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은 제주 아니,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픈 손가락이다. 제주4.3의 비극은 제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군정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관통하고, 그리고 한국전쟁까지도 관통한다. 또한 제주4.3은 여순항쟁, 부마민중항쟁, 광주민중항쟁, 촛불항쟁으로 계승된다.

​제주4.3이 발생하기 직전인 1948년 2월 말부터 이듬해인 1949년 6월 제주 인민유격대의 무장봉기가 진압될 때까지의 해방직후 혼란스런 정국을 배경으로 야만적인 폭력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존엄과 평화를 외치는 작품이 <화산도>이다. 제주의 문제만을 다루지 않고, 이데올로기적 편향에도 치우치지 않으며, 작품의 주요 무대는 제주도이지만 서울과 목포뿐만 아니라 일본을 배경으로도 이야기가 펼쳐진다.

​굵직 굵직한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촘촘하게 엮어가는 이들은 모두 제주의 민중들이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고 어설프지만 강직하고, 그러나 두려움에 벌벌 떠는 사람들이다. 이 소설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있던 이념의 대립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 이방근은 마지막까지 어느 편에도 서기를 거부한다. 그는 오로지 <생명>의 편에 서고 있다.

​내가 그때의 청년이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나와 주인공을 오버랩시켜 읽을 때는 분노에 치떨어야 했다. 우리는 왜 참담한 비극의 역사를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것일까? 우리에게 오랜 침묵을 하도록 강요되어 온 역사가 이제야 조금씩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제주4.3이 단순히 '비극'으로만 기록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로써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내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오늘 누게 식계(食契)꽝?(누구 제사입니까?)"

"속숨허라. 까마귀 모른 식계(食契)여.(조용하라. 까마귀도 모르게 지내는 제사여)"

내가 어렸을 적에, 왜 까마귀도 모르는 제사가 그렇게도 많았을까? 1949년 1월 17일 너븐숭이 인근에서 군인 2명이 무장대의 습격으로 숨지자, 북촌주민 3백여 명 이상이 집단학살 당한 제주4.3의 최대의 피해 마을인 북촌리의 제사. 마치 명절인 것처럼, 한 날 한 시에 지내는 북촌마을의 제사도, 까마귀도 모르게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

​제주 4.3의 상징이 된 북촌 너븐숭이 일대의 학살과 강요된 침묵 그리고 '울음마저도 죄가 되던' 북촌리의 아이고 사건을 소환케 한다.

​이승만 정권 이후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들에 의해서 기억이 타살되었고, 그들에 의해서 제주도민들은 제주4.3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기억의 자살'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순이삼촌의 저자 현기영 선생은, 무지(無知)보다 더 무서운 건 막지(莫知)라고 얘기한다.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이게 더 무서운 거야.

알게 되면 자기 신념에 손상이 올까 봐...

누구 말을 들으려고도 안 하고,

책이나 기사를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

그게 ‘막지’(莫知)예요.

또한 이 책의 저자 김석범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기억의 말살은 생명의 말살이다'라고...

기억을 없앤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게 만드는 겁니다.

사람을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제주도민은 기억의 말살을 두 가지로 당했습니다.

첫째는 막강한 권력,

즉 이승만부터 시작해 박정희, 전두환까지,

이 사람들에 의한 기억의 말살입니다.

둘째는 기억이 두려워서 도민 자체가

기억의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제주도민이 기억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이런 말살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주도민은 그걸 견뎌냈고,

이제 70주년이 되었습니다.

4.3이 왜 일어났습니까?

바다 한가운데서 일어났나요?

제주도민은 가만히 있는데 누가 와서 일으켰습니까?

제주4.3은 제주도 내부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문제입니다.

원인이 제주도가 아닙니다.

4.3이 왜 일어났나요?

이승만이 국제적으로 정통성을 보장받으려고

제주를 빨갱이로 만들었어요.

나는 지금도 민주주의 정부라고 하면 눈물이 나요.

그때 소련은 삼상회의 결정 상황에서,

미소공위의 임시정부 신탁통치 5년 이후

조선에 민주주의 조선 민주정부를 세우려고 했어요.

(이승만이) 그걸 반대한 겁니다.

1946년 초부터 벌써 이승만은

남한에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운동을 시작했고,

6월 3일 정읍 연설에서 그 의견을 표명했어요.

미국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고요.

벌써 그때부터 기초가 닦아진 겁니다.

조선 문제를 유엔에 상정하면 안 된다는

모스크바 협정에서의 약속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그걸 위반하고

임시 조선 선거감시반을 들여오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앞으로 한국 역사가들이 연구하셔서

바로잡아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승만이)

3.1독립운동을 위해 몸 바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조국에 들어와서 한 일이 뭐예요?

한마디로 그 사람들의 대한민국 헌법은

거짓말입니다.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로 정권 기초를 닦아 놓았습니다.

정통성도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임시정부를 계승한 게 뭐 있나요?

헌법도 가짜입니다.

헌법을 다시 써야 합니다.

제주4.3은 해방 이후 한국 역사의 자리매김입니다.

제주도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승만 정부의 자리매김과

결부되는 것입니다.

- 2018년 4월 4일 제주북초등학교 강당 강연 중에서


김석범의 화산도의 원본은 일본어로 쓰여졌다. 한국 문학일까? 일본 문학일까? 한국 문단의 비평계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언어중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문학이 아니라고 하겠지만, 한국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 김석범은 디아스포라문학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재일조선문학은,

적어도 김석범 문학은 일본문학이 아니라 일본어문학, 디아스포라 문학'

이라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해왔고,

이를테면 김석범 문학은

일본문학계에서 이단의 문학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일본어로 쓰여졌다 해서

일본문학이 아니다.

문학은 언어만으로써 형성, 그 '국적'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상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다. <화산도 서문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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