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소희 기자)
부당해촉을 당한 보험설계사 김 모 씨(60)가 에이플러스에셋 제주사업단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보험설계사 김 모 씨(60)가 지난 2일부터 제주시 노형동 소재 에이플러스에셋 제주사업단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영업분위기 저하 등을 이유로 10년 넘게 근무하던 회사로부터 강제해촉 명령을 받아서다.

김 씨가 근무한 에이플러스에셋은 국내 35개 보험사 상품을 위탁 판매하는 대형 독립보험대리점(General Agency, 이하 GA)이다. 4000여개 GA가 국내 영업중인데, 동사는 규모 면에서 국내 8위 수준이다. 자사 상품만 판매하는 단독 보험회사(원수사)에서 설계사를 시작했지만, GA 시장 성장 잠재력을 내다 본 김 씨는 10년 전 적을 옮겼다. 

사건은 201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씨 고객이던 보험계약자가 휴대폰 교체를 알리고자 그가 소속된 에이플러스에셋 제주사업단에 연락을 취했다. 당시 김 씨는 외근중이었다. 

회사 내부에서 '누군가(이하 A씨)' 해당 고객의 전화를 받았다. 김 씨에 따르면 자신의 고객은 A씨로부터 "담당 설계사는 그만뒀다"며 "김 씨로부터 가입한 CI보험(중대질병, 중대수술 보장보험)은 쓰레기"니 기존보험을 해지하고 신규보험을 가입토록 권유받았다고 한다. 이른바 '보험리모델링'을 유도한 것이다. 

CI보험은 Critical illness의 약자로 '치명적인 질병'을 위한 보험이다. 중대 질병이 생기면 사망보험금 50~80%를 미리 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의 일종이다. 판매 시 고객에게 '중대한'이란 조건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불완전 판매) 민원이 많은 상품 중 하나다. 지급조건이 까다로워 보상 청구시 분쟁 소지도 많다. 해서 '쓰레기 보험'이란 오명이 생기기도 했다.

이러한 오명 때문에 설계사에게는 신규보험 가입을 늘려 모집 실적을 올릴 수 있는 표적 상품이기도 하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실적을 올리기 위해 'CI깨기'를 경영 전략으로 세우는 보험사도 더러 있다고 한다. 

김 씨는 버젓이 일하고 있던 터라 황당했다. 보험 유지율에 따라 연봉이 달라지는 설계사에게 이른바 '고객 가로채기'는 업계 상도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특히 금액이 큰 CI보험의 경우 무조건 해약하면 고객 손실이 커서 잘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친구처럼 지내던 고객과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였다. 그는 즉각 해당 사실을 제주사업단에 알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다.

사회는 나를 특수고용직으로 부르고 있었다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고 여겼는데 상황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사측은 'B씨의 전화를 받은 내부 직원이 없다'며 2019년 8월 12일 김 씨의 집으로 '해촉증명서'를 보냈다. "허위사실 유포로 구성원들 사기를 저하하고, 영업분위기를 떨어트렸다"는 이유였다. 

이의신청을 위해 관련 자료를 보험사에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본사까지 찾아가 회장과 서너 차례 면담까지 진행했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도 않았다. 경험치가 없으니 뭘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며칠을 앓아 누었다. 캄캄한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느낌이었다. 극심한 우울증에 신경정신과에도 다녔다. 

사용자가 형식상 노동자를 독립사업자로 하고, 근로계약 대신 위탁 계약을 체결해 일을 시키는 고용형태. 김 씨의 직업은 근로기준법 적용 밖에 있는 특수고용직이었다. 그는 “설계사 한 명 자르는 게 모기 한 마리 죽이는 것 만큼 쉽더라"며 착잡해 했다. 해촉 된 후에야 사회가 저를 특수고용직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는데, 그를 구제할 사회적 안전망이 없었다.

(사진=박소희 기자)
(사진=박소희 기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

동료 보험설계사가 고객을 채가려는 시도를 발각해 문제제기를 했더니 회사는 영업분위기를 해친다며 나가라고 했다. 정당한 해촉 사유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험설계사에 대한 불공정행위는 금융감독원이 관리감독 책임을 진다. 앞서 2번이나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향후 보험사 관리감독에 나설 때 살펴볼테니 기다리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언제 관리감독에 나설지도 모른다고 했다. 답답했다. 

하지만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일개 지렁이 목숨이라도 얼마나 질긴 지 보여주고 싶었다. 김 씨는 민주노총 산하 전국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이하 전국설계사노조)에 가입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노조에 가입한 그는 지난해 10월 13일 서울 서초구 본사 앞에서 처음으로 부당해촉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때부터 김 씨는 매주 2~3회 서울 본사 앞에서 납득 가능한 해촉 사유를 밝히고, 철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일부터는 제주사업단 앞에서도 시작했다. 본사에서 원직복직을 사실상 허락했지만 최근 제주사업단에서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제주 사람은 유독 '속숨허라(조용히 해라)'라는 말을 많이 쓴다. 말을 해봐야 도움은커녕 일신의 위협을 받은 역사가 길어서다. 김 씨는 "서울 시위는 두렵지 않았는데, 막상 고향에서 시위를 시작하려니까 위축이 되더라. 그런데 이건 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용기를 냈다"며 칼을 빼들었으니 무라도 썰겠단다.  

이에 관한 제주사업단 측 현재 입장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당시 해촉을 담당했던 사업단장이 다른 지점으로 옮겼다는 이유로 해명을 거부했다. 

