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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비밥] 격변과 고난의 시대를 '찬란하고 위대했던 여성들의 대서사시'로 광복절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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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비밥] 격변과 고난의 시대를 '찬란하고 위대했던 여성들의 대서사시'로 광복절에 만났다.
  • 안혜경
  • 승인 2021.08.20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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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일 인터뷰_"낙랑장송 하시오" ⓒ2019. 반달. All rights reserved.
김동일 인터뷰_"낙락장송 하시오" ⓒ2019. 반달. All rights reserved.

독립국을 꿈꿨던 세 명의 여성 활동가들의 서사로 독립운동과 빨치산 그리고 제주 4·3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이 영화는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 활동부터 해방과 분단(1945), 미소 군정기(1945-1948), 제주 4·3 항쟁(1948-1954), 한국전쟁(1950-1953)으로 이어지는 시기 자주독립과 하나 된 조국을 꿈꾸었던 정정화, 김동일, 고계연 세 여성의 삶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키도 작고 약하게 생겼지만 압록강을 한밤중에 오가며 독립자금 운반 등 지극히 위험한 일을 했으면서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는 정정화의 아들과 손녀의 증언을 들으며 남성들이 독점했던 표현 ‘기개 높은 분’을 떠올렸다. 찾아 읽기를 미뤘던 그 분의 <장강일기>를 바로 구매했다.

깊은 숲과 쌓인 눈을 헤치고 쫒기며 절체절명의 순간을 살아내야 했던 빨치산 고계연은 광주에서 5.18도 겪으며 적극적으로 역사의 파고에 뛰어들었다. 고계연의 딸은 엄마가 낚시를 즐기고 어탁 솜씨가 뛰어난 섬세한 분으로 기억한다. 고계연과 함께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김군자가 끔찍했던 굴속의 죽음을 말하고 그들이 불렀다는 노래 “날아가는 까마귀야 시체보고 울지 마라 몸은 비록 죽었지만 내 정신은 살아 있다”를 마음이 아프다며 나직이 읊조린다.

고이삼 신간사 대표
고이삼 신간사 대표 ⓒ2019. 반달. All rights reserved.  

조천중학교 세라복을 입고 한라산으로 입산한 무장대 연락책 김동일은 빨치산 활동도 했고 결국 일본으로 밀항해 여생을 살았다. 4·3을 회고하는 노년의 목소리가 여전히 쩌렁쩌렁하다. “내가 시를 지은 것이 있어. 억울한 죽음을 슬퍼 말라고. 당신네 흘린 피는 이슬이 돼서 영원히 영원히 빛나리로다....당신이 흘린 피는 이슬이 되어 당신네는 지금 한라산 1959년 높은... 젤 높은 솔나무가 되어가지고 낙락장송 해주시오. 억울한 죽음을 슬퍼 마시고 이 한라산 비석에.. 억울한 죽음을 슬퍼마세요. 한라산 젤 높은 솔나무가 되어서 일 년간 파릇파릇한 솔나무가 되어 낙락장송 하시오. 당신네 혼은 죽지 않고 있다.” 엄청난 양의 옷과 뜨개들과 잡다한 물건들이 정리되지도 못하고 집안에 가득 쌓여있다. 아들은 어머니가 남이 준 것을 버리지 못했다는데 인정을 소중하게 여겼던가보다.

어느 편이어도 살아남기 힘들었던 시대를 회고하는 장면은 상황극으로 연출되어 인터뷰 중간 중간에 삽입되었다. 깊은 산속 계곡 바위들과 물웅덩이, 나무로 빽빽한 검은 숲, 눈으로 덮인 춥디추운 새하얀 산. 지극히 아름답고도 위태로웠던 그 곳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생사를 오간다. 두려움으로 가슴 졸이게 만드는 상황극으로 재현된 정정화, 김동일, 고계연의 과거와 격랑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살아낸 자부심이 느껴지는 인터뷰가 여전히 우리를 갈라놓는 현대사를 가슴절절하게 보여준다.

김동일, 고계연의 활동 상황극. ⓒ2019. 반달. All rights reserved.
김동일, 고계연의 활동 상황극. ⓒ2019. 반달. All rights reserved.

이 세 분은 이제 돌아가셨지만 그 대역을 맡았던 젊은 여성 삼인은 거친 역사를 온몸으로 맞아낸 그분들의 삶을 각자의 크고 작은 개인사에 겹쳐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갈 것이다. 우리들도 그러하리라.

남성서사가 주류로 기록되는 역사 'history' 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한 여성들의 역사 'herstory'를 조명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2019년에 이미 극장개봉을 했고 관람도 했다. 그런데 서사적 자연 풍광과 연출된 인물들의 드라마적 요소들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시적 영상의 미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고난의 현대사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투쟁을 했던 세 분 여성의 삶을, 그것도 이념문제가 여전히 시험대에 오르는 현실에서 광복절에 TBS로 다시 시청하게 되니 그 감동이 특별했다. 표현 방식과 머리 길이를 놓고 페미냐, 남성혐오냐 하며 편 가름의 대상으로 삼아 시비 거는 ‘놈’들이 더더욱 쪼잔 하게 느껴졌다.

이 영화를 만든 임흥순감독은 주류 역사에서 소외된 여성들 개개인의 삶을 통해 현대사의 중요한 정치 경제사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창작했고 시적 다큐멘터리 <비념>으로 제주 4·3을 담아냈다. 한국 경제의 발전과 가정경제가 여성노동자들의 땀과 그들을 짓눌렀던 심신의 고통에 빚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 <위로공단>은 우리니라 최초로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도 수상했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대형전시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 때 보았던 김동일의 옷들은 제주에서도 전시가 가능해지면 그 옷에 스민 김동일의 혼으로 기억되는 소장품이되어 관람객이 간직할 수 있다니 어서 만나보고 싶다.

안혜경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

예술은 뜬구름 잡는 이들의 영역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해 굳어진 뇌를 두드리는 감동의 영역이다. 안혜경 대표가 매월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예술비밥'은 예술이란 투명한 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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