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한정된 자원을 가진 지구에서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적정인구 유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영국 경제학자 맬서스의 주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단히 불편한 영화다.
영화는 세계 79개국 정상들이 지구온난화에 대응하여 ‘CW-7’ 살포를 발표하는 뉴스로 시작된다. 시간은 바뀌어 2031년이다. 살아남은 인류를 태운 열차가 무한궤도를 따라 17년째 질주하고 있다. 열차 밖 세상은 냉각제 CW-7의 부작용으로 살아있는 생명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무임승차자들이 탑승한 꼬리 칸,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가 갇혀있던 감옥 칸, 인공으로 과일과 생선을 키우는 재배 칸, 아이들을 세뇌시키는 교육 칸, 상류층이 환락을 즐기는 서비스 칸, 열차의 절대 권력자 윌포드가 있는 머리 칸 등 역할과 기능에 따라 구분된 101칸으로 구분된 열차는 완전자급시스템을 갖췄다.
꼬리 칸에 사는 하류층은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을 먹으며 좁고 더러운 객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반면 그 앞쪽 칸에 사는 상류층은 호화로운 객실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으로 만든 초밥을 먹으며 수영은 물론 마약까지도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 기차는 공간·먹거리·여가가 계급에 따라 결정되는 불평등 사회이다. 또한 엔진 안에서 수명이 다 된 부품을 대신하여 기계를 움직이는 다섯 살 꼬마 티미가 상징하는 것처럼 포드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하는 세계이다. 기차가 멈추지 않으려면 또 다른 티미가 계속 공급되어야만 한다.
꼬리 칸에 사는 하층민들은 커티스를 중심으로 차별과 탄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열차 보안설계자였던 남궁민수의 도움으로 구분된 칸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기차의 심장부인 머리 칸에 도착한다.
열차의 지배자 윌포드는 스테이크를 구우며 커티스를 반갑게 맞이한다. 윌포드는 커티스에게 열차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꼬리 칸 지도자 길리엄과 협력하여 정기적으로 꼬리 칸 주민들의 반란을 유도해 왔다고 담담히 말한다.
정기적으로 반란을 유도한 이유는 생산계급을 학살하기 위해서이다. 극도로 제한된 공간인 열차에서는 식량생산과 물의 공급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구가 너무 늘어나면 식량 등 재화의 부족으로 열차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로 빠져들어 아비규환이 된다. 지도자 윌포드와 길리엄은 고결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잉여인간들을 무참히 제거했던 것이다.
맬서스는 인간을 성욕과 식욕에 좌우되는 나약한 존재로 보았다. 따라서 인간의 성욕 발현을 억제하지 않는 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추론하였다.
반면 식량은 생산요소인 토지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노동력을 투입할수록 한계생산량은 점점 감소하는 ‘수확체감의 법칙’의 지배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결과 자연 상태에서는 ‘인구증가/노동력 과잉 → 임금감소/위생악화/기아증가 → 인구감소/노동력부족 → 임금상승/위생개선 → 인구증가’라는 악순환이 무한 반복되는 맬서스 트랩(Malthusian trap)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과잉인구를 없애는 굶주림, 전염병, 전쟁 등은 필연적인 것이며 필요에 따라 조장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렀다.
맬서스에게 빈곤과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숙명이며,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모든 시도는 자연법칙에 반하는 것이었다. 그는 빈곤층을 사회악으로 규정했고, 인류의 미래는 불행할 뿐이라고 단정하였다.
하지만 역사는 맬서스의 예언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생활조건이 나아질수록 여성평균출생아수가 줄어들어 인구증가율은 둔화되었다. 식량생산량도 화학비료의 개발, 신품종 육성, 농기계 발명 등 기술혁신으로 수확체감의 법칙을 벗어나 인구 증가율을 상회하고 있다. 아프리카 등에서의 기아는 생산량이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문제이다.
그런데 맬서스의 비관을 떠올리게 하는 불길한 유령들이 출몰하고 있다. 그 유령들은 폭설, 가뭄, 산불, 홍수, 폭염 등의 기상이변과 코로나 등의 인플루엔자의 대유행 및 북극빙하의 해빙이라는 옷을 걸치고 나타나고 있다.
뜨거워지는 지구, 고갈되는 자연자원, 멸종해가는 동식물들 등 지구의 수용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범세계적 대응은 너무나 산술급수적이며 우리나라는 수동적이기까지 하다.
영화는 설국열차가 파괴되고 미래세대인 요나와 티미만이 살아남아 북극곰을 보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종국적 해결은 체제 안에서의 변화가 아니라 체제 자체를 전복하는 길밖에 없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류가 살아갈 지구를 지키기 위해 자본주의에 갇힌 열차의 문을 열어야만 한다.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격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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