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이란 사람이 200년 전에 쓴 일명 <미식예찬>에 이런 문장이 있다고 한다.
“당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겠다.”
냉국에 된장을 넣어 먹는다면 당신은 제주사람!이다
제주 사람들이 왜 그토록 된장을 즐겨 먹게 된 것일까? 이것에 대해선 염전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탓이라고 한다. 세상에, 사방팔방이 바다인 섬에서 소금이 귀하다니! 하겠지만 제주의 바다는 소금결정이 만들어지기 힘들었는데, 한라산에 내린 엄청난 양의 비가 바다로 흘러들어 염분농도가 낮기 때문이다. 해남 등에서 사와야 하는 소금은 제주사람들에겐 작은 금덩이였다.
소금은 귀한대신에 콩은 흔했다. 고려에서 제주에 파견된 관리는 일단 15살 이상의 남자 한 명당 콩 한말씩을 걷었다. 변방에 파견된 관리에 대한 일종의 위로금인 셈이니 제주에 한번 다녀오면 부를 이뤘다. 고려의 관리들은 제주를 ‘(뇌물받기) 풍요로운 땅’이라고 불렀다.
콩 한말은 18ℓ니까 작지 않은 양이다. 이때 이미 콩은 집집마다 충분히 수확되었고, 된장은 항아리 가득 있었다. 자연스럽게 소금보다는 간장, 된장이 국은 물론 거의 모든 음식조리에서 기본이 되었다. 제주에는 논이 없어 거친 잡곡밥을 먹을 수밖에 없는데 신선한 채소나 해물을 넣고 된장만 풀어 만든 (냉)국은 잡곡밥을 술술 넘길 수 있게 해주고 훌륭한 단백질의 공급원이기도 하다.
콩은 처음부터 제주에서 자생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주아주 오래전에 콩주머니를 들고 제주를 찾아온 이들이 있다. 그들이 콩의 원산지인 고구려족 유민이다. 그들은 콩으로 된장, 간장 만드는 법도 알려준다. 고구려는 된장, 간장 같은 발효식품의 원조국이기도 하다. (고을나족은 고구려계 유민들이라고 한다.)
고구려족이 남긴 음식문화의 유산은 그뿐만이 아니다. 제주 토속 장아찌인 마농지(풋마늘대장아찌)도 고구려에서 나온 것이다. 원래는 그러니까 호랑이가 곰이랑 동굴에서 사람이 되려면 먹으라고 했으나 못먹겠다고 도망간 그 마늘은 달래라고 한다. 영역싸움에서 승리한 곰 부족이 지배한 영토가 고구려족의 땅이었고, 이들은 간장에 달래와 사냥해온 고기를 담갔다가 꼬치에 꿰어 구워먹었다. 고구려는 맥족이므로 이 꼬치구이는 맥적이라고 불렀다. 인디언들에게 구운고기는 축제라는 말과 동의어였듯이 맥적 또한 축제음식이고 의례음식이었다. 탐라국의 의례는 국가의례나 마을의례였고, 맥적을 나눠먹는 날이다.
이날은 또 쌀로 만든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쌀은 섬 밖에서 사와야만 하기 때문에 성주가문이나 마을 유력가문(토호)들의 독점품이었다. 이들은 귀한 쌀로 만든 떡을 모두가 나눠먹을 수 있도록 작고 동그랗게 빚어 돌림으로써 권위를 과시했다. 이 떡이 돌래떡이다. 의례가 끝나면 가난한 자들도 귀한 쌀 맛을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 제주에 온 목사들은 한결같은 신념을 가진 유교 근본주의자들이 많아서, 미개한 제주사람들을 교화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제주에는 신들도 많고 그들을 모시는 신당이 마을마다 몇 개씩 있었다. 탐라국자체가 신화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였다.
제주 목사들이 강력한 유교문화의 세례를 퍼부은 결과 그나마 가장 성공한 것은 제사의례이다. 가문중심의 조상신 숭배문화를 정착시키고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질서를 만들 수 있었다. 제사에는 여자는 참석할 수 없고, 대를 잇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된다. 양자문화, 축첩문화가 제주에서는 아주 최근까지도 존재했다.
유교문화가 제주 사회에 남긴 가장 강력한 흔적은 제사상위의 떡차림이다. 무속의례에서 쓰이는 돌래떡을 퇴출시키고, 다양한 모양의 떡이 규칙에 따라 차려져있다. 이것은 각각 땅 -구름 -달 -해 -별을 상징한다. 이런 떡차림은 제주만이 유일하다.
당쟁이 격화되는 조선후기에 서로 경쟁하듯 상차림 문화를 만들었지만 가문에 따라 다르고, 지역에 따른 것이 제사 상차림법이다. 그 때문에 제주목사들은 제주에 유교식 제사법을 정착시키려는데 혼란을 겪었다. 유교경전에도 상차림 규칙은 나와 있지 않았다.
이런 딜레마로부터 벗어나는데 도움을 준 격식이 왕실제사법이고 그중에서도 떡차림이다. 제주의 여염집에서 구할 수 없는 음식들은 어쩔 수 없지만 떡은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것이 유교식이란 보증은 사실 없지만 그래도 증명가능한 유일한 규범이었다. 물론 육지의 양반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감히 왕실의 예법을!
이토록 유교문화 정착에 공을 들였지만 제주 사람들의 제사상은 늘 두 개가 차려진다. 하나는 조상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전상이라고 해서 대문을 지키는 문신(門神)을 위한 상이다. 제주는 1만8천 신들의 땅이고, 그것은 제주 사람들이 자연을 경외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형식을 바꿀 수 있지만 정신을 바꾸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는 ‘한 사회의 요리는 그 사회의 구조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했다. 제주사람들의 음식 또한 기록되지 않은 탐라사이자 제주향토사인 셈이다.
고진숙 작가
고진숙 작가는 용눈이오름 아래에서 태어나 제주 밖에서 바람처럼 살았다. 지금은 일 년의 절반을 제주에서 보내는 반서(울)반제(주)인이다. 역사동화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을 시작으로 최근 '청소년을 위한 제주 4.3'까지 다양한 역사콘텐츠들을 쓴 고 작가. 매월 첫째주 수요일 독자들과 만나는 [제주옛썰]은 고진숙 역사작가의 눈으로 제주가치를 재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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