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5일 남원읍 위미리 전통무용공연 및 노래자랑에서 춤을 추고 있는 양정인. (사진=양정인)
2018년 9월 15일 남원읍 위미리 전통무용공연 및 노래자랑에서 춤을 추고 있는 양정인. (사진=양정인)

 

드디어 살풀이 작품 완성이 눈앞에 다가왔다. 13분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올해 4월 중순부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춤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바람에 어려움이 많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완성이 눈앞에 다가왔다.

살풀이춤의 종류는 다양하다. 나는 이매방류의 살풀이춤을 배웠다.

살풀이춤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며 전통춤에서 가장 중요한 호흡인 정중동을 가장 잘 표현한 춤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무속인들이 추던 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기방에서도 추었다고 한다. 이매방류 살풀이는 무속 춤에 기방 춤의 요소가 들어가 있고, 다른 살풀이춤과 달리 세련된 기교와 절제된 곡선미, 단아함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인 한과 흥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작품이라고 한다.

예전에 왕가위 감독의 <일대종사>라는 무협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면서 무술이라는 소재를 아주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정중동의 작품이었다. 양조위와 장쯔이가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충격이어서 지금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특히 장쯔이가 고요하게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나비가 우아하게 날아와 살포시 앉는 것만 같았다. 춤을 추는 것인지 무술을 하는 것인지 입을 담을 수가 없었다. 정중동의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춤과 무술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살풀이춤도 정중동의 결정체였다. 강하면서도 고요하게 빠르면서도 느리게 사뿐사뿐 ~ 정 중 동

처음 춤을 배울 때, 살풀이춤에 대해 ‘왜 저렇게 축 늘어진 춤을 추려고 하고 대단하다며 감탄을 하지?’라는 무지함이 있었다. 그런데 걸음마 단계가 지나 전통춤을 조금씩 익히고,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나의 무지함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나는 공자와 노자를 접하면서 우리 춤의 원리가 동양사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양사상의 집합체가 살풀이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살풀이춤을 배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야 진정한 우리 춤을 추는 춤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통춤은 아는 만큼 보이고 감상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의미인가 보다.

살풀이춤을 배우는 동안 어깨 힘줄이 나가고, 발이 퉁퉁 붓기도 하는 등 고생도 했다. 몸에 힘을 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바람에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춤을 출 때 힘이 들어가면 몸이 더 아프지만, 힘을 뺀 채로 춤을 추면 출수록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는 것이다. 나를 버린 상태에서 공기의 흐름을 느끼며 자연과 하나가 된 듯이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거리는 들풀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이 나온다. 그러면 2~3시간을 쉬지 않고 연습해도 전혀 힘들지 않고 오히려 몸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낀다. 살풀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살풀이춤은 무의 상태에서 진정한 춤사위가 나온다. 언젠가는 무의 상태에서 춤을 추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가 무언인지 감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전통춤은 욕심낸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살풀이춤을 배우면서 더욱 깨닫게 되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수양하는 마음으로 거북이처럼 천천히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채워지면 버릴 줄 알아야 하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마음을 곱게 가져야 춤도 곱게 나온다는 이매방 선생님의 말씀처럼 전통춤은 도를 깨우치는 마음 수양이다.

이처럼 높은 품격을 지닌 우리의 춤을 아이들에게 전통춤을 가르쳐 주면 얼마나 좋을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꾸 채우라고만 강요하는 현실 속에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서양 음악의 빠른 리듬에 익숙해져 기다림이 낯선 아이들에게 좋은 인성교육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런데 우리에게서 전통예술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전통춤을 추는 사람들조차 전통춤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