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호와 비자림
고용호 의원과 벌목된 비자림

극심한 도민사회 갈등을 만들어 낸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해 환경부가 최종 반려하면서 제주도에 모처럼 훈풍이 불어왔다.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지켜냈음은 물론 이거니와 이에 더해 제주도의 환경적, 사회적 지속가능성의 문도 활짝 열렸다. 정부의 일방적인 국책사업의 진행을 지역의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막아 낸 사실상 첫 사례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지방자치와 민주주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제2공항에 대한 역사적 성과를 일궈나가는 과정에 제주도의회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제주의 미래의 가치를 두고 벌어진 개발 찬성과 반대여론을 아울러 도민의 의사를 묻고 그 도민결정권을 지켜 낸 성과는 분명 제주도의회 의정사는 물론 한국 지방자치 역사에도 남을 중요한 업적이다.

그런데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반려 결정 이후 제주도의회의 행보는 전혀 딴판이다. 갈등의 중재자의 모습은 희미해지고 갈등유발자의 모습은 선명해지고 있다. 갑자기 개발론자나 토건기득권이라도 된 듯 무려 제주도의회 26명의 도의원이 괴상한 결의안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그 결의안이 향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제2공항이 아닌 비자림로 확포장공사였다.

결의안 초안의 내용은 실로 엄청난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군사독재시대에나 볼법한 문구들로 뒤덮혀 있었다. 결의안 초안의 요구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민숙원사업과 공공을 위한 공익사업에 대한 반대단체의 조직적 활동에 강력히 대응하여 주민의 권리와 이익을 최우선해야 한다’고 명시한 부분이다.

고용호 제주도의원이 수심 깊은 표정으로 온평리 주민들과 함께 제2공항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이번 결의안을 대표발의한 고용호 제주도의원은 제2공항 반대 시위에 참여한 바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주민숙원사업이든 공공사업이든 공익사업이든 간에 사업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의견수렴은 법적 절차로 명기된 사항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말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라는 의미다. 게다가 헌법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주민 스스로 판단하고 찬성과 반대를 정해 행동하는 것은 헌법과 개별법이 정한 정당한 행위이다.

더군다나 비자림로 확포장공사가 멈춰선 것은 반대단체의 조직적 반대행위 때문이 아니다. 당초 2015년 공사추진에 아무런 문제 없다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가 거짓이었고 부실했다는 사실을 환경부가 확인했기 때문이다. 반대단체가 없던 멸종위기 야생동물인 팔색조, 긴꼬리딱새, 애기뿔소똥구리, 두점박이사슴벌레, 맹꽁이 등을 창조한 것도 아닐텐데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더욱이 거짓과 부실로 환경영향평가를 한 평가업체는 영업정지 3개월에 과태료 500만원의 처분을 받았다. 잘못을 발견하고 이에 대한 정의를 바로 세웠다면 상을 줘도 모자랄 일일텐데 제주도의회가 나서 강력한 대응을 하겠다고 윽박지르는 것이 과연 제주도의회의 역할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고용호 제주도의원이 대표발의하고 25명이 서명한 '비자림로 확·포장사업 조기 개설 촉구 결의안'에 대해 항의하는 1인시위가 진행중이다.(사진='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 제공)
고용호 제주도의원이 대표발의하고 25명이 서명한 '비자림로 확·포장사업 조기 개설 촉구 결의안'에 대해 항의하는 1인시위가 진행중이다.(사진='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 제공)

그리고 이 결의안은 한발 더 나아가 ‘사회기반시설 확충사업 전반에 걸쳐 파급되는 조직적 반대 활동으로 지역사회의 갈등 야기, 주민 불편, 행정력과 예산낭비 등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개발사업에 어떠한 반대행위도 하지 말라는 엄포다. 제2공항 도민결정권을 위해 노력하던 제주도의회가 과연 현실에 존재했는지 꿈이라도 꿨던 것인지 자괴감에 몸서리치게 만드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무리수를 잔뜩 불어 넣은 결의안을 만든 것은 친개발세력과 토건기득권 동맹의 코미디에 제주도의회가 놀아 난 꼴이라고 밖에 읽히지 않는다. 상임위에서 결의안을 조금 손본 것 같긴 하지만 당초의 결의안에 대한 의중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의안이 폐기되지 않는 이상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의안은 여전히 민주주의의 가치와 헌법적 가치에 칼 끝을 겨누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결의안에 서명한 도의원 누구 하나 자기는 동의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가 없다. 이번 결의안 자체가 비자림로 확포장공사에 대한 전 과정을 왜곡하고 도민 간의 갈등을 조장하며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초래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특히 이번 결의안에 과반수 이상 동의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일궈온 민주주의의 땅을 밟고 현재의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과연 이 반민주적인 결의안에 정녕 동의하는 것인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결국 악의 편이고 방관은 최대의 수치, 비굴은 최대의 죄악이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 것인지 거듭해 묻고 싶다. 과연 이 결의안이 국회의장과 전국 시도의회, 전국지방자치단체에 보내지게 되었을 때 전국적인 망신에 과연 어떻게 더불어민주당이 응할지 궁금하다. 

제주도의회가 갈등의 중재자로 남을지 아니면 갈등유발자로 도민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될지를 결정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부디 제주도의회가 이성과 내정을 되찾고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국적인 창피와 망신이 불 보듯 뻔한 결의안을 통과시켜 도민들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도의원 개개인의 판단과 행동이 민주주의의 가치에 부합하는 정치 행위인지 그에 따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결정인지 거듭 숙고하고 또 숙고해 주길 당부한다.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김정도 제주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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