김 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험설계사는 독립사업자로서 위촉계약에 의해 회사로부터 위탁받은 업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회사 직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및 제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보험설계사 부당해촉 문제가 만연하지만 위촉 계약이라 재계약을 하지 않으면 그만. 해고가 쉬운 구조라는 소리다. 

보험설계사에게 부당해촉은 일자리 상실 뿐 아니라 임금체불로 이어진다. 기본급이 없는 보헙설계사의 급여는 수수료인데, 이 수수료를 보험사는 3년에 나눠 지급한다. 다 받지 못한 상황에서 해촉을 당하면 나머지 수수료는 받지 못한다. '잔여수수료'는 고스란히 보험사 사업 수익으로 들어간다. 

김 씨는 "미연에 부당해촉을 방지할 수 있는 감시체계가 제대로 없는 실정인데다, 부당한 처우를 당한 제주지역 설계사들을 모아 함께 싸워보고 싶어도 이곳(설계사)은 모래성 같은 조직"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김 씨 역시 보험업계에서 만연한 직장갑질에 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문제가 되기 전까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최근 전국설계사노조가 법내노조로 인정받았지만, 김 씨는 해촉 상태라 회사를 상대로 단체 교섭에 나설 수 없다. 그는 "혼자 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솔직히 힘에 부친다"고 토로했다. 

지난 3월 2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부당해촉 철회를 촉구하는 전단지를 배포한 김 씨.(사진=김 씨 제공)
지난 3월 2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부당해촉 철회를 촉구하는 전단지를 배포한 김 씨.(사진=김 씨 제공)

설계사는 다른 특고노동자와 달리 근무시간이 자유롭고 실적에 따라 수입이 결정되는 개인사업자 성격이 강하다. 보험연구원이 발간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입법에 대한 보험설계사 인식조사'에 따르면  5명 중 4명은 스스로를 ‘개인 사업자’라 여기고 있다. 개별화돼 일하다보니 노동자 조직화가 어려운 직종 중 하나다. 

문제는 GA의 경우 원수사에 비해 내부 조직체계가 허술하다 보니 책임 주체가 부재하고, 설계사들은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운 구조라 더 개별화 되고 있다. 김 씨가 소속된 대리점의 경우 업계 10위권 안에 꼽히는 규모를 자랑하지만 해촉 철회를 요구하는 2년 동안 이 문제를 책임지고 대응하는 담당 부서가 사실상 없었다.

이근재 사무금융연맹 조직실장은 "GA의 경우 관리감독 규정이나 내부 조직이 상대적으로 허술해 노동자 조직이 더 어려운 구조다. 이같은 점 때문에 대형 보험회사(원수사)들은 자회사형 GA를 활용해 조직구조 슬림화를 추구하는 추세다. 보험업계 고용불안이 점점 심해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00년 중반에 도입된 GA는 2003년경부터 급격히 성장하더니 2015년부터 GA 소속 보험설계사 수가 보험사 소속을 넘어섰다. 

2019년 기준 전체 보험설계사는 41만9,375명이다. 이중 생명보험사 소속 설계사가 9만1,927명, 손해보험 설계사가 9만4,995명인데 반해 GA 소속 설계사는 23만2,453명이다. 생·손보 등 설계사수를 모두 합해도 GA 소속사 설계사 숫자를 넘지 못하는 상황.

이 조직실장은 "최근 한화생명이 국내 최대규모 GA인 한화생명금융서비스를 출범시키며 GA시장 몸집 불리기에 나섰는데, 제판분리 과정에서 1만7,000명의 보험설계사가 GA로 이동했다. 모회사가 슬림해지면 회사가 얻는 이득이 뭘까 잘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근재 조직실장의 우려는 보험연구원에서 발간한 이슈보고서에도 잘 드러나 있다. '보험회사 자회사형 GA의 성과와 시사점'을 살펴보면 '대규모 전속 판매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보험회사의 경우 비용절감 또는 인력관리 수단으로 자회사형 GA의 활용 검토가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보험회사들이 고용책임을 GA로 전가하고, 소속 설계사들은 점점 더 개별화되면 일방적인 해촉과 수수료 절감 등 부당한 처우에 따른 각개전투는 더욱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김 씨가 "저의 싸움이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한 이유다. 

지난 3월 30일 개최된 에이플러스에셋 주주총회에 대리인 자격으로 참석을 요청했지만 만석이라는 이유로 가로막힌 김 씨.(사진=김 씨 제공)
지난 3월 30일 개최된 에이플러스에셋 주주총회에 대리인 자격으로 참석을 요청했지만 만석이라는 이유로 가로막힌 김 씨.(사진=김 씨 제공)

 

나는 우리의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싸우고 있다

오세중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장은  "사용자가 고용책임을 지우기 위해 보험설계업자를 자영업자·개인사업자라고 강조하니까 설계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보험설계사의 급여격인 수수료율은 보험회사가 단독으로 결정한다"며 "자본은 김 씨의 사례처럼 노동자가 노동자성을 인식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고용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보험설계일에 매진하기 위해서는 보험설계사들이 자신의 노동자성을 인식하고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인간 존엄과 직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자신의 작은 외침이 보험설계사의 노동자성을 인정받는데 작은 힘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그는 "눈앞의 실적을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내팽개쳐 버리는 기업윤리를 향한 저의 작은 외침이 생계를 위해 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빨리 이 싸움을 마치고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 약 20년 간 법외노조였던 전국설계사노조는 지난해 12월 정부로부터 '법내노조'로 인정받았다. 보험설계사지부가 법적 노조의 지위를 얻게 됨으로써 노조에 가입한 전국의 보험설계사들은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인정받게 됐다. 하지만 강제권이 없어 단협을 반드시 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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