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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읽기]김 서방, 설거지 할 때는 장갑을 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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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읽기]김 서방, 설거지 할 때는 장갑을 껴!
  • 노지
  • 승인 2021.09.17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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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정창권 지음, 돌베개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정창권 지음, 돌베개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정창권 지음, 돌베개

“고추장 작은 단지 하나 보낸다. 사랑방에 두고서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푹 익지는 않았다.”

“전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잘 받아서 아침저녁 반찬으로 먹고 있니? 왜 한 번도 좋은지 나쁜지 말이 없니? 무심하다, 무심해.”

손수 만든 고추장 소고기 단지를 자식들에게 보내놓고 시식 후기를 애가 닳게 기다리는 이 사람은 멀리 있는 누군가의 친정엄마가 아니라, 연암 박지원이었다.

“늦은 오후에 아내가 여러 딸들을 데리고 울방연에 가서 한참동안 구경하다 돌아왔다. 이 못은 집 앞의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꽃이 만발하고 푸른 버들이 늘어졌으며, 맑은 물이 거울처럼 비치고 하얀 돌이 가로세로 있어 기막히게 멋있는 곳이다. 그러나 술과 안주도 없이 갔다 왔으니 우스운 일이다.”

아내와 딸이 경치가 좋은 곳으로 외출에 술도 한 잔 하지 않고 맨 정신으로 돌아온 일을 자기 일기에 쓴 이 남자는 조선시대의 인물 오희문이다. 그는 1539년에 태어났다. 그의 일기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추석 명절을 코앞에 둔 지금 이 때에 더욱 그럴 것 같다. 그의 다른 일기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아침에 아내가 나보고 가사를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한참 동안 둘이 입씨름을 벌였다. 아! 한탄스럽다.”

억울함이 활자 바깥으로 흘러넘친다. 하느라고 했으나 자신의 살림을 아내가 알아주지 않아 탄식까지 하는 이 남자 오희문은 다시 말하지만, 1953년이 아니라 1593년생이다. 그가 남긴 《쇄미록》을 보면, 조선의 가족 풍경을 세심하게 짐작해 볼 수 있는데, 부부 갈등의 상당한 지분은 첩 문제 같은 게 아니었다. 바로 살림이었다. 학자들끼리는 서로 살림에 재주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문제를 개인 문집에 기록을 하기도 했다. 이를 테면, 허균은 《미암일기》를 썼던 미암 유희춘에 대해서, 의관과 버선이 때 묻고 해졌는데도 부인이 바꿔주지 않으면 스스로 꾸밀 줄 모르며, 방이 더러운데도 쓸고 닦지 않았다고 타박하는 글을 썼다.

우리가 아는 그 조선의 사내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가부장제의 온갖 나쁜 사례들이 다 비롯된 시대라고 알려진 바로 그 조선. 남자와 여자의 성역할을 나누는 게 그 시대의 성리학 탓 아니었나? 천만의 말씀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우선 퇴계부터 물리치고 와야 한다. 조선의 성리학을 확립한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는 이른바 살림의 달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두 번의 결혼을 했고, 두 번째 부인은 지적 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아내를 대신하여 집안의 살림을 모두 관장했다. 음식과 의복을 다루는 안살림은 물론이고, 농사와 반찬거리 마련, 노비와 재산 관리며 세무까지 도맡아서 했다. 요리 역시 남자에게 열려 있는 일이었는데, 부모에게 자신이 직접 음식을 차려내는 일이 효도의 한 방법이었다. 실학자 서유구가 은거 생활을 할 때 직접 농사를 지어 어머니에게 아침저녁 상을 차려드렸는데, 그때 마다 그의 어머니가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이 가득 차린 음식이 모두 자네의 열 손가락에서 나왔구먼.”

그렇다. 나는 굳이 이 책을 추석 명절을 코앞에 둔 이 때에 들고 나왔다. 코로나 시대의 명절의 분위기도 바꾸어 놓아서 부엌일의 과부하를 어느 정도 해소시켰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명절은 많은 여자들의 스트레스 주범이다. 명절 한 달 전부터 동동거리며 집안 대청소를 하고, 미리미리 장을 보고, 온갖 음식들의 리스트를 만들어 사전 작업을 해두느라 진을 빼는 풍경은 낯설지 않다. 지독하게 오랫동안 논란이 돼 온 이야기이지만, 사실은 유서 깊은 일이 아니다.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에서는 “여전히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러한 성별 역할 구분은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산업화 시대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그것도 내재적, 자발적 생성이 아닌 근현대의 식민지와 전재, 자본주의 산업화라는 외재적, 타의적인 주입”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본래 현모는 어진 어머니, 양처는 양민 신분의 처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가정에 남아 가사 노동과 자녀 양육을 떠맡는 주부의 표상으로 이데올로기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남자는 생산적인 노동을 하는 존재, 여자는 집안일을 하는 소비적 존재로 이분화가 강화되어 왔다는 건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의 풍경에 곁들여 나의 풍경 한 가지. 남편은 결혼 후 설거지를 본격적으로 하고 손에 물마를 날이 없게 되었고 마침내는 주부습진도 얻었다. 그가 나의 모친이자 자신의 장모를 앞에 두고 늙은 응석을 피웠다. “설거지를 하도 시켜서 제 손에 습진이 다 생겼어요.” 그가 습진이 생긴 곰발바닥 같은 손을 내밀었다. 한참 그의 손을 바라보던 나의 노모가 한 마디를 했다.

“김 서방, 그러니까 설거지할 때는 꼭 장갑을 껴야지!”

배운 적은 없어도 역사에 정통한, 오, 나의 어머니!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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