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진행하는 제주4·3역사교류사업의 일환으로 경비 일부를 지원받아 대전 골령골 유해 발굴 현장 지원활동을 다녀왔습니다. 이 글은 유골 발굴 지원을 다녀온 이후 작성된 후기입니다. 골령골 유해 발굴 현장에서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알리기 위해 힘쓴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그리고 이런 뜻 깊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에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지난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대전 골령골 집단학살터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지원했다. 사진은 약물 처리를 앞둔 발굴 유해.(사진=신동원 제공)
제주다크투어는 지난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대전 골령골 집단학살터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지원했다. (사진=신동원 제공)

“Bone talks(뼈는 말한다).”

한국전쟁 당시 수천 명이 학살된 대전 골령골 유해 발굴 현장을 지휘하던 노 교수님이 제주에서 온 손님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발굴 현황에 관해 설명하며 꺼낸 말입니다. 유해 발굴에 관한 국내 최고의 권위자인 이 교수님이 해주신 이 말은 뼈를 다루는 고고학 분야에선 금언처럼 통용된다고 합니다.

인체는 총 206개의 뼈로 구성되었습니다. 유골을 감식하면 뼈 주인의 당시 나이와 성별 등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요. 골령골에서 발견된 유해처럼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시신의 경우 숨진 원인이나 사망 당시 정황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뼈 주인의 영양 상태를 분석해 당시 사회경제적 맥락을 읽는 지표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유골을 발굴해 감식하는 작업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그 날의 참상을 더듬어 재현해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골령골에서는 유골 감식을 통해 기록에는 나와 있지 않은 18세 이하 희생자나 여성 희생자의 존재를 증명해 내기도 했습니다. 자칫 묻힐 수 있었던 역사의 편린을 수면 위로 끄집어 낸 것입니다.

제주다크투어를 비롯한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소속 단체 회원들이 대전 골령골 유해 발굴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발굴 유해의 약물 처리를 하는 모습.(사진=신동원 제공)
제주다크투어를 비롯한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소속 단체 회원들이 대전 골령골 유해 발굴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은 발굴 유해의 약물 처리를 하는 모습.(사진=신동원 제공)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지난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대전 산내면 골령골 집단 학살터에서 유해 발굴 작업을 지원했습니다. ㈔제주다크투어도 이 지원활동에 동참했습니다.

골령골. 낯선 지명이라 생소한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도 불리는 이 장소에서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8일부터 7월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국 군·경에 의해 희생되었습니다.

희생된 사람들은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수형인이었습니다. 제주4·3으로 대전형무소에 왔다가 희생된 사람도 200여 명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골령골 유해 발굴은 2007년 34구를 시작으로, 2015년 12구, 2017년 4구 등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지난 2020년에는 9~11월간 총 234구의 유해를 발굴해냈습니다. 그전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유해를 발굴해 낸 것인데요. 제주다크투어는 이 당시에도 유해 발굴 활동을 지원하며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사진은 지난 2020년 11월 대전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 모습. 제주다크투어는 이 당시에도 유해발굴을 지원했다. (사진=신동원 제공)
사진은 지난 2020년 11월 대전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 모습. 제주다크투어는 이 당시에도 유해발굴을 지원했다. (사진=신동원 제공)

올해 유해 발굴은 제1 학살지로 분류되는 대전시 동구 낭월동 13번지 일원에서 이뤄졌습니다. 총 3개의 조사팀으로 나뉘어 이 일대 3개 지역에 대한 집중 발굴이 올해 6월부터 9월 말까지 진행됐습니다.

이 기간 동안 무려 700여 구의 유골이 발굴되었습니다. 기록적인 성과입니다. 또 증언으로만 존재했던 시신 소각의 현장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한 장소에서 학살을 벌인 후 다시 흙을 덮어 그 위에서 학살을 한 정황도 포착해 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올해 유해 발굴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진실인 셈입니다.

