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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읽기]한뼘의 자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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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읽기]한뼘의 자존
  • 삐리용
  • 승인 2021.09.24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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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김용언 지음, 반비
《문학소녀-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김용언 지음, 반비
《문학소녀-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김용언 지음, 반비

그때, 아버지가 손수 만든 아주 튼튼했던 그 책장에, 전혜린이 있었다. 기억이 맞다면 그리 두껍지 않았고, 양장 하드커버에 케이스까지 씌워진 책이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누나의 책이었겠지. 어린 내가 읽기에는 어려웠고, 재미도 없었다. 그렇게 나에게 전혜린은 없었다. 이른바 ‘문학청년’의 시절에도 전혜린은 풍문처럼 지나쳤을 뿐, 나에게 전혜린은 없었다. 다만 곁다리 에피소드가 덧붙여졌을 뿐이다. 전혜린의 동생 채린의 남편은 영화감독 하길종인데, 하길종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같은 영화학교 동기였고, 그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하길종 역시 요절하고 말았다. 하길종의 동생은 배우이자 감독으로 활동했던 하명중이라는 사실 정도.

《문학소녀》의 저자인 김용언의 전혜린은 이렇다. 열다섯 살 때 같은 반 친구가 “우리 언니가 무척 좋아하는 책인데 너한테도 어울릴 것 같아.”라며 건네준 게 전혜린과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김용언은 이 책을 통해 전혜린의 그 어떤 초상을 완성시켜보고자 한다. ‘그 어떤 초상’이라고 따옴표 쳐서 말한 것은 김용언이 단지 전혜린만을 위한 초상을 의도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전혜린이 생산해낸 텍스트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전혜린이 전혜린이 될 수밖에 없었던 텍스트들을 들여다본다. 가령 식민시대에서부터 박정희 정권의 쿠데타 정국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문학적인, 때로는 사회적인 논의들을 광범위하게 살핀다. 그래서 그 결과로 이 책은 하나의 작은 한국문학사가 되기도 하며, 동시에 또 하나의 여성문학사가 되기도 한다. 책의 부제인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는 그런 맥락에서 적절한 셈이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다. 가령 전혜린의 전체적인 삶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아서일까? 정작 책의 주인공인 전혜린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왜소해 보인다. 장편소설의 외양에 단편소설의 마무리 같은 느낌이랄까. 하다못해 책 말미에 전혜린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꼼꼼한 연보 같은 게 첨부됐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이미 그런 자료나 책들이 있는데 내가 미처 챙겨보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아쉬움일까? 어릴 적 만나지 못했던 전혜린은 언젠가 한번쯤 만날 수 있을까? 책의 마지막 문장. “문학소녀. 나도, 당신도 전혜린이었다.”라는 말이 새삼, 문학적으로, 부럽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사실 한 가지. 이른바 한국문학에서의 수필의 역사성이라고 할 만한 것. “이광수가 1910년대에 처음 생각했던, 특히 영국에서 시민들의 담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글쓰기로서의 에세이와 유사하게 ‘비평’과 ‘판단’을 요하는 글로서의 수필 개념은 1930년대에 이르러 ‘고백’. ‘예찬’, ‘대상에 대한 주체의 감정과 사유’, ‘서정적 산문’, ‘교양의 문학’, ‘아름다운 산문’으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인다”라는 대목이다. 달리 말하면, “직업적 문인(‘수필가’가 아닌 ‘창작자’)에게 수필 집필은 창작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대단히 부차적인 일, 상업적 필요에 의해 가끔 쓰는 잡문 정도로 굳어졌다”라는 사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한뼘읽기’가 하나의 에세이이기를 희망했다. 정색하고 책으로 덤벼드는 서평이나 평론이 아니라, 책하고 함께 노는 그 어떤 언어유희이기를 희망했다. 내가 읽은 텍스트를 드러내는 동시에 나를 드러내고, 드러난 내 자신이 원래의 텍스트가 품고 있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수렴되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텍스트가 두 겹 세 겹으로 확장되기를 꿈꿨다. ‘한뼘읽기’를 읽은 이들에게 어떻게 작용했을까? 디지털 시대에 생성되는 그 수많은 글들 중에 나의 글은 하나의 dot(점) 이상이 되었을까? 50여 년이 훌쩍 지난 전혜린의 에세이가 지금도 읽힌다. 하지만 5분이 채 안 돼 읽고 끝나는 글이어도 에세이는 에세이인 것이다. 이것은 나의 문학이다! 그때, 아버지가 손수 만든 투박하지만 아주 튼튼했던 그 책장에, 까치발을 하고 책들을 살피던 소년에게서 나온 문학이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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