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을 위한 물음-2010년대의 기록》윤여일, 갈무리
《물음을 위한 물음-2010년대의 기록》
윤여일, 갈무리

윤여일은 사회학자로서, 평론가로서, 번역자로서, 기록자로서, 생활인으로서 《물음을 위한 물음-2010년대의 기록》에 담긴 10편의 글을 썼다. 이명박의 통치, 아랍의 봄, 월스트리트 점거, 후쿠시마 사태, 박근혜 집권, 세월호 참사, 촛불 집회, 대통령 탄핵, 문재인 정권 탄생, 이명박과 박근혜 수감, 트럼프 집권, IS 창궐, 난민 확산, 제노포비아, 반지성주의, 가짜뉴스, 기후위기, 코로나 펜데믹의 상황들이 지난 10년을 휘덮은 물결들이다. 우리 모두에게 닥친 거센 격류들이었지만, 어떤 이에게는 잔물결이었을 수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해일로 다가온 것들이었다.

윤여일은 그 물결 혹은 어떤 운동을 보고 겪으며 묻는다. 저 물결이 과연 해일을 예고하는 잔물결인지, 해일이 지난 뒤 과연 잔물결은 또다시 가능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 같은 물음과 생각은, 보는 이에 따라서는, 한갓진 책상물림으로 폄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윤여일의 방식이다. 거창하고 휘황찬란한 (이)론들을 애써 구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내고자 하는 것. 당장 눈앞의 전투도 위중하지만, 나와 우리가 치르는 이 전투가 과연 어떤 전장에서 벌어지는지 동시에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 “우리 승리하리라”라는 구호를 발화시키는 그 신념의 궁극마저도 되짚어 봐야만 하는 것, 윤여일은 그렇게 사고한다. 그는 우선 패배를 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수년 동안 번번이 패배했다. 그때마다 패배는 이중적이었다. 한 번은 상대에게 패했다. 나를 패배시킨 상대는 내가 패배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나라는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또 한 번은 자신에게 패했다. 상대에게 패하여 상처가 남고, 좀처럼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아물지 않도록 기억하려는 노력이 스스로에게 고통을 안긴다.”

어쩌면 윤여일은 그 두 겹의 패배로부터 시작하려는 것이다. 패배를 자양분 삼아 자신을 다시 발효시키려 한다. 이 과정에서 고전적 명제 하나가 다시 소환된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소환장 앞과 뒤에는 각각 노신과 후지타 쇼조의 사례가 동봉돼 있다. 노신은 당대의 싸움에서 늘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정치의 진폭이 클수록 그의 문학은 깊이를 더해갔다. 현실에서의 패배를 문학에서 조금씩 갚아나가며, 루신은 자신을 패배시킨 상대보다 역사에서 오래 살아남았다. 그렇게 무력한 자가 무력함에 근거하여 살아가는 법을 실증해냈다.”

그런가 하면 당대의 주류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방법과 시각을 확립했던 이가 후지타 쇼조다.

“분명 그의 글은 그가 살았던 시대에 속해 있으나 시대와 다투었기에 시대에 속할 수 있었다. 그는 시대의 추세를 거스르면서 자신의 저항을 시대에 기입했다. 나는 아마도 반시대적이라서 진정 시대적이었던 과거 인간의 글을 동시대적으로 전유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이 두 대목은, 윤여일이 ‘나는 말로 작업하는 자’라는 스스로의 서명과 더불어 끝내 이루고 싶은, 두개의 정신적 모험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 윤여일이 소환한 지난 10년의 시간 속에도 그 모험은 담겨있다. 그 모험이 ‘물음을 위한 물음’이다.

곁다리 이야기 하나. 내가 정확히 읽었다면, 이 책에는 단 하나의 느낌표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을까? 과장과 감정적 과잉 없이 글을 쓸 수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객관적인 분석과 시각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사회학의 특성상 그런 것인가? 그러나 아래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이런 해석이 작위적임을 알고 있다. 지적 유희로 비칠 수 있음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늘어나고 더욱 필요해질 대피소를 사고할 때 曲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曲은 구부림이며, 구부림은 약한 존재들의 정치 그리고 예술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부림은 왜곡歪曲을 초래하며 곡진曲盡한 곡절曲折을 낳으며 악곡樂曲과 희곡戱曲을 가능케 한다.”

아, 오해는 마시라. 글에 담긴 메시지를 웃는 게 아니니.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언어에 취할 때가 있다. 그런 광경은 나 같은 하릴없는 독자가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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