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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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끝은 탈레반 승리로 끝났다. 소련을 비롯한 미국과의 20년 전쟁에서 최종 승자가 탈레반이 된 것이다.

40년의 내전과 전쟁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은 그야말로 초토화가 되었고 민간인 사망자 수만 대략 300만 명에 군인, 경찰 그리고 탈레반 사망자까지 합하면 대략 350만 명의 죽음과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어찌보면 미군 철수는 더 이상의 희생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한다.

탈레반은 아랍어로 '학생들'이라는 뜻이다. 소련과의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든든한 후견인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이었고, 미소 냉전 상태에서 미국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략과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이 무기와 자금으로 이슬람의 전사라는 뜻을 가진 무장단체인 무자헤딘이 조직됐고 이들은 소련을 상대로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을 벌이고 결국 소련은 철수한다.

소련과 10년간의 전쟁 기간에 난민이 되어 파키스탄에 피신한 이슬람 신학교 학생들과 전쟁의 상처로 고아가 된 젊은 청년들이 파키스탄에 있는 이슬람 신학교들로 모여들어 이슬람 근본주의 사상을 흡수하면서 결성된 것이 탈레반이다. 무슬림 신학교 학생들이 탈레반이다.

탈레반의 사상적 기반은  근본주의이다. 처참한 전쟁의 학살 속에서, 인간성이 말살된 곳에서 이들이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신밖에 없었을 것이다. 탈레반의 사상적 태생의 배경은 이해할 만하다.

종교에 있어 근본주의는 신본주의로 불리기도 한다.

신본주의와  근본주의는 인간과 신의 경계에 있어 항상 신의 자리가 극단적으로 최우선이 되는 자리이다. 신의 자리는 절대적이며, 선하며 전지전능하며 순수하고 결핍이 없는 완전 그 자체의 자리이다. 오직 이 신의 영역만이 참된 곳이며 모든 피조물이 지향해야 할 목적인 곳이다. 신의 영역만 너무 강조한 나머지 피조물인 창조된 인간의 자리는 미개하고 자유의지가 있지만, 죄의 나쁜 습성으로 쉽게 기울어지며 단속하고 벌하지 않으면 신을 저버리는 불완전한 존재의 자리가 된다. 이 불완전한 인간의 영역을 떠나 완전한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야지만 참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현재 세상의 삶은 허무하고  고통스럽고 힘이 드는 불완전한 인간의 자리이다.

전쟁 상황에서 벌어지는 인간성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죄 없이 죽어가는 가족과 친구와 친지들을 보며 자신들의 나약함과 분노에 치를 떨어야 했을 것이며 잔혹하게 죽이는 적들을 보며 인간의 폭력성에 깊은 회의감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인간의 양면성 즉 선과 악, 육체와 영혼, 본성과 이성, 남성과 여성등 인간성에 대한 이해도에 있어 인간은 부정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문명도 경제와 정치적인 안정 속에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부분으로 흘러가지만, 정치와 경제가 어려워지면 인간에 대한 이해 역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교 2000년의 역사 안에서는 문명의 암흑기라는 중세 시대가 기독교의 근본주의가 성행하던 시절이었다고 볼 수 있다.

기본적인 유일신 종교는 신은 사랑으로 인간을 보살피고 이에 대해 인간은 신이 정해 놓은 규칙과 계명을 잘 지키면 신의 은총으로 영원한 생명 즉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유일신 종교의 기본 뼈대이다.

하지만 근본주의 사상에서는 인간의 의무와 계명에 집착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신이 자신들을 보호하고 구원으로 이끈다는 이정표는 인간인 입장에선 철저한 신의 계명을 준수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다. 눈으로 확인 가능하며 자신들의 신과 함께 하고 있다는 증거는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종교적 의식이나 의무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근본주의자들은 정치와 종교 즉 인간과 신의 영역을 분리하지 않은 체 인간들이 짊어져야 할 짐을 계속 무겁게 만든다. 이 짐의 무게를 꿋꿋이 견디는 게 신에게로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가르치고 따른다. 그 대표 격이 이슬람의 샤리아법이다.

