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제주민예총 정책위원장
김동현 제주민예총 정책위원장

8월 25일 오전 제주투데이 회의실에서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와 제주대안연구공동체가 공동 주최하는 수요정책 라이브러리 시즌2 ‘전환의 꿈! 정책으로 말하다’ 네 번째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강사로 나선 김동현 제주민예총 정책위원장은 제주 지역 문화예술 실태를 점검하며 문화민주주의 기조에 입각한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예술공간 양적 팽창..그러나 초라한 문화예술정책 만족도
김동현 위원장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활동 건수로 보면 서울 경기에 비해 문화예술 활동 건수는 제주도가 더 많다. 하지만 인구비례로 보면 활발하게 문화예술 활동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부족하다. 이는 제주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양적 팽창의 문제는 전시시설에서 특히 부각된다. 김 위원장은 박물관과 미술관 수도 서울시 160개, 강원도 101개에 이어 제주도가 81개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많다면서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인구 1백만명 당 전시시설 비율이 제주도가 가장 높은데, 이는 ‘전시시설’의 기능보다는 ‘관광시설’의 목적으로 조성된 공간이 많기 때문.

공연시설도 32개로 인구비례로 따지면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많다. 김 위원장은 20년 전에도 공연장 등 예술공간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다면서 통계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많다고 밝혔다. 예술공간의 양적 팽창은 결국 낮은 문화예술 정책만족도로 나타난다. 제주 지역 문화예술정책 만족도는 5점 만점에 2.74로 낮게 나타나고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지독한 홀대
김동현 위원장은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적 홀대를 들었다. 김 위원장은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가 처음 도지사직 도전했을 때 선거 공보물에 내세운 5번째 정책으로 문화를 꺼내 들었지만 제주 로컬 문화에 포커스 맞추기보다 어느 지역에도 적용할 수 있는 피상적 정책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문화융성’이라는 표현의 경우 너무 추상적이라 실질적으로 문화예술의 발전을 이끄는 정책적 고민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지원사업을 통해 문화예술을 평가하고 시혜적인 지원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원 전 지사가 처음 제주도지사 선거에 나설 때는 피상적이나마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두 번째 선거 때는 문화예술관련 공약이 아예 언급도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비단 원희룡 전 지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정치인들의 공약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10년 도지사 선거에 나섰던 우근민 전 지사의 경우는. ‘환경문화행복지수가 높은 제주’ 딱 한 줄에 불과했다. 당시 현명관 후보 역시 ‘구도심역사문화공간 조성’을 내걸었는데 문화정책이라 보기 힘들다.

김 위원장은 문화예술에 대한 정책과 인식 수준이 지금까지 이런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문화예술이 중요한 정책적 이슈가 된 적이 없고, 그러다보니 문화예술 정책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김 위원장은 문화예술 관련 법령이 많다면서 현행 법령 체계에서 지역 문화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지역 문화 생태계를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논의하려면 법령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부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문화예술소비자를 문화예술의 주체로
김 위원장은 제주 지역 문화예술이 처한 문제를 타개할 방법을 2014년 제정된 문화기본법에서 찾았다. 기존의 문화예술 진흥 위주 정책은 문화예술가들을 시혜적 대상으로만 보고 있어서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진흥정책에 꾸준히 문제제기해 왔는데, 그 목소리를 통해 문화기본법이라는 결실을 맺었다는 것.

문화기본법에서 김 위원장이 꼽은 가장 중요한 대목은, 시민들이 문화를 향유할 권리(문화권)를 명문화한 부분이다. 기본권으로서의 문화권을 법률적으로 가장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역문화를 얘기하려면 문화권 얘기해야 하고 시혜적 문화예술 진흥을 넘어 문화기본권 시대의 정책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주아트센터 등 예술 기반시설 확충이 이뤄지면서 오페라와 뮤지컬 등 이른바 ‘고급문화’를 향유할 기회가 만들어졌지만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즐기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밝혔다. 가시적 성과에 주목하는 행정관료들과 문화적 마인드가 있다고 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정책적 기조에서 비롯되었다는 의미다.

#문화민주주의에 걸맞는 정책 필요
김동현 위원장은 문화민주주의라는 키워드에서 제주 문화예술 정책의 길을 찾았다. 문화민주주의에는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는 문화예술이 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고민이 담겨 있다면서 다양한 문화적 토양을 조성해 지속가능한 지역문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미어리그 아래 수많은 하위리그가 존재하듯 제주 지역의 저변이 확대되어야 하며, 태릉선추촌 엘리트 선수 키우듯 문화예술 정책을 펼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각종 법령과 조례 등에서 제주 지역의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는 ‘향토문화예술진흥’이라는 말이 들어있다면서 ‘향토’라는 말을 낭만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향토라는 말을 빼고 ‘지역’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원희룡 도정이 제시한 ‘제주문화예술 섬’ 역시 말의 산물일 뿐, 타 법령들과 중복돼 변별성이 없다면서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도 밝혔다.

또 각종 문화예술 지원 조례들이 문화예술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조례들에 따라 문화협력위원회. 제주문화예술위원회 등의 위원회가 만들어져 제주 지역문화를 위한 사업을 심의하기로 돼 있다. 특히 제주문화예술위원회는 3기까지 만들어졌는데 지금 보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실질적으로 회의가 소집 안 되고 있다. 상설기구가 아니라는 점도 문제다. 그렇다보니 위원회가 행정 당국의 거수기 역할 정도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관 거버넌스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질적 거버넌스가 안 되고 있다는 것. 김 위원장은 문화예술이 시민들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문화예술 관련 종사자나 행정관료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직접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주체가 직접 정책 발굴에 참여하는 ‘문화민주주의’ 정책 기조에서 △문화예술 관련 개방직공무원 공모제 확대 실시 △문화예술 지원 사업 심사 시 시민들의 참여 확대 △일시적 지원으로 그치고 있는 문화예술가 지원 사업의 경우 생계 걱정 없이 역량 강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다년 평가 지원 도입 △문화영향평가 제도 도입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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