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사진=플리커닷컴)
가지. (사진=플리커닷컴)

가지는 치커리와 함께 제1권력자(?)에게 잘 키웠다고 칭찬을 듣는 ‘유이’한 채소이다. 가지는 병충해에 강해 대에 묶어주고 곁순만 따주면 손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7월 중순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계속 열린다. 가지는 필자처럼 게으른 농부에게는 최고의 작물이다. 
  
가지 꽃은 토마토와 감자 등 가지과가 그러듯 별 모양을 하고 있다. 꽃 가운데 5개의 수술이 있고, 그 수술들 안에서 한 개의 암술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연분홍 꽃잎, 진노랑 수술, 흑자색 암술머리가 청순했던 연애 시절의 제1권력자를 떠올린다. 

열매는 통통하면서도 잘 빠졌다. 껍질은 독특한 자주색으로 반질반질 빛난다. 주저함이 없는 고집 센 딸들과 닮았다. 가지를 자를 때 사뿐사뿐 드는 칼의 감촉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가지는 93%가 수분이다. 비타민이나 무기질 함량도 낮다. 하지만 최근 여러 가지 생리활성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가지의 자주색 성분인 안토시안이 동맥에 침전물이 생기는 것을 막아 동맥경화, 심장병, 뇌졸중을 예방하고, 스코폴레틴과 스코파론 성분이 경련을 억제해 신경통을 완화한다고 한다.  

가지는 섬유질이 대부분으로 열량이 매우 낮다. 적은 양으로 포만감을 느끼게 한다. 또 철분이 풍부해 빈혈도 예방한다.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제격이다. 
   

가지. (사진=플리커닷컴)
가지. (사진=플리커닷컴)

가지는 다른 맛을 굉장히 잘 흡수하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선조들은 가지에 고기 속을 채워 먹는 ‘가지선’, 가지를 볶아서 겨잣가루에 섞어 항아리에 보관했다가 먹는 ‘개말가지’, 가지를 산적처럼 꿰어 밀가루를 발라 구은 ‘가지누르미’, 마늘 즙을 섞은 소금물에 가지를 담가 먹는 ‘가지김치’ 굴젓을 삶지 않는 가지에 얹어 술안주로 먹는 ‘가지술지게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 먹었다. 

미국의 ‘가지 파르메산’, 중국의 ‘어향가지’, 이탈리아의 ‘가지 롤라티니’, 일본의 ‘나스 덴가쿠’ 등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이다. 이처럼 가지는 무침, 샐러드, 구이, 튀김 등 가지가지로 요리된다. 

가지가 매혹적인 것은 여기까지다. 우리 집에서 가지를 먹는 사람은 어른 둘뿐이다. 필자도 어릴 때는 가지를 억지로 먹었었다. 어머니는 밥물이 끓으면 팔등분한 가지가 담긴 양은 그릇을 밥솥에 넣으셨다. 부드럽고 깔끔했던 가지 속살이 흐물흐물해지고 푸르뎅뎅해져 밥상에 올라왔다. 필자는 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속살만 골라 최대한 덜 먹으려고 애썼었다. 

썰어놓은 가지. (사진=플리커닷컴)
썰어놓은 가지. (사진=플리커닷컴)

가지는 우리 딸들만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가지를 싫어한다. 설문조사 업체인 패널나우가 지난해 전국 3만8379명을 대상으로 가장 싫어하는 채소를 조사한 결과 가지가 17.6%로 1위를 차지했다. 당근이 15.1%로 2위이고 피망, 오이, 브로콜리가 그 뒤를 잇는다. 

왜 어릴 때 그렇게 싫었던 미나리, 양하 등의 채소를 나이가 들면 더 찾게 되는 것일까? 거기에는 과학적 이유가 있다. 아이의 혀에는 여러 가지 맛을 느끼는 ‘미뢰’가 성인보다 3배가량 많다고 한다. 따라서 아이는 어른보다 채소의 쓴맛을 3배 이상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채소 먹기를 강요하면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필자는 딸들에게 채소를 먹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다. 첫째, 심고 수확하는 일을 같이 하려고 했다. 자신이 직접 재배한 채소는 거부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둘째, 시장을 볼 때는 딸들을 데려 가려고 했다. 점원에게 “제 딸이 피망을 저보다 잘 먹어요. 피망을 잘 먹어서 그런지 감기도 안 걸리고요. 정말 기특하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가지 요리. (사진=플리커닷컴)
가지 요리. (사진=플리커닷컴)

셋째, 요리를 스스로 하게 하거나 돕게 했다. 요리를 하면 채소 맛을 보아야 하고, 자기가 요리한 음식이 더 맛있는 법이다. 그래도 딸들이 유이하게 먹지 않는 채소가 가지와 당근이다. 그래서 요즘은 딸들에게 가지와 당근을 먹어야 어른으로 인정한다고 협박 중이다.

우리 땅에서 나는 것이 우리 체질에 가장 잘 맞는 식품이다. 신토불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제주 땅에서 키워지고, 조상들이 오랫동안 먹어왔던 작물, 그중에서 제주 땅에 특화된 고유의 품종을, 바로 제철에 먹는 것이 우리 몸과 환경에 가장 좋다. 왜냐하면 그런 농산물은 농약·항생제·화학비료를 덜 치고 유전자변형 농산물이 아닐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필자는 가장 지역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한다고 믿는다. 

고기협.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격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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