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진행된 제주다크투어 4·3 평화기행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불카분낭’을 만져보고 있다. (사진=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
지난해 진행된 제주다크투어 4·3 평화기행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불카분낭’을 만져보고 있다. (사진=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

오늘은 여태와는 조금은 다른 결의 유적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번 유적지들은 제주4·3 당시 민간인 학살과 직접적인 연관을 찾기 힘든 곳입니다. 쉽게 말해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많이 조명받지 못한 곳이죠. 제가 확인한 바로는 변변한 기록 자료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적지가 있는 동네 어른들의 이야기나 제주4·3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시민사회 선배들의 ‘썰’을 한 데 모아 정리했습니다. 

#최초 제주도 등록문화재 ‘북촌포구 등명대’에도 4·3의 흔적이 

제주시 조천읍 북촌포구에 있는 등명대. (사진=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
제주시 조천읍 북촌포구에 있는 등명대. (사진=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

최근 제주도는 제주시 조천읍 북촌포구에 있는 등명대(燈明臺)를 제주도 첫 등록문화재로 지정했습니다.(이번에 제주도 등록문화재로는 북촌포구 등명대를 비롯해 제주도 내 다른 지역에 있는 등명대 6기와 관음사 후불도, 금붕사 오백나한도가 지정되었습니다. 관음사와 금붕사도 4·3 당시 피해를 본 4·3유적지입니다.)

이러한 문화재 지정은 문화재보호법 개정으로 기존 등록문화재 제도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이원화하는 제도가 시행됨에 따른 것입니다. 

등명대는 바다에 나간 어선들이 포구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설입니다. 특히 북촌포구에 있는 등명대 상단부에는 건립 시기를 알 수 있는 표지석이 있어 이른바 ‘희귀도’가 높은 문화재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북촌리는 제주4·3 유적지 잘 보존되어 있어 답사나 기행 시 자주 방문하는 곳입니다. 북촌포구 인근에 맛집이 있어서 자주 찾곤 했는데, 그 식당 바로 지척에 이 등명대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이 식당은 다른 동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북촌포구 등명대 표지석. 4·3 당시 총알에 맞은 흔적이 남아 있다. (사진=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
북촌포구 등명대 표지석. 4·3 당시 총알에 맞은 흔적이 남아 있다. (사진=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

등명대 표지석에는 “대정(大正) 4년 12월 건립”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습니다. 대정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왕의 연호인데, 대정 원년이 1912년이니까 대정 4년은 1915년이 되겠습니다. 즉, 이 등명대는 1915년 12월에 만들어진 것이죠. 

등명대 앞쪽에도 제주문화원에서 세운 표지석이 있습니다. 이 표지석 내용을 살펴보면, 등명대는 바다로 나간 어부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주민들이 직접 지은 것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또 주민들은 등명대를 ‘도대불’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마 돛을 달기 위해 배에 세운 기운인 ‘돛대’에서 볼 수 있는 불이라는 의미에서 ‘돛대불’이라고 부르던 것이 비슷한 발음인 ‘도대불’로 불리게 된 게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등명대의 건립 연도를 알 수 있는 표지석에는 뭔가 부자연스럽게 훼손된 흔적이 있는데요. 바로 이 흔적이 4·3 당시 토벌대가 쏜 총탄 자국이라고 합니다. 

북촌포구 등명대 표지석에 남아 있는 총탄의 흔적. (사진=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
북촌포구 등명대 표지석에 남아 있는 총탄의 흔적. (사진=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

북촌리는 일제강점기부터 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하는 등 저항정신이 투철한 고장이었습니다. 4·3 당시에도 경찰과의 마찰이 있었고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북촌 대학살’이 벌어진 마을입니다.

4·3 당시 토벌대는 북촌을 ‘빨갱이 마을’로 규정해 아무 곳에나 총을 난사하며 다니곤 했다고 하는데, 이 등명대에 총알 자국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일주도로 앞에 있는 북촌리 비석거리에도 4·3 당시 총탄에 맞는 비석들이 남아 있습니다.

북촌리는 너븐숭이4·3기념관을 비롯해, 옴팡밭, 당팟 등 4·3과 관련한 여러 유적지가 잘 정비·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래선지 등명대와 같은 유적은 상대적으로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4·3 유적지를 둘러보기 위해 북촌을 찾는다면, 그리고 혹시 여유가 된다면 북촌포구에 있는 등명대도 찬찬히 살펴보시길 권합니다. 

#카페 포토존 바로 옆에 4·3 유적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불카분낭’. (사진=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불카분낭’. (사진=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

포토존으로 유명한 카페 바로 옆에도 4·3유적지가 있습니다. 조천읍 선흘리에 있는 ‘불카분낭(불칸낭)’인데요. 

선흘교차로에서 중산강동로를 따라가다 보면 큰 폭낭이 있는 선흘1리사무소가 나옵니다. 거기서 100m쯤 더 이동하다가 좌측 마을 안길을 따라 들어서서 좀 걷다 보면 불카분낭이라는 4·3유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처음 이 유적을 처음 방문했을 때 관광객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길래 ‘이렇게 왕래가 잦은 유적지가 있나’ 하면서 놀랐었는데요. 알고 보니 유적지 바로 옆에 있는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었습니다. 저만 몰랐던 유명 카페 포토존의 존재를 4·3 유적지 답사 통해 알게 된 것입니다.(실제 인스타그램에 이 카페의 이름을 검색하면 2만장에 육박하는 사진이 나옵니다.)

불카분낭은 불에 타버린(카분) 나무(낭)라는 뜻입니다. 불카분낭에 얽힌 사연은 이렇습니다. 1948년 11월 21일 선흘리가 토벌대에 의해 초토화되면서 마을이 불에 탈 당시에 이 나무도 함께 불에 탔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에 탄 나무에서 새순이 돋았다고 하는데요. 

불카분낭 뒤쪽 모습. (사진=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
불카분낭 뒤쪽 모습. (사진=사단법인 제주다크투어)

길가에서 나무를 살펴보면 무성한 이파리가 인상적인 생명력 넘치는 나무입니다. 반대쪽에서 보면 나무의 훼손된 부분이 보입니다. 나무 안쪽이 상당 부분 비어 있고 불에 탄 흔적도 남아 있습니다. 두 그루의 나무가 한 그루터기 안에서 생장하는 모습입니다. 겉에 껍질이 두꺼운 나무는 후박나무라고 하고, 새롭게 안쪽에서 싹을 틔운 나무는 팽나무라고 합니다. 실제로 보시면 정말 신기해요. 

이 나무를 떠올릴 때면 저는 4·3이라는 시련을 뒤로하고 삶을 살아내는 제주도 사람들의 생명력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를 어려운 말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고도 한다는데요. 회복탄력은 쉽게 말해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중산간 마을인 선흘리는 4·3 당시 큰 피해를 당한 마을 중 한 곳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걸 본 주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가만히 상상해보게 됩니다. 

신동원.
신동원.

신동원. 
비생산적인 지식이 정말 재밌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청년. 철학과 자연과학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다. 남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을 동경한다. 지금은 비영리단체 ‘제주다크투어’에 적을 두고 있다. 다크투어란 전쟁이나 테러, 재난 등 비극적 역사 현장을 찾아 성찰을 얻는 여행이다. 제주에는 신축항쟁, 일제강점기, 4·3 등과 관련한 유적이 600~800곳에 이른다. 매달 한 차례에 걸쳐 아프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품은 곳들을 안내하려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