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미 조직국장.
윤경미 조직국장.

상시지속 업무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라는 정부 가이드라인 

고용노동부는 2020년 11월 ‘기간제 및 사내 하도급 근로자의 고용안정 및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발표했다. 개정안을 통해 앞으로 사용자가 상시·지속 업무에 대하여 근로계약 체결 시부터 기한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를 채용하도록 노력할 것을 안내했다. 상시·지속 업무란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를 말한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은 노사 권고안의 수준에 불과해,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못하는 한계가 뚜렷했다. 상시·지속 업무 직접고용 법제화를 꾸준히 주장해 온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사용자 눈치 보기를 중단하지 못하는 현 정부의 미적지근함이 가이드라인, 권고, 안내라는 단어에 묻어나고 있었다.  

임기 말기의 문재인 정부, 비정규직 공약 얼마나 이행했나?

문재인 정부의 취임 직후 발표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비정규직 관련 내용을 살펴보자.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 제도 도입 추진 △비정규직 차별시정제도 전면 개편 △도급인의 임금지급 연대책임 및 안전보건조치 의무 강화, 파견, 도급 구별기준 재정립 등이었다. 

애초 대선 공약보다 급격히 후퇴한 정책이었지만, 이마저도 제도화에는 전혀 다가가지 못한 채 임기 후반부를 맞고 있다는 비판이 팽배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서 미온적 변화가 있었을 뿐, 민간 부문의 비정규직 문제는 아예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먼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 상황을 살펴보자.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2017년 발표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추진되었다. 이후 2020년 12월 말까지 공공부문 1단계 853개 기관에서 199,53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 결정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ZERO를 호기롭게 외쳤지만 실상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환률이다. 

상시 지속적 업무라 하더라도 광범위한 전환 예외사유 때문에 전환대상에서 제외된 인원이 상당하다. 전환 절차에도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만연했다. 게다가 50%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률에는 숨어있는 거짓말이 있다. 가짜 정규직 전환 때문이다. 무기 계약직 전환과 자회사 남용이 그것이다.

정부는 무기 계약직을 정규직 전환의 한 형태로 간주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여전히 자신을 비정규직으로 규정한다. 무기한의 계약은 보장되었지만 실질적인 처우와 임금은 각종 차별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일 노동을 하고도, 여전히 비정규직 시절 받던 임금과 처우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간접고용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행태 또한 기만적이다.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 정규직 전환과정에서 자회사로 전환된 인원은 4만9709명이었다. 이는 조금 완화된 간접 고용의 한 형태일 뿐이었다.

제주만 해도 국토부 공기업 JDC 간접 고용 노동자들이 몇 개의 자회사로 편재되었지만, 여전히 JDC 원청의 임금과 처우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기존 용역회사와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불만이 노동자들에게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전환실적 20여 만 명 중 14만 명은 무기 계약직 등의 형태를 포함하여 기관에 직접 고용되었고, 4만9000여 명은 자회사로, 나머지는 사회적 기업 등으로 전환되었다. 과연, 기관의 기존 정규직과 동일한 처우와 임금을 받으며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은 이 숫자 중 얼마나 될까? 정부의 정규직 전환 실적 부풀리기에 감춰진 모순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울리고 있다. 

이제 민간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살펴보자. 공공부문 상황만 보더라도, 민간부문의 진척은 아예 기대하기조차 힘들다는 것이 충분히 예상된다. 고용노동부는 정규직 전환을 위한 가이드라인 배포 및 안내, 준수 권고 활동 등을 통하여 노동현장의 인식 확산 및 자율 준수를 유도, 정규직 전환 지원금 및 세액공제제도 등 지원제도가 운영되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안내, 차별적 처우 및 불법 파견 등 법령 위반 사항에 대하여는 철저히 점검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밝혔다. 

비정규직 채용 사유제한제도 도입, 차별시정제도 개선, 파견 및 도급 구분 기준 재정립 등 민간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과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지침과 가이드라인만을 언급하는 것이다.

