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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놀부_제주읽기]지금 여기 우리에게 4·3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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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놀부_제주읽기]지금 여기 우리에게 4·3은 무엇인가
  • 이성홍
  • 승인 2021.09.30 2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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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의 정명(正名)과 그 온전한 계승을 위해
제주4·3평화공원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제주4·3평화공원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 제주 청년들의 회한과 원망(願望)

제주에 터붙이고 살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것중의 하나로 예전에 제주에서 뭍으로 유학간 대학생들의 동질감이나 동류의식 같은 걸 새삼 느끼곤 한다. 이는 물론 제주섬출신이라는 베이스가 깔려있겠는데 이를 넘어 오래도록 그이들의 가슴에 응어리진 한 같은 것, 제주사람 본래의 떨쳐낼 수 없는, 단지 역사가 아니라 실제 자신들의 삶속에 분명히 각인된, 살아 꿈틀거리는 그럼에도 겉으로 쉽사리 드러내지 못하는 징표 같은 것, 바로 ‘4·3’이 같이 자리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제주의 청년들이 품고 지녔을 회한과 원망을 미루어 짐작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이 땅과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함을 깨닫고 진실과 정의를 향한 대의에 의식적으로 또는 실천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큰 흐름을 만들어가는 그림이랄까.

제주4·3평화공원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제주4·3평화공원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 4·3 진상규명의 지난한 과정

이처럼 제주사람들에게 4·3 은 무엇이었을까. 작가 정신지는 그의 책 <할망은 희망>에서 4·3 의 기억에 대하여 “공포에 질린 섬사람들이 스스로 기억을 망각으로 들이쳐서 죽이는 기억의 자살”이라고 하였다.

그럴 것이다. 혹 이를 넘어 ‘기억의 생매장’은 아닐까. 그리하여 이를 걷어내고 드러내는 일, 썩은 내가 진동하고 제멋대로인 뼛조각을 하나씩 고르게 맞추는 일, 이를 통하여 기억 너머로 세월을 소환하는 작업일랑 ‘오늘 지금 여기’를 사는 작가를 비롯한 우리 모두의 과제가 아닐까.

유신독재시절인 1978년 발표한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으로 제주의 4·3이 일반인에게 알려졌다고 보면 이후 작가의 개인적 고초와 궤를 같이하여 4·3이 엄연한 이 땅의 역사로 자리매김하기까지 제주사람들의 진실을 규명하기위한 지난한 싸움은 다시 한 번 그이들의 열망과 헌신을 바탕으로 한 또 한 번의 4·3 의 과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러한 4·3의 진상규명은 노무현정부가 들어서고 제대로 조사위원회가 꾸려지면서 얼추 그 희생의 전모를 밝힐 수 있었으며 2006년 4·3 위령제에 참가한 대통령의 공식적인 사과로 제주의 4·3 은 그 온전한 모습을 찾는 디딤돌을 밟게 된다. 

물론 이후에도 우여와 곡절을 겪게 되지만 지난 2월 여야 합의로 제주 4·3 생존희생자 및 유족 배보상의 내용 등을 담은 ‘제주 4·3 특별법 전부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이제 4·3 해결방안은 절차적 문제를 남겨두고 있다.

제주4·3평화공원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제주4·3평화공원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 4·3 의 완전한 해결이란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큰 걸음이라고 하였다. 대체 ‘4·3 의 완전한 해결’은 어떤 그림일까. 누군가의 말처럼 한국 현대사의 문제를 집약해놓은 것이 제주 4·3 이라면 미국과 한국의 포지션, 친일의 뿌리와 극우정권, 양민학살의 진상과 책임, 주민자치와 민주주의,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개발성장 일변도의 사회경제 속에 이의 해결 없이 완전한 해결이 가능한 것인가.

또 다른 작가 한진오는 말한다. “4·3 의 광풍은 섬사람들의 살과 뼈로 한라산을 쌓아올렸고 피와 눈물로 바다를 메웠다. 섬땅의 참극은 박명조차 비치지 않는 은폐된 암흑으로 매장되었다.” 

창자가 끊어질 듯한 절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 대고 어떤 이가 화해를 말한다.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화해의 마음으로 세계 평화의 섬으로써 더욱 견고해지기를” 바란단다. “피해자에게 진실한 사과와 더불어 화해와 협력, 포용, 공생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다.

