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희 감독의 '스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감독의 '스프와 이데올로기' 스틸컷.

4.3을 다룬 영화가 올해 DMZ 영화제에 소개되고 있다. 그 중 개막작인 양영희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가족사에 모질게 얽힌 분단의 현대사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그 연원을 찾아 나간다.

감독의 어머니가 대동맥류 치료로 입원하면서 위험하니 아무에게도 전하지 말라며 평생 가슴에 묻어둔 4・3의 참혹한 죽음과 공포의 기억을 딸에게 꺼내놓기 시작하면서 이 다큐멘터리는 시작된다. 평생 가슴에 꼭꼭 눌러 놓은 기억의 빗장이 풀리면서 어머니의 치매도 시작된다. 

양감독의 부모는 모두 제주가 고향인 조선적 재일교포다. 부모는 아들 셋을 북송선에 태워 지상 낙원이라는 북한에 보냈다. 선전과 달리 이들은 차별과 감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특히 2013년에 개봉한 <가족의 나라>에서 보여줬듯이, 중병치료를 위해 25년 만에 감시자와 동행해서 일본에 돌아온 큰오빠가 치료도 못 받고 다시 북한으로 소환되어야 하는, 가족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잔인하고 억압적인 삶을 받아들여야했다.

이런 가족사 비극을 초래한 부모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감독은 깊은 원망을 품고 살아왔다. 부모는 30년 간 북한을 오가며 아들 가족을 만났고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 살고 있는 그 가족들을 45년간 부양했다. 그래야 했으리라!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그런 가족비극사의 뿌리를 찾아나간다. 

양감독의 어머니는 오사카에서 태어나 1945년 15살에 미군 폭격을 피해 제주에 돌아왔다. 그러나 18세에 4・3을 겪으며 약혼자를 산에서 잃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 아직 3살인 여동생을 업고 남동생과 함께 30㎞나 되는 해안길을 걸어 밀항선을 탔다. 오사카로 돌아와 제주출신 량공선을 만나 22세에 결혼했다.

2018년 양 감독부부는 치매가 점점 중해지는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를 방문해 4・3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70년 전 동생을 데리고 걸었던 그 해안을 딸과 사위가 치매 노인이 된 어머니를 휠체어에 태우고 걸어간다. 터만 남기고 사라진 마을, 4・3평화공원봉안실 위폐가 된 죽음들, 표석으로 남은 행불인들, 4・3 유적지로 채워진 제주도지도.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저지른 학살의 참혹함을 실감하게 된 딸은 “어떻게 이런 고향을 두고 살아 왔는지...” 라며 어머니가 겪었던 4.3이라는 그 처참한 국가폭력의 기억이 남한 정부를 못 믿고 북한 정부를 지지하며 오빠들을 북송선에 태운 큰 이유였음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고 평생 원망했던 어머니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4・3은 엄청난 두려움과 고통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겪지 않았던 세대에까지 어떻게 그 고통이 이어지고 있고 그로인해 다시 되돌아온 또 다른 고통이 4・3을 겪은 당사자들의 삶을 얼마나 옥죄고 있는지 이 다큐멘터리는 보여준다. 가슴에서 올라온 뜨거운 한숨을 토하지 않을 수 없다.

‘사귀는 놈이 없다’고 딸을 나무라던 생전의 아버지가 딸이 좋다면 누구든 괜찮다고 하면서도 미국 놈과 일본 놈은 안된다고 말할 때 얼굴에 서렸던 표정. 일본과 미국을 겪었던 기억의 표출이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인 사위감을 데리고 온 딸을 맞는 어머니는 건삼과 대추 그리고 마늘을 가득 채운 백숙으로 생전에 남편이 용납 못한다는 경계를 훌쩍 넘어서며 애정을 담은 음식을 준비한다.   

강희진 감독의 'May Jeju Day' 스틸컷.

DMZ영화제는 19일 자정까지 온라인 관람도 가능하다. 제주해녀를 그린 애니메이션 <할망바다>의 강희진 감독은 May Jeju Day라는 애니다큐로 초대되었다. 어릴 때 겪은 4・3의 기억을 80을 훌쩍 넘긴 노년이 되어 그림으로 기억하며 만든 이 다큐멘터리 역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 끔찍한 기억이 그려진 그림들에 심방은 오색으로 날아들어 죽은 이들의 영혼을 감싸 안는다. 더군다나 강감독은 2021년 EIDF에서 다큐멘터리 고양상을 수상했는데, 이 애니다큐에 등장한 한 분의 이야기를 <펠롱펠롱>이라는 장편으로 만들 수 있는 지원금 1000만원을 받았고 11월에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암스텔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포럼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추석이 코앞이다. 4・3과 같은 비극이 전 세계 도처에서 오늘도 벌어지고 있다. 우선 보름달을 바라보며 죽음의 폭력에 처해있거나 그 공포를 기억하는 그 모든 이들의 안녕을 염원해야겠다. 

안혜경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

예술은 뜬구름 잡는 이들의 영역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해 굳어진 뇌를 두드리는 감동의 영역이다. 안혜경 대표가 매월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예술비밥'은 예술이란 투명한 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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