄마, 아빠가 아닌 한 사람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된다. 그 사람의 과거를 알고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관계가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나는 올해 가족사를 하면서 아빠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1학기 말 가족사를 시작한 우리 받침반은 먼저 부모님께 할 질문을 같이 뽑았다. 부모님의 어릴 때 이야기나, 가족 간 관계, 인생의 터닝포인트 등에 대한 질문을 담은 편지를 보냈고 답장을 받았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고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또 그 답변에서 생긴 궁금한 것들을 뽑아서 부모님 초대의 날에 부모님들과 만나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누었다.

부모님의 일생을 글로 정리해 받침반 친구들, 선생님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의 과거를 알게 되니 이해할 수 없었던 모습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또다시 글을 정리해서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이렇게 우리의 가족사 과정이 끝났다.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는 잘 썼지만,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를 제대로 쓰지 않았다. 아빠한테 이런 내용을 쓰고 싶지가 않았다. 불편했다. 이런 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망설이다가 결국은 아빠가 질문에 답해준 것들만 간추려 썼다. 내가 아빠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었다. 또 우리는 물려받고 싶은 유산과 그렇지 않은 유산도 쓰기로 했었지만 나는 물려받고 싶은 것만 썼다. 불편하고 거리를 두고 싶을 땐 좋은 얘기만 하게 되는 것 같다. 아빠와 관계가 깨지는 것도 불안했다.

제대로 쓰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아빠는 가족사 질문에 대해서도 열심히 답 해줬었고, 편지를 받고 좋아했던 것 같은데 너무 미안했다.

아빠를 불편해하는 이유는 무서워서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아빠의 무서운 모습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엄마와 싸울 때, 나와 동생에게 화를 낼 때가 너무 무서웠다. 그럴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이제 내가 컸으니까 “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라고 하라고 하지만 결국은 시도도 못 했다. 생각은 있어도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도 내가 그때 그렇게까지 크게 받아들였을 줄 몰랐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무섭고, 힘들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고 빨리 관계를 회복시키고 싶었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 상황에서는 엄마, 아빠나, 동생이 더 힘들 거로 생각해서 괜찮은 척, 괜찮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괜히 그러는 것 같았다. 내가 싸우는 것도 아니고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거니까 내가 영향을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어리니까 무서워할 수 있지만 나까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결국 진심이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괜찮다고 말해서 내가 그 일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 같다. 공감도 하지 않아서 더 관심 없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이젠 그게 나한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빠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기로 했다. 솔직하게 아빠가 무서웠고, 불편했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망설여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이런 관계가 평생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정말 싫었다.

내 안 깊은 곳에서 아빠가 무섭다는 것을 계속 갖고 있었다. 물론 엄마나 동생도 그랬겠지만 내가 그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니 더 편해지지 않았다. 물론 아빠와 잘 지낼 때도 많지만 동생이랑 비교했을 때 동생이 아빠와 더 가까운 것 같고, 그것이 부러웠다. 이제 그 이유가 뭔지 알 것 같다. 내가 혼자 아빠를 불편해했다.

사실 아빠는 나에게 불편함은 없는 것 같다. 나에게 편지도 일주일에 한번씩 써준다. 화를 내고 나면 장난도 치고, 맛있는 것도 주며 풀어주려고 할 때도 있다. 또 가장 최근에 아빠에게서 받은 편지에는 아빠가 방학 때 화내서 미안하고, 아빠한텐 만성 두통 증세가 있는데 그 며칠 동안 기분도 다운되고, 그래서 화를 냈다고 했다. 아빠가 이렇게 말해준 적이 거의 없었는데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이젠 이런 내 마음을 아빠에게 전하고 내가 마음을 열면 될 것 같다. 또 아빠도 요즘은 화를 안 내려고 노력 중이다. 아빠는 내가 아빠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얘기해본 적이 없고, 어쩌면 나도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 같았다. 그렇게 인정하게 되면 아빠를 싫어한다는 것 같고, 불편하게 될 것 같았다. 아빠가 편할 때도 많고,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불편하다는 것을 더 인정하기 싫었다. 올해 가족사를 하면서 아빠와의 관계가 편하지 않았다는 것을 더 정확히 알았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숨겼다는 것이 불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도 이젠 아빠에게 마음을 열려고 노력해서 더 가깝게 지내고 싶다. 서로 불편한 감정을 꺼내서 얘기할 수 있는 편안한 관계가 되고 싶다.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


아빠.
사실 방학 때 줬던 편지에는 내가 이해했던 내용을 하나도 쓰지 않았어.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아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할 때가 많았던 것 같고, 불편했어. 아빠가 소리 지르고, 엄마한테 화를 낼 때나, 나랑 단하한테 화를 낼 때 무서웠어. 그래서 그런 것 때문에 아빠가 더 불편해진 것 같아. 그런데 이젠 아빠가 화도 많이 안 내고, 엄마와도 잘 지내려고 하는 것 같아. 또 나한테 편지도 많이 써주고, 제일 많이 생각해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어.  이젠 나도 아빠랑 더 편하게 지내고 싶어. 단하랑 아빠처럼 나도 그렇게 아빠랑 가까워지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아빠에게 불편했던 것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빠가 엄마랑 싸울 때 문을 쾅 닫고 들어가거나, 엄마랑 심하게 싸우는 걸 안 해줬으면 좋겠고, 갑자기 화내지 말고 먼저 말을 많이 해주면 좋겠어. 한 번에 바뀔 수는 없지만, 조금씩은 바뀌고 있는 것 같아. 앞으로도 아빠한테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많이 하고, 둘이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마지막으로 사랑하고, 고마웠어. 

 

 

박주하

저는 1학년 때부터 볍씨에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제주학사가 너무 힘들 것 같고, 공부도 너무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일반 학교에 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제주학사라는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싫어서 다시 볍씨로 돌아와 제주를 선택했습니다. 잠깐 나를 위해 성장할 생각이 없다고 착각도 했지만 이번에 많은 이야기도 듣고, 생각해보면서 나를 위해서 성장하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고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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