민간부문의 개입은 제도와 법으로서 가능하다. 자율적인 기업의 참여와 의지에 기댄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동일하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결은 입법 과제만 남았다. 21대 국회와 같이 좋은 조건에서도 입법노력을 않는 정부에게, 다음의 노력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능력주의에 기반한 비정규직 논리, 이제는 깨야한다.

한동안 일부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시작된 공정성 담론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비도덕적 행위로 규정해왔다. 채용 시험이라는 극단적 능력주의, 서열주의를 인정하는 구조 속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단어는 외계어일 것이다. 가장 능력 있고 노력한 자가 사다리 윗 칸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한 세계에서 시험도 치지 않은 자가 정규직을 가로챈다니!

하지만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행복하지 않은 서열주의와 능력주의가 얼마나 처참한 사회질서를 만드는 지 충분히 알고 있다. 공정성을 주장하는 이들조차도 그 경쟁의 고통은 벗어나고 싶은 지옥도와 같은 것일 게다.

노동의 성격을 세분화시키고, 그 세분화된 노동을 중요한 노동과 부차적 노동으로 구분해내고, 중요한 노동은 정규직, 부차적 노동은 비정규직에게 배분하는 노동통제 전략은 요즘 기업이 사랑하는 방식이다. 비정규직 노동을 담당한 노동자들은 허드렛일과 저임금을 자신의 탓으로 받아들인다. 경쟁에서 밀린 자들의 숙명으로 착각한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틈타 도입되기 시작한 비정규직 제도는 위기의 극복이라는 탱크를 밀어붙이며 한국사회를 점령했다. 위기가 극복된 후 이전의 시스템으로 돌아갈 것이라 믿었던 노동자들의 기대와 희생은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언제든지 편하게 채용하고 해고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비정규직 제도를 맛 본 기업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정규직 채용을 더욱 줄이고, 값싼 일자리 양산에 중독되어 있다. 

이런 때일수록, 지옥도의 사다리를 걷어차야 한다. 정규직은 경쟁에서 승리한 누군가의 특권이 아니다. 정규직은 노동하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할 당연한 권리이다. 정규직은 너도, 나도, 그리고 미래의 동료시민도 가질 수 있는 인간의 기본 권리이다. 이 보편적 권리를 위해 모두가 모두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통제를 거부하고, 위계를 박살내고, 능력주의를 막아내야 한다. 이 시대 비정규직 철폐 싸움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상시·지속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는 무조건 직접 고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법으로 정해져야 한다. 

법제화되었다면, 그들이 해고되었을까?

제주 S 노인요양원에서는 몇 년간 성실히 일해 온 요양보호사들이 1년 짜리 근로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당하고 있다. 석 달도 되지 않아 6명의 노동자가 회사를 그만둬야했다. 요양보호사 노동자들의 수고와 노력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단지 회사가 강요한 1년 짜리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했다는 이유로, 이 요양원에서 저 요양원으로 쫓겨 다니고 있다. 

이들의 노동이 1년 만에 계약을 해지당할 비상시적이고 단기적인 일이었던가? 어느 업종보다 환자에 대한 전문성과 지속성이 요구되는 직종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상시·지속적 업무성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만약 상시·지속 노동자 직접고용이 법제화되었었다면, 이 요양보호사들은 해고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케어 하던 환자를 장기적으로 관리하며, 꾸준히 직장을 지켰을 것이다. 그리고 돌봄 사회서비스의 질은 지속적으로 상승해 갔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상시·지속 업무 직접 고용 법제화 즉각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 총파업, 모두를 위한 투쟁의 시작

민주노총은 오는 10월 20일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각자도생의 위기를 넘어, 연대와 단결의 힘으로 코로나19 재난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총파업은 민주노총 조합원만의 것이 아니다. 모두를 위한 싸움이다. 나의 오늘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우리 함께 손을 잡고 저항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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