무명천할머니 진아영 17주기 추모문화제에서. (사진=박연술 무용가 페이스북)
무명천할머니 진아영 17주기 추모문화제에서. (사진=박연술 무용가 페이스북)

흔히 말하듯 4·3의 정명(正名)도 요원한 터에 아직도 백비(白碑)가 쓰러진 채 제 이름을 얻어 다시 세워질 날을 처연히 기다리고 있는데 섣부른 화해와 포용 공생을 언급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여기 우리에게 4·3 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끝내 화해란 무엇인가, 용서란 무엇인가. 이는 힘의 논리에 다름 아니다. 강대국과 약소국, 중앙과 변방, 권력(무력)을 가진 가해자와 당해야하는 피해자 간의 힘의 관계이고 힘의 논리 아닌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정당한 힘을 얻게 되면서 5·18 희생자묘역이 성역화되고 윤석열도 홍준표도 찾게 된 거 아닌가. 4·3 진상규명위원회 폐지법안에 찬성하고 위령제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인사가 언제부턴가 입에 거품을 물고 4·3의 맨 앞줄에서 팔뚝질하지 않는가. 극우이고 수꼴이고 정치꾼들이 4·3 평화공원을 찾아 제단에 머리 숙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처럼 4·3은 우리에게 무얼 말하고 있는 것일까.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 4·3 이 오늘 우리에게 말하는 것

이제 개정된 4·3 특별법으로 더 많은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희생자와 피해자들의 배보상이 이루어지면 흔한 말로 반분은 풀리는 것인가. 이제 많은 관련단체들이 다양하고 풍부한 진상규명작업에 나설 테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금전적 배보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 제주도의 현실은 어떠한가. 지금 제주의 모습이 그 악머구리 같은 시절을 견디고 떼어놓고 제주사람들이 원하던 그림인가. 

지난 30년간 난개발과 과잉관광으로 천혜의 환경을 훼손하고 생태를 파괴하면서 제주를 망치고 기본적 생존권인 지하수 고갈과 오염, 쓰레기와 축산폐수로 망가지는 제주의 산들,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하수오염으로 똥물이 되어가는 제주바다, 강정 해군기지를 비롯하여 덕천리의 레이더기지, 성산 제2공항건설 등 호시탐탐 공군기지까지 차려 허울좋은 평화의 섬 대신에 군사기지화를 통하여 국가무력의 최전선으로 전락하는 것이 지금 제주의 본모습 아닌가.

제주를 제주사람을 일신의 영달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도지사 원씨같은 이. 4·3 특위를 구성하고 4·3 유적지 관리와 활용방안을 정책으로 토론하면서 한편으로 오등봉공원부지에 대단지아파트를 짓고 비자림로 확장 빨리 하라고 찬성 서명지를 돌리는 고용호, 김경학, 강성의 같은 도의원들이 버젓이 활개 치는 곳이 어디인가.

(사진=이성홍 제공)
(사진=이성홍 제공)

# 4·3 의 정명과 백비를 세우는 일

흔히 말하듯 광주의 ‘5·18 정신’이 언제부턴가 희석되고 변질되어 갔다고 한다. 제주 4·3 은 ‘대한민국의 역사’라고 천명한 이후 혹 어떤 이의 표현대로 ‘4·3 팔이’로 여겨지는 느낌은 없는가. 지금 여기저기서 4·3 을 이어받아 추념하는 많은 이들이 자신과 권력의 이해관계에 얽혀있음도 엄연한 현실이다. 

4·3의 의미와 의의를 지속적으로 찾아내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일을 간과하거나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기본적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어떠한 논의나 전개도 4·3 의 진정성을 찾는 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비자림로 공사 현장에서. (사진=이성홍 제공)
비자림로 공사 현장에서. (사진=김수오 작가)

여기에 우리는 끝내 한사람을 호명하고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양용찬, 1991년 그러니까 무려 30년 전에 개발과 투기자본이 들어와 난개발을 일삼으며 제주의 자연경관을 파괴하고 훼손하며 제주민의 삶터를 거덜낼 것을 미리 본 듯 제주의 한 청년이 제 목숨을 던져 이에 저항하였다. 그이의 유서에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의 제주도를 원한다”고 적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제주, 우리가 바라는 제주사람이 끝내 4·3의 진정한 의미와 의의가 되지는 않을까.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 우리 제주사람이 누리고 지켜가야 할 제주의 모습. 이에 신명을 다하여 애쓰고 주저없이 나아가는 일. 그렇게 우리를 세우고 조직하고 힘을 갖는 일.

어쩌면 4·3 의 정명과 백비를 바로 세우는 일 아닐까.

이성홍. (사진=정미숙 작가)
이성홍. (사진=정미숙 작가)

제주에 살러온 8년차 가시리주민이다. '살러오다', 한 때의 자연을 벗삼고 풍광을 즐기고자 함이 아니라 끼니를 챙기고 텃밭을 일구고 호롱불 아니라도 저녁무렵 은근한 난롯가에서 콩꼬투리를 까고 일찌감치 곤한 잠들어 내일의 노동을 준비하는 생.활.자, 그리 살고싶다, 그리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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