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 같은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버튼을 누른다. '쏴아' 하는 물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에 행복해진다. 생뚱맞게 웬 빨래타령인가 싶어 의아한 분들이 계실까 모르겠다. 그런데 동물보호 단체 일이라는 게 그렇다. 동물과 마주하는 일 외에도 참 많은 일들을 해야한다. 길고양이 중성화를 위한 포획작업이나 구조작업(보통 한마리 구조에도 열 개 이상의 포획틀을 준비해야 한다.)에 나갔다 온 후 포획틀 세척과 덮개 빨래도 그 중 하나다.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목장갑이나 조끼를 빠는 일도 그렇다. 깨끗한 상태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동물들의 털이나 분변이 섞여있을 수도 있고 불특정의 길고양이가 사용한 것이라 바이러스에 감염이 됐을 수도 있어 세탁에 민감하다. 한번씩 길고양이 중성화를 위한 포획이나 구조를 다녀오면 빨래가 정말 산더미 같다. 빨래방을 이용하고 싶기도 하지만 도의적으로 안될 것 같아 우리는 각자 집으로 가져가 해결하곤 했지만 '누군가' 사무실에 세탁기를 보내주셨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행복도 잠시, 상수도과에서 전화가 왔다. 포획틀 보관창고의 수도사용량이 너무 많아 누수가 의심된단다. 누수를 찾고 수리를 하자니 바닥이 콘크리트다. 도저히 손으로는 불가능한 두께의 바닥을 파기위해 인력을 불렀더니 거의 백만원을 부른다. 울고싶다. 사무실 임대료도 밀려있는데 누수수리로 백만원이라니.

하지만 이렇게 힘들 때마다 어디선가 도움의 손길들이 나타나 마법 같은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누군가' 고된 노동을 끝내고 저녁시간을 이용해 드릴로 바닥을 깨주겠다는 분이 나서주시는가 싶더니 다른 '누군가'는 손으로는 힘들다며 포크레인을 끌고 등장해 해결해 주셨다. 다른 '누군가'는 아파트 벽에 갇힌 고양이를 구조하기 위해 수리는 걱정말고 돌을 깨라고 해주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보일러도 에어컨도 안 되는 낡은 사무실에서 지내던 우리에게 비슷한 임대료로 보증금도 없이 신축건물로 이사갈 수 있게 해주었다. 또 '누군가'는 길고양이급식소 사료를 걱정하고 있을 때 사료나 캔을 보내주시기도 한다.

마치 어릴적 읽은 동화책 속의 요술항아리처럼 결코 넘치는 법은 없지만 꼭 필요한 만큼씩만 주셔서 더욱 소중하고 감사한 도움들이다. 그 도움들이 단체를 살리고 있다. 단체를 살리는 가장 일등 공신은 당연 회비를 납부해 주시는 회원님들이다. "적은 금액이지만 후원했어요. 정말 필요한 일을 저희 대신 해주시는 것 같아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할 수고를 덜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문자를 받을 때마다 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힘이 솟곤한다. 보이지 않는 손들이 모여 단체를 살리고 제주의 동물들을 위해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지만 이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주시는 일들이 선한 영향력이 되어 널리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김미성 제주동물친구들 대표
김미성 제주동물친구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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