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인 교수 (사진=줌 갈무리)
줌으로 연결한 신용인 교수 (사진=줌 갈무리)

민주주의란 시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형태를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시민이 ‘주권자’인 동시에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공화)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은 자신의 삶과 공동체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는가. 나아가 제주도는 모두가 자유를 누리는 평등한 공동체인가.

지난 11일 오전 제주투데이 회의실에서 제주가치와 제주대안연구공동체가 공동 주최하는 수요정책 라이브러리 시즌2 ‘전환의 꿈! 정책으로 말하다’ 두 번째 강연이 열렸다. 

'풀뿌리 자치와 도민주권 실현을 위한 정책 제언'을 주제로 연사에 나선 신용인 교수는 이같은 질문으로 운을 떼며 “자기의 삶과 공동체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헌법의 최고 이념이며, 모두가 자유를 평등하게 누리는 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면서 “도민주권 실현 역시 권력과 자본에 예속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누리는 공동체”라고 말했다.

# 소규모 풀뿌리 자치 실현 단위 필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면서도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도지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집중 현상이 두드러진다. 권력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은 정부의 서비스를 받는 고객으로, 공적 목표를 추구하는 집단적 존재가 아닌, 개인적 존재가 됐다.

신 교수는 권력과 자본이 커지면서 필연적으로 사람을 지배하려는 속성이 공화주의의 위기를 가져왔다고 봤다. 특히 커다란 국가 단위로는 시민이 직접 통치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며 이는 민주주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모두가 자유를 누리는 평등한 공동체를 위해서는 소규모 풀뿌리 자치를 통한 이상적인 자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신용인 교수 제공)
(그래픽=신용인 교수 제공)

풀뿌리 자치 실현을 위한 이상적인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플라톤은 5040가구, 아리스토텔레는 ‘서로 얼굴을 알아볼 수 잇는 정도’라고 했으며 신 교수는 "읍·면·동이 적합"하다고 했다.

"스위스는 풀뿌리 자치 발전 평가 받는 곳이다. (마을 개념인) 코뮌이 3500개가 넘는다. 그러나 한국은 평균인구가 엘리트 정치를 할 수 밖에 없는 규모다. 시장군수 자치구청장 시군구 의원들에 의한 통치로 이뤄지고 있으며, 제주는 시군자치구도 아예 없다. 선진국에 비해 풀뿌리자치 단위 규모가 커서 민주공화국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게 신 교수의 주장으로 제주도도 스위스처럼 가자고 제안했다. "기본소득도 우리나라보다 3배나 많고, 환경보전도 우리보다 잘 한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시군구 평균 규모는 22만 4000명이다. 특별'자치도'를 표방하고 있는 제주도 자치현실은 국내와 비교해도 비대하다. 2007년 기초단체인 4개의 시·군을 폐지하고 광역단체인 제주도만 남겨서다. 제주시, 서귀포시 두 개의 행정시가 있지만 법인격이 없는 상태라 사실상 '식물 행정'이다.

신 교수는 "민주공화국 제대로 실현하려면 최소 읍·면·동 단위에서 고도의 자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자치 규모가 작아야 시민 통치가 가능하다하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때마다 거론되는 행정시장 직선제 논의 보다 제주도를 마을 연방 특별자치도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 주민이 주도하는 마을기금은 필수 

신 교수는 도민주권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그는 "주민들이 직접 직접 재정운용을 할 수 있는 마을기금을 창설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월 2만원으로 정원 딸린 5~60만평 주택에서 평생 거주가 가능하며 실업률은 0%인 마을이 있다. 스페인 '마니날레다'의 사례를 강조한 그는 "나랏돈을 제대로 분배하고, 6조에 가까운 제주도청 예산을 합리적으로 활용하고, 제도를 만들면 마을기금 설치는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했다 

현재 주민자치기본법안 6개가 국회에 발의돼 있는데 이 법안은 공동자산 관련 특수목적법인 형태로 마을기금 조항을 가능하도록 했다. 제주도의 경우 특별법이기 때문에 법 개정을 통한 마을기금 조항을 마련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소수 권력이 지배하는 국제자유도시가 아니라 마을주민들이 통치하는 제주도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토지에 대한 발상 전환도 주문했다.

신 교수는 "제주도 부동산 문제 해법을 위해서라도 토지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토지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대자연이 준 선물이며, 우리 모두 토지 사용권 가지고 있다"며 "어촌계 마을공동 목장 등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풀뿌리 자치와 민주적 운영을 전제로 공동소유 등을 통해 마을기금이 활성화 된다면 제주도는 민주공화가 실현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마을기금이 돈벌이용이 아니라, 마을주민의 필요를 충족시키는데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민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 마을 미용실, 마을 편의점, 마을 식당이 그게 진짜 마을기업이다. 마을 주민의 기본 서비스를 충족시키는 곳에 마을기금이 들어가야 한다. 기금 등을 활용해 마을차원에서 돌봄과 보육도 해결할 수 있고, 이로 인한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 마을경제 생태계 조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제주도가 마을기금을 출연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읍·면·동 마을기금 조성 규정이 있어야 한다.

그는 "시범 마을을 선정에 우선 적용해보자. 민주적 풀뿌리 자치 조직을 구성할 수 있도록 관련 조례 개정을 통해 주민총회, 운영위원회 구성, 이사장 직접 선출 근거를 마련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 3가지 주민 통제 시스템을 바탕으로 지자체 출연 조항을 만들고 실험이 성공적이라면, 나아가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국가 출자도 가능하도록 제도화하면 된다"고 밝혔다. 

# 행정시장 직선제 등 행정체제 개편은 어떻게?

제주사회 쟁점인 행정체제 개편에 대해서는 신용인 교수는 법인격이 없는 행정시장 직선제나 기초자치권 부활 보다는 읍·면·동 자치 강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읍·면·동장은 직선제 보다 추첨제로 가야한다는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신 교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읍·면·동 자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선출제의 경우 헤게모니를 잡는 권력집단이 사실상 선거를 통해 권력을 독점할 수 없도록 추첨제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은 풀뿌리 단위에서 안전망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금수저 아닌 이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면서 "풀뿌리 자치가 만병통치는 아니고, 읍·면·동 자치로 제주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제왕적 도지사에 대응하는 균형 자치를 위해서라도 풀뿌리 자치는 같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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