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에 대한 이야기는 20여 년 전 처음 들었다. 당시 음악 동료들에게서 들은 그의 일화들을 종합해보면 자연스레 떠오른 문장이 있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당시 국내의 내로라 하는 기타리스트들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유명 기타리스트조차도 그에게는 한낱 아마추어일 뿐이었다. 나는 그런 K의 안하무인적인 태도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고 상상이 더해지자 경외감까지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그가 직접 재즈클럽을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스름이 막 내리기 시작한 저녁 무렵 친구들과 클럽을 방문했다. 용두암 해안가에서 공항쪽으로 걷다보니 <스윙로드 Swing Road>라 쓰여진 파란 간판이 멀리서도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정면에 앰프와 악기들이 놓여 있는 작은 무대가 보였다. 갈색 원목 바닥의 홀과 하얀색 삼나무로 둘러싸인 실내는 무척이나 아늑했다. 천장에 높게 걸린 고풍스런 느낌의 스피커에서는 John Coltrane의 <Soultrane> 음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홀로 바에 앉아 음악을 듣던 K는 이른 시간에 방문한 우리 일행을 뜨악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틀어놓은 콜트레인을 들으며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잠시 후 그는 홀로 무대에 올라 연주를 시작했다.

넥이 부러졌는지 대충 붙여놓은 듯 한 기타는 오래되고 낡은 깁슨 Es-125T였다. 기타 소리는 맑고 따뜻했으며 동시에 깊었다. 섬세한 핑거링의 첫 곡이 끝나자 그는 텅 빈눈으로 허공을 보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High on a hill, it calls to me....’ 원목으로 둘러싸인 내벽을 통해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근사했고 기타의 부드러운 컴핑과 어우러져 묘한 감동을 주었다. 이어서 리 릿나워의 대표곡인 “Rio Funk'를 드럼 머신에 맞추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반복적인 악절의 드럼 비트가 울리자 K는 베이스와 멜로디를 동시에 연주하며 마치 두 세대의 악기가 협연하는 듯한 엄청난 연주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몇 곡의 연주가 끝나자 그는 왼쪽 팔이 아픈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기타를 놓았다. 그렇게 마법 같았던 30여분의 시간이 끝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한 며칠 기타를 잡지 않았다. 가끔 <스윙로드>에 들렸고 그와 술을 마시기도 하고 무대에서 같이 연주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느 순간 발길을 끊었다.

손님이 없는 실내를 바라보며 홀로 쓸쓸히 와인을 기울이던 K. 비 오는 날이면 창문에 서서 목이 부러진 낡은 기타를 연주하던 K. 길게 기른 엄지손톱을 자랑하며 재즈를 누구보다 갈구했던 K는 결국 손님이 오지 않는 날들이 계속 되자 클럽의 문을 닫았다. 그리곤 일 년 후 네덜란드로 이민을 갔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지금도 그 곳을 지나칠 때면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머릿속 영사기는 무성영화 인냥 소리가 없는 흑백의 영상만을 쏘아냈다. 그럴 때면 나는 K가 가장 좋아했다는 프랑스의 집시기타리스트 Django Reinhardt의 앨범을 찾는다. 자유롭고 낭만적 선율이 가득한 Django의 연주를 들으며 그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팠던 재즈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네 번째 월요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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