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 고갯길》권정생 글, 이지연 그림, 창비
《들국화 고갯길》
권정생 글, 이지연 그림, 창비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이 뭘까. 딱 하나만 꼽으라면 땅을 일궈서 먹을거리를 거둬들이는 일이다. 그런 농사 일이 점점 힘들어졌다. 농사물이 싼 값에 팔리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떠나기 때문이다. 지난날에는 농사를 지으면 가까운 장터에 내다 팔거나 이웃끼리 나눠 먹었다. 지금은 바다를 건너서 먹을거리가 오기도 한다. 또 비싼 값을 받고 농산물을 팔기 위해 쌀보리 농사보다는 고추, 당근, 무, 인삼, 귤 같은 환금작물을 심는다. 같은 작물을 해마다 지으니 땅이 기름지지 않는다. 농사꾼이 적으니 온갖 기계로 농사로 짓는다. 기계로 땅을 갈아 업고 제초제와 살충제를 뿌린다. 땅에는 지렁이 한 마리 살지 않는다.

《들국화 고갯길》에서 소는 밭을 갈고 물건을 나르고 있다. 1970년대 말 어느 시골 모습이다. 할머니 소가 비료 부대를 잔뜩 싣고 서있다. 꼬마 황소는 리어카에 시멘트로 만든 굴뚝 세 개가 실렸다. 아마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대에 농촌 새마을운동을 할 무렵으로 보인다. 지금 2021년 시골 모습은 어떤가.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이 살맛나게 되었나. 아니다. 기름진 땅은 줄어들고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서 노인들만 사는 마을이 늘었다.

이 책의 그림을 보면 참 평화롭다. 황토색과 연한 녹색이 어우러졌다. 소 등에 잠자리가 앉아 놀다 간다. 가을바람에 마른 잎이 떨어진다. 들판은 가을걷이를 마치고 보리갈이가 한창이다.

하지만 소들은 이런 풍경을 마음껏 즐기진 못한다. 꼬마 황소는 먼 산을 보다가 발걸음이 늦어져서 채찍을 맞는다. 맞으면서도 자기 때문에 늙은 할머니 소도 회초리를 맞았다고 미안해한다. 늙은 할머니 소는 회초리를 수없이 맞아 궁둥이가 딱딱하다. 참 착한 꼬마 황소다. 사람은 어떨까. 사람은 자기 잘못으로 누군가가 힘들어해도 나 몰라라 하기도 한다. 할머니 소는 말한다. “하느님도 한눈만 팔고 게으름 피우는 소는 싫어하실 거야. 우린 가끔 회초리로 이렇게 두들겨 맞아야 해.” 마음 아픈 말이다. 숙명처럼 회초리를 맞아야 한다니. 잠시 이 말에 딴 생각을 했다. 소도 하느님 뜻에 따라 열심히 일을 하는데 사람 세상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은 땀 흘려 일하는 일보다는 돈을 가지고 돈을 버는 일을 열심히 찾는다. 그럴수록 땀 흘려 일하는 농사꾼이나 노동자, 도시빈민들은 더욱 힘들게 살고 가난해진다. 서울에 있는 높은 빌딩을 보라. 돈놀이 하는 회사가 눈에 제일 많이 들어온다. 증권회사, 투자회사, 은행 같은 일터 말이다. 지난날에는 교회 십자가가 제일 많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온갖 투기꾼들이 모인 회사가 세상을 어지럽힌다. 학교와 사회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도 주식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기가 막힌다.

이 책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나 지금이라도 이마에 태극기 붙여 주면 싸움터에 나가겠어요. 이 탱크 앞장세우고.” 이렇게 꼬마 황소가 말을 하자 할머니 소는 “싸움터 같은 게 다 뭐니. 우린 싱싱한 풀이 가득 찬 들판으로 가는 거야. 거기서 밭 갈고 씨 뿌리고, 그리고 거둬들이고...” 작가가 이 책을 통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평화는 총에서 나오지 않고 씨를 뿌려서 거두는 아름다운 들판에서 나온다. 묵묵히 일을 하는 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착한 마음이다.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들판에 소똥으로 농사를 짓고 기계소리 나지 않는 마을을 꿈꾼다. 소와 사람 모두 열심히 일을 하지만 하늘도 보고 꽃도 보고 바람 냄새도 맡으며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꿈꾼다. 이 책에 나오는 할머니 소는 맑고 순한 눈동자를 가졌다. 그런 눈으로 남과 북이 총칼을 버리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은종복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독자들과 만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