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2021-11-27 00:09 (토)
[제주옛썰] 제주음식에 담긴 역사이야기
상태바
[제주옛썰] 제주음식에 담긴 역사이야기
  • 고진숙
  • 승인 2021.10.06 07:00
  • 댓글 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이란 사람이 200년 전에 쓴 일명 <미식예찬>에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한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냉국에 된장을 넣어 먹는다면 당신은 제주사람!이다

제주 사람들이 왜 그토록 된장을 즐겨 먹게 된 것일까? 이것에 대해선 염전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탓이라고 한다. 세상에, 사방팔방이 바다인 섬에서 소금이 귀하다니! 하겠지만 제주의 바다는 소금결정이 만들어지기 힘들었는데, 한라산에 내린 엄청난 양의 비가 바다로 흘러들어 염분농도가 낮기 때문이다. 해남 등에서 사와야 하는 소금은 제주사람들에겐 작은 금덩이였다.

소금은 귀한대신에 콩은 흔했다. 고려에서 제주에 파견된 관리는 일단 15살 이상의 남자 한 명당 콩 한말씩을 걷었다. 변방에 파견된 관리에 대한 일종의 위로금인 셈이니 제주에 한번 다녀오면 부를 이뤘다. 고려의 관리들은 제주를 ‘(뇌물받기) 풍요로운 땅’이라고 불렀다.

콩 한말은 18ℓ니까 작지 않은 양이다. 이때 이미 콩은 집집마다 충분히 수확되었고, 된장은 항아리 가득 있었다. 자연스럽게 소금보다는 간장, 된장이 국은 물론 거의 모든 음식조리에서 기본이 되었다. 제주에는 논이 없어 거친 잡곡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데 신선한 채소나 해물을 넣고 된장만 풀어 만든 (냉)국은 잡곡밥을 술술 넘길 수 있게 해주고 훌륭한 단백질의 공급원이기도 하다.

콩은 처음부터 제주에서 자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주아주 오래전에 콩주머니를 들고 제주를 찾아온 이들이 있다. 그들이 콩의 원산지인 고구려족 유민이다. 그들은 콩으로 된장, 간장 만드는 법도 알려준다. 고구려는 된장, 간장 같은 발효식품의 원조국이기도 하다. (고을나족은 고구려계 유민들이라고 한다.)

고구려족이 남긴 음식문화의 유산은 그뿐만이 아니다. 제주 토속 장아찌인 마농지(풋마늘대장아찌)도 고구려에서 나온 것이다. 원래는 그러니까 호랑이가 곰이랑 동굴에서 사람이 되려면 먹으라고 했으나 못먹겠다고 도망간 그 마늘은 달래라고 한다. 영역싸움에서 승리한 곰 부족이 지배한 영토가 고구려족의 땅이었고, 이들은 간장에 달래와 사냥해온 고기를 담갔다가 꼬치에 꿰어 구워먹었다. 고구려는 맥족이므로 이 꼬치구이는 맥적이라고 불렀다. 인디언들에게 구운고기는 축제라는 말과 동의어였듯이 맥적 또한 축제음식이고 의례음식이었다. 탐라국의 의례는 국가의례나 마을의례였고, 맥적을 나눠먹는 날이다. 

맥적의 흔적은 현재 제주의 제사상에 올라가는 (고기)적으로 남아 제주 사람들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맥적은 통바베큐를 꼬치에 꿰어 구운 뒤 잘라먹는 음식이었다. 제주에서는 골고루 나눠먹기 위해 균분한 고기를 이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적(炙)은 꼬치구이의 상형문자 그대로 만들어진 한자이다. 불(火)위에 고기(肉=月)가 이글이글 익고 있다. (사진=김현정 성읍전통음식보전회)
맥적의 흔적은 현재 제주의 제사상에 올라가는 (고기)적으로 남아 제주 사람들의 소울푸드가 되었다. 맥적은 통바베큐를 꼬치에 꿰어 구운 뒤 잘라먹는 음식이었다. 제주에서는 골고루 나눠먹기 위해 균분한 고기를 이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적(炙)은 꼬치구이의 상형문자 그대로 만들어진 한자이다. 불(火)위에 고기(肉=月)가 이글이글 익고 있다. (사진=김현정 성읍전통음식보전회)

이날은 또 쌀로 만든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쌀은 섬 밖에서 사와야만 하기 때문에 성주가문이나 마을 유력가문(토호)들의 독점품이었다. 이들은 귀한 쌀로 만든 떡을 모두가 나눠먹을 수 있도록 작고 동그랗게 빚어 돌림으로써 권위를 과시했다. 이 떡이 돌래떡이다. 의례가 끝나면 가난한 자들도 귀한 쌀 맛을 볼 수 있었다. 