이외에도 참혹한 학살 현장이 그대로 보존된 유골들도 발견되었습니다. 다수의 인원을 어깨가 닿을 정도로 밀집시킨 상태에서 머리 뒤로 깍지를 끼게 하고 쪼그려 앉게 한 뒤 뒤통수에 총을 쏘아 집단 총살한 현장이었습니다. 희생자들은 학살당한 자세 그대로 땅속에 묻혀 있다가 70여 년이 지난 후에야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발굴한 유골을 발견된 섹터별로 분류해 보관 중인 모습. (사진=신동원 제공)
발굴한 유골을 발견된 섹터별로 분류해 보관 중인 모습. (사진=신동원 제공)

제주다크투어는 발굴된 시신을 감식하기 전에 보존을 위한 작업을 지원했습니다. 첫날은 유골에 묻은 흙 등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고, 2, 3일차에는 공업용 아세톤으로 유골을 보존처리하는 작업을 도왔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뼈를 보고 만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번에 배운 사실인데요. 뼈가 땅속에서 오랜 시간 방치되면 골수가 마르고 연한 내부 조직이 삭아서 없어집니다. 내부 조직이 연한 척추 뼈는 아예 삭아서 없어져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대퇴부 뼈와 비교해 발견되는 개체 수가 적다고 합니다.

뼈가 오래돼 식물처럼 보이게 됩니다. 크기가 큰 대퇴부 뼈는 소나무나 아카시아 나무 같고, 크기가 작은 팔뼈는 대나무처럼 보입니다. 가끔 텅 빈 뼛속으로 흙이 들어차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땐 송곳이나 갈고리처럼 생긴 소도구를 활용해 흙을 긁어내야 합니다. 겉면에 있는 이물질은 솔을 이용해 제거합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지난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대전 골령골 집단학살터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지원했다. (사진=신동원 제공)
제주다크투어는 지난 9월 27일부터 29일까지 대전 골령골 집단학살터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지원했다. (사진=신동원 제공)

두개골의 경우 특히 높은 집중력이 요구됩니다. 두개골 속으로 흙이 들어차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흙과 뼈가 강하게 눌어붙으면서 흙을 떼어내다가 두개골도 함께 부서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시간이 지남에 뼈 두께가 얇아져서 약물에 담그는 과정에서 뼈가 바스라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치아가 살아있는 턱 부분은 특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치아를 잡아주는 잇몸이 없어서 쉽게 치아가 빠지기 때문입니다.

턱 부분 유골. 작업 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치아가 이탈한다. (사진=신동원 제공)
턱 부분 유골. 작업 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치아가 이탈한다. (사진=신동원 제공)

현재 유해 발굴이 이뤄지는 이 학살터에는 ‘진실과 화해의 숲’이 조성된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들을 추념하기 위한 시설인데요. 이곳에서 발굴된 유해들이 바로 이 시설에 봉안된다고 합니다.

현장에서는 제주에서 일손을 돕기 위해 온 우리들을 위해 유족회분들이 직접 식사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든든히 식사를 하고 더욱 열심히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족회분들이 손수 차려준 밥을 연료 삼아 더욱 열심히 지원활동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발굴은 내년까지 이어진다고 합니다. 부디 한 구의 유해라도 빛을 볼 수 있도록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제주다크투어도 이 과정에 함께하겠습니다.

아울러 새롭게 조성될 '진실과 화해의 숲'이 그동안 가슴앓이했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피해 유가족들의 가슴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시설이 되길 바랍니다.

보존을 위해 이물질 제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발굴 유골들(왼쪽), 보존을 위해 약물 세척 작업 중인 발굴 유골들(오른쪽). (사진=신동원 제공)
보존을 위해 이물질 제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발굴 유골들(왼쪽), 보존을 위해 약물 세척 작업 중인 발굴 유골들(오른쪽). (사진=신동원 제공)
대전 골령골 1학살터 일대 전경. (사진=신동원 제공)
대전 골령골 1학살터 일대 전경. (사진=신동원 제공)
제주다크투어를 비롯한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소속 단체 회원들이 현장 책임자인 박선주 전 충북대 교수(오른쪽 세번째)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신동원 제공)
제주다크투어를 비롯한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소속 단체 회원들이 현장 책임자인 박선주 전 충북대 교수(오른쪽 세번째)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신동원 제공)
신동원.
신동원.

비생산적인 지식이 정말 재밌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청년. 철학과 자연과학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다. 남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을 동경한다. 지금은 비영리단체 제주다크투어에 적을 두고 있다. 다크투어란 전쟁이나 테러, 재난 등 비극적 역사 현장을 찾아 성찰을 얻는 여행이다. 제주에는 신축항쟁, 일제강점기등과 관련한 유적이 600~800곳에 이른다. 매달 한 차례에 걸쳐 아프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품은 곳들을 안내하려 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