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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살이_들어봅써] 나에게서 아빠의 땀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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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살이_들어봅써] 나에게서 아빠의 땀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 정소민
  • 승인 2021.09.23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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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4일 오후 태풍이 지나간 후 돌작업 중인 볍씨학교 친구들. 일을 하고 난 뒤 후 땀이 온몸을 적시지만 그 땀의 의미를 각자 찾아가고 있다.(사진=볍씨학교)
지난 9월 24일 오후 태풍이 지나간 후 돌작업 중인 볍씨학교 친구들. 일을 하고 난 뒤 후 땀이 온몸을 적시지만 그 땀의 의미를 각자 찾아가고 있다.(사진=볍씨학교)

24일 비가 왔다. 태풍의 영향인 것 같다. 비가 왠지 씁쓸해 보였다.

이날도 어김없이 우리는 돌집을 짓기 위해 돌하르방 미술관으로 향했다. 비는 계속해서 땅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창문을 뒤덮었다. 와이퍼가 아무리 창문을 닦아대도 다른 빗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차에 가만히 앉아 비를 보고 있으니 오랜만에 아빠 생각이 났다. 제주에서 나름 하루하루를 바쁘고 치열하게 살다 보니 부모님을 그리워할 시간이 없었다. 작업복에 스민 흙, 먼지, 땀 냄새가 차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가끔 땀 냄새를 맡으면 아빠 생각이 난다. 괜스레 미안해진다. 육지에 있을 때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내가 제주에서 종일 일하며 흘린 땀 냄새가 났다. 그럴때마다 "수고하셨어요."라는 말을 의례적으로 건넸다. 그 땀에 베인 하루가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볍씨학교를 통해 알바, 프로그램 기획 등 무언가를 책임지는 일을 해보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제주에 오기 전까지는 나는 땀이 많이 나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미디어만 하는 무기력한 삶에 땀이 날리가 없었다. 그 때의 나를 떠올리면 스스로에게 화도 나고 부모님께도 죄송하다. 나는 사사건건 모든 일에 부정적이었고 항상 투덜거렸지만, 우리 아빠는 불평 하나 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다.

사실 나는 지금도 쉬는 시간만 기다려지고 일을 할 때도 쉽고 편한 것만 찾으려고 한다. 책임을 회피하기도 하고 뺀질거리기도 한다. 나에게 일이란 학교 수업 중 하나였다. 나의 노동은 학교가 끝나면 끝이지만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아빠의 노동은 끝이 없어 보였다. 매일 똑같은 일의 연속이었고, 주말도 주말이라 할 수 없었다. 아빠에게 휴가란 존재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면 결혼해서 가족을 만들어 양쪽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얻는다. 아빠는 하루종일 운전하고 위험해 보이는 가스를 옮기고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상대하고, 서류도 보고 이 밖에 많은 일을 하며 자세도 안 좋아지고 몸도 약해지고 근육도 빠지고 배가 나왔다. 점점 아저씨가 되어가는 아빠. 과연 현재 내가 힘들다고 하는 것이 정말 힘든 것일까? 

나는 항상 아빠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할아버지가 회사 사장이시고 아빠가 그 아들인데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나였다. 휴가도 안 내고 본인 사고 싶은 것도 안 사고 왜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 만약 나였다면 고삐 풀린 말처럼 살았을텐데. 아빠가 늘 답답해서 항상 잔소리를 했다.

협소한 생각이었다. 아빠는 할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어했다. 또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자신의 회사였기 때문에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었다. 

온 신경이 회사에 쏠린 아빠에게 좀 서운했던 것도 있었다. 힘든 상황을 혼자 삭히는 것도 답답했다. 그래서 아빠를 위한답시고 했던 표현(잔소리)들이 어쩌면 아빠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잔소리가 아니라 응원으로 힘을 줘야 했는데. 

'볍씨살이' 전후로 아빠를 보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이제야 정말 아빠와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 아빠에게 내가 마냥 어린 딸이 아니라 서로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빠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아빠와 딸이 아닌 나라는 존재로 말이다.

아빠의 땀 냄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아빠만의 색을 가진 보석이다. 나도 이제야 아빠와 같은 보석을 만들어 낼 수 있어 좋다. 아빠와 다시 만났을 때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나도 아빠와 같은 땀 냄새가 난다고. 이제야 나도 아빠를 따라가고 있다고 말이다. 아빠 혼자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분의 하루의 일상이 그려진다. 다시 아빠를 만났을 때 아빠와 더 마음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정소민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9학년 받침반 친구들과 함께 제주로 내려오게 된 정소민입니다. 저는 이번에 제주도로 내려오며 올해 꼭 성장하고 기존에 있던 저희 안 좋은 모습 불건강했던 모습들을 지워나가며 새로운 나 진정한 저를 찾기 위해 제주에 왔습니다. 아직 제주에서 지낸 지 세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써 깨지기도 하고 넘어지고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저를 보면 제주 마지막 날에 나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기대가 됩니다. 아직은 힘도 체력도, 저를 살필 수 있는 능력도 부족하지만 올해 제주에서 이것들을 채워나가 당당하게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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