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마을회가 마을 운영하면서 여성의 대표성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부녀회장' 1명을 제외하면 각 마을회의 임원 중에서는 여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마을 운영에 있어 여성의 대표성을 높이려면 어떤 전략을 갖고 다가서야 할까? 나아가 제주도 행정이 펼치는 정책들이 성평등하게 이뤄지도록 하려면? 

지난 8일 제주투데이 회의실에서 진행된 수요정책 라이브러리에서는 성(性) 주류화에 대한 논의와 제주도 성평등 정책 과제에 대한 진단 및 제언이 이뤄졌다. 제주가치와 제주대안연구공동체가 주최하는 수요정책 라이브러리 시즌2 ‘전환의 꿈! 정책으로 말하다’ 특별기획2를 마련했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이경선 제주여민회 전 대표는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해 그동안 제주여민회가 제주여성의 공적 대표성 강화, 일상에서의 안전과 평화가 보장되는 제주사회 실현, 성평등 의식 화산을 위한 교육과 문화운동으로 가부장 문화를 뒤집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밝혔다. 특히 제주여민회가 추진한 성평등 마을규약 만들기 사업은 제주를 넘어 전국적으로 반향 일으키고 있다. 각 마을회 산하 단체와 위원회 들이 남성 위주로 구성돼 마을 운영 시스템 개선의 필요성이 나날이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각 마을의 여성회를 제외하면 마을회 체계에서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택된 전략이 있다. 바로 성 주류화 전략이다.

이경선 제주여민회 전 대표(사진=제주투데이 편집국)
이경선 제주여민회 전 대표(사진=제주투데이 편집국)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는 공공 정책 결정에 앞서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효과에 대한 분석을 실시하여 모든 정책의 입법과 집행 과정에 반영하는 것을 말한다. 여성을 위한 정책을 넘어 여성이 정책 수립 과정에 참여하고, 정책 집행 시 성평등한 결과를 낳도록 집행토록 하는 것. 1995년 베이징여성대회에서 성 주류화 전략이 채택됐다. 성 주류화 전략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하나의 전략이다.

성 주류화 전략은 성평등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여성 혹은 행정기관의 여성정책 전담 부서에 국한시키지 않는다. ‘여성정책’이라 하면 대상이 여성으로 국한되지만 성평등 정책은 대상이 남성에게도 향한다. 성 주류화 전략은 특정 부서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부서와 행위 주체들에 확산하는 전략이다. 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의 변화와 모든 행위자들의 성평등 의식의 변화를  도모한다. 모든 주체들이 정책이 성평등에 미치는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효과에 민감해져야 하고 부정적 효과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과 남성이 가진 삶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젠더에 대해 민감하게 반영해야 한다. 성주류화 전략은 변혁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성평등에 대한 구조적 근본적 접근이 가능하다. 정책 추진 시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추진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론 차별성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있다. 이경선 전 대표는 화장실 면적의 예를 들었다. 여성과 남성에게 기계적 평등을 적용해 동일한 화장실 면적을 제공했을 경우 표면적으로는 평등하지만 화장실 이용 시 겪는 불편의 차이가 극명하다는 것. 이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공공기관 등의 여성 화장실의 면적을 넓히게 되었다. 변기 수도 늘었다. 여성과 남성이 화장실에서 소요하는 시간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기존에는 반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역시 성차별이다. 이 같은 성차별은 보면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성맹’에 다름 아니다.

성 주류화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부처, 행위자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전략이지만 협력체계가 전제되어야 한다. 젠더분석을 위한 체계적이고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며 다양한 주체 특히, 시민사회의 참여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경선 전 대표는 성주류화를 위한 도구로 성별영향평가, 성인지예산제도, 성별분리통계, 성인지교육 등이 있는데 이 같은 도구들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으면  성 주류화 전략이 한계를 갖게 된다고 본다.

이경선 제주여민회 전 대표(사진=제주투데이 편집국)
이경선 제주여민회 전 대표(사진=제주투데이 편집국)

이경선 전 대표에 따르면 1995년~2006년(민선 1~3기)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제주도여성특별위원회 생기는 등 여성복지를 위한 단초가 마련됐으나 여성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 없었다. 특별위원회 위원들은 여성사 관련역사 문화 단행본 책을 만들어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고 나중에 여성정책관련 연구기관이 생기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이후 민선 4기~6기에는 여성정책연구센터(4기). 여성가족연구원(5기)이 출범했다. 국가주도의 성 주류화 정책 강화 시기와 맞물리며 여성친화도시 및 성별영향평가센터가 운영되었다. 다만 ‘여성정책’이 ‘양성평등정책’으로 바뀌는 등 한계를 보였다.

2018년부터 현재(민선 7기)까지는 성평등 정책 추진기관이 강화되고 행정부지사 직속 성평등정책관도 신설됐다. 성평등 정책확산의 계기가 마련되고 성인지 예산 조례 및 성평등 기본조례가 제정되기도 했다. 

제주여민회가 추진해온 대표적인 성 주류화 전략은 마을 운영의 참여 구조 변화다. 지난 2019년, 제주여민회는 성평등 마을 규약 표준조항 마련을 위한 공론화에 나섰다. 앞서 2018년에는 마을 조사에 나서 각 마을 부녀회장과 사무장을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전수 조사를 추진한 결과 애월읍과 조천읍 마을들에서 심각성이 두드러졌다. 마을 개발위원회의 경우 위원회에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직전 이장, 노인회장, 청년회장 등 장들이 죄다 남성이었던 것. 오로지 부녀회장만 여성인 경우가 태반이다. 마을을 운영하는 데 있어 부녀회장 단 한 명만 여성인 경우가 많았다. 제주여민회는 마을주민들과 소통하면서 마을 환경에 맞도록 수정하는 방법으로 성평등 마을 규약을 만드는 일에 공을 들였고 그 결과 신도3리는 전국 최초로 성평등 마을규약 갖게 됐다.

신도3리는 성평등 마을규약에 따라 민주적이고 성평등한 마을 운영하기 위해 주민의 참여권과 발언권 보장하며 주민 배려 및 사회적 약자의 인권침해 발생 시 피해자보호조치를 의무화하고 의결권과 선거권의 평등을 보장했다. 특히 마을 임원 중 개별위원회 위촉직만이라도 여성 비율이 40%가 넘도록 했다.

이경선 전 대표는 제주도에 필요한 성평등 정책 과제로 여성 대표성 강화, 성별임금 격차 해소를 들었다. 또 여성 일자리의 안정과 안전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며 상호돌봄이 가능한 사회를 위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평등 인식 확산을 위한 교육도 필요하다.

공공기관(지방공기업 및 출자출연기관)의 경우 여성임원 비율을 20% 이상 임명하고, 임원추천위원회의 경우 여성 위원을 30%, 심의 및 자문위원회는 30% 이상 임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민간부문에 있어서는 마을운영위원회 등 자치 조직 40% 여성 할당제를 추진하고 이를 규약 안에 넣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전 대표는 물론 당연직은 어쩔 수 없지만 위촉직의 경우 40% 여성 할당제를 준수해 마을 운영이 성평등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례 혹은 마을규약 개정을 통해 성별균형 참여를 보장하고 잘 준수하는 마을에는 인센티브로 우대하는 정책을 실시해서 성평등 마을 규약 확산을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