탐라국시대의 의례는 조선시대에 공식석상에서 퇴출, 무속의례로 살아남아 남성중심 가문문화에 맞서 여성중심의 마을문화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이 말은 제주 무속행사의 핵심을 표현한 말.(사진=제주투데이 DB)
탐라국시대의 의례는 조선시대에 공식석상에서 퇴출, 무속의례로 살아남아 남성중심 가문문화에 맞서 여성중심의 마을문화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이 말은 제주 무속행사의 핵심을 표현한 말.(사진=제주투데이 DB)

조선시대 제주에 온 목사들은 한결같은 신념을 가진 유교 근본주의자들이 많아서, 미개한 제주사람들을 교화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제주에는 신들도 많고 그들을 모시는 신당이 마을마다 몇 개씩 있었다. 탐라국자체가 신화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였다. 

제주 목사들이 강력한 유교문화의 세례를 퍼부은 결과 그나마 가장 성공한 것은 제사의례이다. 가문중심의 조상신 숭배문화를 정착시키고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질서를 만들 수 있었다. 제사에는 여자는 참석할 수 없고, 대를 잇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된다. 양자문화, 축첩문화가 제주에서는 아주 최근까지도 존재했다.

유교문화가 제주 사회에 남긴 가장 강력한 흔적은 제사상위의 떡차림이다. 무속의례에서 쓰이는 돌래떡을 퇴출시키고, 다양한 모양의 떡이 규칙에 따라 차려져있다. 이것은 각각 땅 -구름 -달 -해 -별을 상징한다.  이런 떡차림은 제주만이 유일하다. 

땅 -구름 -달 -해 -별을 상징하는 제편-은절미-솔변-절변-우찍이 떡돔베(접시)위에 차례대로 올려져있는 모습. 맨 밑에 땅을 상징하는 제편은 육지에서는 백병, 혹은 백편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멥쌀 시루떡이다. 제주민속촌박물관 (사진=고진숙)
땅 -구름 -달 -해 -별을 상징하는 제편-은절미-솔변-절변-우찍이 떡돔베(접시)위에 차례대로 올려져있는 모습. 맨 밑에 땅을 상징하는 제편은 육지에서는 백병, 혹은 백편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멥쌀 시루떡이다. 제주민속촌박물관 (사진=고진숙)

 

당쟁이 격화되는 조선후기에 서로 경쟁하듯 상차림 문화를 만들었지만 가문에 따라 다르고, 지역에 따른 것이 제사 상차림법이다. 그 때문에 제주목사들은 제주에 유교식 제사법을 정착시키려는데 혼란을 겪었다. 유교경전에도 상차림 규칙은 나와 있지 않았다. 

이런 딜레마로부터 벗어나는데 도움을 준 격식이 왕실제사법이고 그중에서도 떡차림이다. 제주의 여염집에서 구할 수 없는 음식들은 어쩔 수 없지만 떡은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것이 유교식이란 보증은 사실 없지만 그래도 증명가능한 유일한 규범이었다. 물론 육지의 양반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감히 왕실의 예법을!

이토록 유교문화 정착에 공을 들였지만 제주 사람들의 제사상은 늘 두 개가 차려진다. 하나는 조상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전상이라고 해서 대문을 지키는 문신(門神)을 위한 상이다. 제주는 1만8천 신들의 땅이고, 그것은 제주 사람들이 자연을 경외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형식을 바꿀 수 있지만 정신을 바꾸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한 사회의 요리는 그 사회의 구조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했다. 제주사람들의 음식 또한 기록되지 않은 탐라사이자 제주향토사인 셈이다.

구름을 상징하는 은절미는 일종의 인절미처럼 찹살가루로 만들지만 육지처럼 떡메로 치지 않고, 익반죽해서 정사각형으로 잘라 찐 떡이다. 반달모양으로 만들어 달을 상징하는 솔변은 육지에서는 없는 떡이라고 한다. 제주만이 유일하게 이런 유교식 제례규칙을 철저히 지킨 증거이기도 하다. 이떡의 이름이 솔변인 이유는 소나무가지에 걸린 반달에서 영감을 얻은 떡이라고 하니, 매우 낭만적이다. 부잣집에서는 솔변을 두껍게 만들어서 부를 과시했다고 하고 설날에는 떡국떡으로 쓰기도 했다. 우찍은 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별모양의 틀로 찍어서 만든 뒤 기름에 튀기기 때문에 기름떡이라고 한다. 제주 사람들에겐 소울푸드이기도 하다. (사진=김현정 성읍전통음식보전회)
구름을 상징하는 은절미는 일종의 인절미처럼 찹살가루로 만들지만 육지처럼 떡메로 치지 않고, 익반죽해서 정사각형으로 잘라 찐 떡이다. 반달모양으로 만들어 달을 상징하는 솔변은 육지에서는 없는 떡이라고 한다. 제주만이 유일하게 이런 유교식 제례규칙을 철저히 지킨 증거이기도 하다. 이떡의 이름이 솔변인 이유는 소나무가지에 걸린 반달에서 영감을 얻은 떡이라고 하니, 매우 낭만적이다. 부잣집에서는 솔변을 두껍게 만들어서 부를 과시했다고 하고 설날에는 떡국떡으로 쓰기도 했다. 우찍은 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별모양의 틀로 찍어서 만든 뒤 기름에 튀기기 때문에 기름떡이라고 한다. 제주 사람들에겐 소울푸드이기도 하다. (사진=김현정 성읍전통음식보전회)