샤리아법 자체가 ‘지켜야 할 것’이라는 뜻이다. 샤리아법은 모하메드가 신에게서 계시를 받아 만들어진 법이 아닌 모하메드 사후 이슬람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지배권을 강화하고 일반 백성에게 의무의 굴레를 씌우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는 게 일반적인 학설이다. 탈레반을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 법을 따른다.

여기에 더해 현재 세계에 존재하는 미국과 서구로 대표되는 그리스도교 문명들은 근본주의자들 눈에는 무너뜨려야 할  바벨탑을 쌓는 인간 문명들로 인식을 한다. 세상과 인간성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차이가 불러일으키는 갈등의 가장 큰 단면이다.

세상의 모든 학문의 시작은 신을 설명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학, 과학, 문학과 미술, 음악, 춤, 의학, 기술, 법, 건축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이성과 감정에 기반을 둔 문명의 발전은 신에게로 다가가는 여정이다. 하지만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문명의 발전과 인간성 회복 특히나 여성들의 인권 회복 등을 신에 대한 반항 즉 무너져야 할 바벨탑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들은 기꺼이 자살 폭탄 테러를 자행하며 현대 인류문명의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특히나 여성들에 대한 제한과 억압은 신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끔찍한 범죄와 같다. 여성이 시장이나 대학, 극장이나 식당에 오가며 남성 무슬림 눈에 보이는 것이 도덕적 타락을 조장하며  예술, 문학, 음악, 영화, 춤, 화장은 부도덕의 상징으로 본다. 

여성의 참정권이나 정치 참여 역시 금지된다. 이런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의 단체인 탈레반의 대다수는 파슈툰족 출신들이 모여서 결성되었다. 

아프가니스탄 남부와 파키스탄 북부에 존재하는 파슈툰족은 하나의 민족이며 단지 영국에 의해 국경만 설정되었을 뿐 지금도 한 나라처럼 비자없이 서로 왕래가 가능한 상태이다. 파키스탄과 탈레반은 한 뿌리이고 한 형제라 볼 수 있다.

소련이 물러간뒤 각 부족 단위로 생활하는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각종 악행을 저지르는 각 지역 군벌들에 의한 횡포에 맞서 싸운 탈레반을 지지할 수 밖에 없었고, 탈레반은 너무 쉽게 소련이 떠난 아프가니스탄을 1996년 9월에 수도 카불에 입성, 전 국토의 90%를 지배하는 실질적인 정권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초극단적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을 앞세운 공포정치는 세계를 격앙케 했다.

2001년 9.11테러의 주범인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으로 피신했고 이들을 소탕할 목적으로 벌어진 전쟁에 미국은 대략 2600조를 쏟아부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국의 무덤이라 불리는 아프가니스탄의 선택은 공산주의를 표방한 소련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표방한 미국도 아닌 탈레반이다.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은 아프가니스탄 재건 프로젝트가 실패한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부정부패와 타락에 그 원인을 둔다. 30만이 넘는 군인과 경찰이 월급도 받지 못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암시장에 팔고 길거리에 검문소를 설치 행인들에게서 돈을 갈취하고, 각종 지원금과 후원물자들은 단계를 거칠 때마다 기하급수적으로 금액과 물품들이 사라지니 민초들의 삶은 세계 최악의 빈민국의 오명 속에서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근근이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조상 대대로 이어진 침략 전쟁 속 제국들의 행태에 그들은 외세가 자신들에게 희망이 될 수 없었음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늘과 가까이 있는 땅에서 울려 퍼지는 신은 위대하다는 외침엔 과연 어떤 희망을 담고 있을까.

어제 딸이 아프가니스탄 뉴스를 들으며 던진 말이 귓가에 맴돈다. THANKS GOD!!! I LIVE HERE. (하느님 내가 여기 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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