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한진오.(사진=김재훈 기자)
굿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한진오.(사진=김재훈 기자)

홍릿물은 어디로 갔나

물음표는 거대한 여신의 발자국을 보고 싶었다. 한내의 하류 망망한 바다와 만나는 용의 연못에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코흘리개 시절 바다가 보고 싶어서 한참을 걸어 찾아갔던 구름다리 출렁대던 계곡 사이의 깊은 물이다. 아무렴 물 위에 발자국을 새겼다고 한들 밀물져오는 바닷물과 뒤섞여 사라졌겠지. 그럼 어디일까? 다른 곳을 떠올렸다.

한내의 용연보다 깊다는 산 너머의 홍릿물이다. 한달음에 전설의 홍릿물을 찾아 서귀포로 넘어갔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도시가 개발되고 도로와 건물들이 들어서는 사이 매립되고 말았다는 동네 노인의 말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노인의 눈으로 홍릿물의 지도를 그리는 듯 아득한 곳을 바라보며 하천 계곡으로 쏟아지던 물줄기의 이름들을 늘어놓았다. 다만 한 가지 홍릿물만큼이나 성스럽게 여겨온 샘이 하나 남아있으니 거기라도 보고 가랬다. ‘꼬부랑 낭 아래 행기물’이라고 일러주며. 야릇한 이름의 샘은 달리 ‘지장샘’이라 불리고 있었다.

‘지장(智藏)’ 지혜롭게 감춰놓았다는 이 샘에도 여신의 발자국은 없었다. 물음표는 결국 전설의 결말부를 떠올렸다. ‘창 터진 물’이라는 물장오리, 밑바닥이 아예 없어 한 번 발을 디디면 영원히 빨려든다는 전설의 산정호수다. 지금은 입산을 금해 누구도 갈 수 없는 곳이 된 마당이다. 그나마 수십 년 전 영화를 만들겠다던 동네 형과 한겨울에 그곳에 올랐던 기억을 더듬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장편 4.3영화를 마지막으로 완성한 뒤 숨을 거둔 그 형은 설문대의 발자국을 보았을까? 물음표를 물장오리 꼭대기까지 이끌던 그날 형은 설문대의 발자국을 영화로 만들 생각이라며 여러 차례 오르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날의 공언대로 ‘설문대할망 죽솥에 빠져 죽다’라는 영화를 만든 형은 여신의 족적을 분명히 보았겠지. 그리고 물장오리의 심연 속으로 사라진 설문대의 뜻을 헤아렸으리라.

지장샘
지장샘

마지막 남은 홍릿물 지장샘의 사연

영영 사라져버린 홍릿물의 마지막 한 방울처럼 남아있는 ‘꼬부랑 낭 아래 행깃물’ 지장샘에는 설문대의 사연과는 다른 이야기 하나가 전해 온다. 역사 속의 실존인물 호종단을 모델로 삼은 이야기다. 호종단 송나라 복주(福州) 출신으로 고려 예종 때 귀화하여 15여 년 동안 관직에 머물렀던 인물이다.

제주의 설화 속에서는 ‘고종달’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제주섬에서 영웅이 태어나지 못하게 풍수상의 길지를 찾아다니며 산혈(山穴)과 수혈(水穴)의 정기를 끊는 단혈(斷穴) 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설화의 모델인 호종단은 실제로 도교의 압승술사(壓勝術師)로 지형이나 산세를 인공적으로 조정하는 비보풍수(裨補風水)와 사람을 저주하는 술법에 능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더욱이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가 제주에 내려와 땅을 진무(鎭撫)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어서 설화를 뒷받침한다. 

이야기 속 고종달은 제주의 명산대천이 소상하게 쓰인 풍수지리서를 곳곳에서 단혈을 벌이던 중에 지장샘까지 당도했다. 그런데 책 속의 지장샘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다. 마침 근처에서 일하던 농부에게 물었더니 그런 샘은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고종달은 할 수 없이 발길을 되돌려 다른 곳으로 떠나갔다. 고종달이 허탕을 친 배후에는 지장샘이라는 이름답게 지혜롭게 감춰진 사연이 있었다.

