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물처럼 말해요》<br>조던 스콧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책읽는곰<br>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조던 스콧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책읽는곰

‘살해당한 모차르트’라는 표현을 아시는지?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의 표현인데, 기차 여행을 하던 도중 남루한 차림의 부모들과 함께 있는 어린아이들을 보며 내뱉은 한탄의 말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이 아이들이 여러 현실적인 조건과 상황 때문에 자신들의 가능성을 미처 꽃 피우지 못하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안타까움이 새겨져 있다. 누구나 다 모차르트가 될 수 있지만,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교육으로, 정치로, 체제로, 시스템으로 그 모차르트를 죽이고 있다는 고발이기도 한 셈이다.

#1.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해 발표해야 할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늘 이런 식이었다. 소년을 태우러 온 아버지가 소년의 표정을 보곤 소년을 강으로 데려간다. 그리고는 아들에게 말한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소년은 다음 날 교실에서 아빠와 함께 봤던 강에 대해, 강물처럼 말한다. 그때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강(물)은 어떤 것이었을까?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물거품을 일으키고 굽이치고 소용돌이치고 부딪치”고 있었다고. 자신이 비록 남들과 다르게 어눌하고 이상하게 말하지만, 그것은 강물의 여러 모습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I Talk Like A River.” 물론 소년이 한순간에 말을 더듬는 것을 고칠 수는 없었다. 이제 다 큰 어른이 된 그 소년은 지금도 말을 더듬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어떤 순간도 말을 할 줄 몰랐던 게 아니라, 특별한 순간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데 서툴렀을 뿐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그 소년은 시인이 됐고, 아버지와의 경험을 아름다운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로 풀어냈다. 소년 조던 스콧에게 숨어있던 모차르트는 결코 죽지 않았다.

#2. 초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 실기시험이 있던 날. 호명되는 대로 교단 위로 나가 피리나 하모니카를 불어야 했다. 기껏해야 10초에서 30초 남짓한 짧은 시간의 연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난생 처음 남들 앞에 서는 자리, 난생 처음 연주하는 순간을. 그리고 이름이 불리던 순간까지의 거친 심장박동과 안절부절을. 짝퉁 카시오 손목시계까지 덜덜 떨리던 그 장면. 어떤 친구는 아주 잘했고 또 다른 친구들은 아주 못했다. 음악점수는 수우미양가 중 양이었다. 내 안에 있었을지도 모를 모차르트는 그렇게 무참했다. 나의 아버지는 생계의 바다에서 항해 중이었고, 제주의 바다는 거셌다.

#3. 얼마 전부터 드럼을 배우고 있다. 우연찮게 시작하게 됐는데, 사실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나의 오랜 로망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보일러가 있는 지하실 한 모퉁이에 드럼 세트를 갖추고 나름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그러다 또 우연찮게 아마츄어 밴드에 몸담게 됐다. 함께 모여 각자 맡은 악기 연습하고, 막바지에는 합주를 하는 식이다. 집에서나 혼자 연습할 때에는 어찌저찌 소리를 내지만, 합주만 들어가면 그야말로 ‘멘붕’을 겪는다. 못하던 부분은 당연히 못하지만 할 수 있는 대목까지도 엉뚱하게 연주하거나 아예 연주 자체가 안 된다. 불안한 눈빛과 거친 호흡, 과도한 긴장..... 아, 그 옛날 음악시간의 악몽이 고스란히 재현된다!

#4. 헤이, 조던! 요즘 말words은 어때? 나의 북drum은 여전해. 혼자하면 제법 솜씨가 느는듯 싶어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주할 때면 지금도 여전히 엉망이야. 내가 정한 우리 집 가훈 중 하나가 “민폐는 되지 말자!”인데, 내가 딱 지금 그 경우야. 연주하는 동료들 얼굴을 차마 처다 볼 수 없을 정도야. 조던, 너처럼 강을 보면서 다양성과 그 다양함이 어우러지는 공존의 소리symphony를 어릴 적 배우지를 못한 게 참 아쉬워. 하지만 괜찮아. 네가 강에서 배운 말하는 법을 시에서 펼치고 있다면, 나는 시에서 생각하는 법을 조금 배울 수 있었어. 가령,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했어. 쉬지 않고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를 보며 “늘 다시 시작하는 바다”라고 말이야. 매 순간 모자라지만, 모자라다고 결코 삶을 멈출 수는 없는 거야. 그래서 늘 다시 시작하는 거지. 나는 바다처럼 연주할거야. I Play Like An Ocean! 나의 모차르트는 아직 죽지 않았어!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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