 

해를 상징하는 둥그런 모양의 절변은 쌀로 만든 떡인데, 두 개가 한 쌍으로 되어 있다. 이 떡이 잘못해서 둘로 나눠지면 부모가 갈라선다고 해서 아이들이 매우 조심했다고 한다. 쌀이 귀한 동쪽지역에선 하나로 된 절변을 올렸다.(사진=김현정 성읍전통음식보전회)
해를 상징하는 둥그런 모양의 절변은 쌀로 만든 떡인데, 두 개가 한 쌍으로 되어 있다. 이 떡이 잘못해서 둘로 나눠지면 부모가 갈라선다고 해서 아이들이 매우 조심했다고 한다. 쌀이 귀한 동쪽지역에선 하나로 된 절변을 올렸다.(사진=김현정 성읍전통음식보전회)

 

고진숙

고진숙 작가

고진숙 작가는 용눈이오름 아래에서 태어나 제주 밖에서 바람처럼 살았다. 지금은 일 년의 절반을 제주에서 보내는 반서(울)반제(주)인이다. 역사동화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을 시작으로 최근 '청소년을 위한 제주 4.3'까지 다양한 역사콘텐츠들을 쓴 고 작가. 매월 첫째주 수요일 독자들과 만나는 [제주예썰]은 고진숙 역사작가의 눈으로 제주가치를 재평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8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윤진한 2021-10-07 04:08:26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

윤진한 2021-10-07 04:07:39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무속은 은.주시대 始原유교의 하늘숭배,산천숭배,조상숭배, 주역(점)등에서 파생된 유교의 지류.
역사적 순서로 보면 황하문명에서 은.주시대의 시원유교[始原유교:공자님 이전 하느님(天)과 여러 神明을 숭배]에서, 한국 고조선의 기자조선으로 始原유교유입, 기자조선(始原유교) 마지막왕 기준의 후손이 삼한건설, 삼한(始原유교)의 영토에서 백제(마한).가야(변한).신라(진한)가 성립됨.@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윤진한 2021-10-07 04:06:02
소수림왕때 외래종교 형태로 단순 포교되어, 줄곧 정규교육기관도 없이, 주변부 일부 신앙으로 이어지며 유교 밑에서 도교.불교가 혼합되어 이어짐. 단군신화는 고려 후기 중 일연이 국가에서 편찬한 정사인 삼국사기(유교사관)를 모방하여, 개인적으로 불교설화 형식으로 창작한 야사라는게 정설입니다.

유교,공자.은,주시대始原유교때 하느님.조상신숭배.세계사로보면 한나라때 공자님도제사,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성립,수천년전승.한국은殷후손 기자조선 기준왕의 서씨,한씨사용,三韓유교祭天의식. 국사에서 고려는 치국의道유교,수신의道불교.



세계사로 보면 한나라때 동아시아 지역(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 세계종교 유교가 성립되어 지금까지 전승. 이와 함께 한국 유교도 살펴봄.

한국 국사는 고려는

윤진한 2021-10-07 04:05:28
이런 전통적인 신명 섬기기에 대해서, 공자님도 오래된 관습으로, 논어 "향당(鄕黨)"편에서, 관습을 존중하는 예를 표하셨습니다. 신명(神明:천지의 신령)모시기 전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상을 섬기는 제사는 유교가 공식적이고, 유교 경전에 그 절차와 예법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유교경전 예기에는 상고시대 조상신의 위치에서 그 혼이 하늘로 승천하시어 인간을 창조하신 최고신이신 하느님[天(하느님, 하늘(하느님)]하위신의 형태로 계절을 주관하시는 五帝가 계십니다. 유교는 하느님(天), 五帝, 地神, 山川神, 부엌신(火관련)숭배등 수천년 다신교 전통이 있어왔습니다.

@한국은 세계사의 정설로,한나라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에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국으로 수천년 이어진 나라임. 불교는 고구려 소수림

윤진한 2021-10-07 04:04:40
@동아시아는 수천년 유교사회입니다. 공자님 이전의 始原유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 이전의 구약성서 시대에 해당됩니다. 하느님(天).神明,조상신 숭배가 유교의 큰 뿌리입니다. 유교는 국교로, 주변부 사상으로는 도가나, 음양가, 묵가사상등이 형성되었고, 법가사상은 이와는 다른 현실적인 사상이며,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방법이었습니다(진나라때 강성하고, 유교나 도교와 달리, 한나라때 율령이 반포되어 이후 동아시아에 유교와 별도의 성격으로 국가통치에 활용됨).@일부 지역에서 굿이나 푸닥거리라는 명칭으로 신령숭배 전통이 나타나도, 이를 무속신앙이라 하지는 마십시오. 불교라고도 하지 마십시오. 유교 경전 논어 팔일(八佾)에서는 공자님이전부터 섬겨온 아랫목 신(안방신), 부엌신등을 섬기는 전통도 수록하고 있습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