고종달이 올 것을 알아차린 지장샘의 신령이 농부에게 자신을 숨겨달라고 청했고 이에 농부는 행기를 내밀었다. 행기란 나들이할 때 쓰는 놋그릇으로 일종의 도시락이다. 신령이 행기 속 한 사발 물로 변신하자 농부는 소의 길마 속에 감췄다. 알다시피 길마는 소의 등에 들어맞게 말발굽처럼 휘어진 나무다. 고종달의 지리서에는 꼬부랑 낭, 즉 구부러진 나무 아래 행깃물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신령이 길마 아래로 숨을 것조차 미리 예언한 신통한 책이었다. 하지만 농부의 지혜를 뛰어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한편 표선면 토산리의 ‘거슨새미’와 ‘노단새미’ 등지에도 지장샘과 똑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서 꼬부랑 낭 아래 행깃물은 여러 곳이다.

설문대의 전설을 담은 홍릿물의 본래 모습은 급속한 개발로 인해 자취를 감췄고 전설을 품은 채 살아남은 지장샘의 수량도 예전처럼 풍부하지 않다. 서귀포가 시로 승격되기 전이었던 서귀읍 시절에는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철철 넘쳐나는 지장샘의 물을 끌어다 읍민들의 식수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말이다. 오늘날 이중섭거리로 널리 알려진 곳에 지장샘의 물을 끌어다 저장하는 배수지가 있었는데 그 물조차 흔적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설문대의 키 자랑이 말하는 것은

설화 속의 설문대는 자신의 거대한 육신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자신의 키가 얼마나 큰지 재보려고 제주섬에서 깊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깊은 소를 찾아 차례로 몸을 담갔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영주십경 중 용연야범으로 유명한 제주시 한천 끝자락의 용연이었다. 짙푸르다 못해 검은 그늘이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용연에 발을 담갔더니 고작 발등까지 물이 찼다. 기가 찼던지 한걸음에 한라산을 성큼 뛰어넘어 홍릿물에 들어섰다. 용연보다는 더 깊었던지 무릎까지 물에 잠겼다. 마지막으로 밑바닥이 아예 없어서 ‘창 터진 물’이라고 불리는 물장오리오름의 산정호수에 들어섰는데 순식간에 빠져들더니 영영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용연, 지장샘, 물장오리로 이어지는 설문대의 키 자랑 설화를 단지 큰 키를 뽐내는 이야기로만 여기는데 그칠 것인가. 설화는 드러나는 이야기 속에 잠복한 메시지를 파악할 때 비로소 그것의 가치와 만나게 된다. 일본의 설화 속에는 다이다라봇치라는 거구의 신이 등장하는데 제주의 설문대와 비슷한 행적을 벌이며 후지산을 비롯한 대자연을 창조했다고 한다.

일본의 산하가 완성되었을 때 다이다라봇치는 산봉우리며 계곡마다 발을 디디며 걸어갔는데 발자국마다 산정호수와 깊은 못이 생겨났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 또한 자연을 창조하는 행위인 셈이다. 다이다라봇치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거인신들이 손가락으로 산과 대지에 구멍을 뚫자 호수가 생겨났다는 이야기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설문대의 키 자랑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는 없을까? 설문대가 창조한 산과 들이 육신이라면 홍릿물을 비롯한 제주의 샘과 산정호수며 지하수는 혈맥을 타고 흐르는 피라고 할 수 있겠다. 태초의 창조시대에 설문대는 그렇게 섬을 창조하고 그곳에 생명수를 솟구치게 했다. 그리하여 사람을 비롯한 만생명이 살게 되었고 그들은 생명의 물을 여신의 축복으로 여기며 경배했다. 고종달이란 외세가 침입해 섬땅을 유린할 때도 섬을 일구며 살아온 농투성이의 지혜로 생명수를 지켜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섬땅의 모든 것이 파괴되는 참상을 막아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지장샘을 지켜낸 농부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굿 퍼포먼스 전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 한진오.(사진=김재훈 기자)
한진오

한진오는 제주도굿에 빠져 탈장르 창작활동을 벌이는 작가다. 스스로 ‘제주가 낳고 세계가 버린 딴따라 무허가 인간문화재’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는 자신의 탈장르 창작 활동에는 굿의 ‘비결정성’과 ‘주술적 사실주의’가 관통한다고 소개한다. 저서로 제주신화 담론집 ‘모든 것의 처음, 신화’(한그루, 2019), 희곡집 ‘사라진 것들의 미래’(걷는사람, 2020)가 있고 공저로 ‘이용옥 심방 본풀이’(보고사, 2009) 등 다수가 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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