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스틸컷.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스틸컷.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아 탄생한 한국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런던에서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사람을 봤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였다.

드라마의 유명세와 함께 불거진 문제가 있었다. 바로 드라마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반인들의 전화번호가 드라마에 그대로 유출된 사건이었다. 극 중 등장인물들이 게임에 참가하기 위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명함 위의 번호는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뚜렷하게 나오는데, 나는 당연히 가상의 번호이거나 드라마와 관련된 이벤트 및 홍보 안내를 하는 번호 일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번호들이었고,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장난삼아, 또는 절박한 심정 등으로 그 번호에 통화나 문자를 시도했다. 당연히 해당 번호들을 소유한 개인들의 생활에 대단한 지장을 초래하였다. 

해당 사건이 이슈가 되자, 제작진은 번호 소유주들에게 일정 금액의 위로금을 지급할 테니 번호를 바꾸라 권유했다고 한다. 제작 지원 및 유통 플랫폼인 넷플릭스는 이렇다 할 조치나 제재 없이 드라마를 계속 방영했다. 물론 해당 대처에 대해 많은 질타를 받았고 그로부터 몇 주 후, 제작진은 팬들에게 장난 전화를 지양해 달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번호 노출 장면을 교체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사건의 발단부터 해결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비단 오징어게임 뿐만이 아니다. 최근 다른 드라마들에서도 누군가에겐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실제 사고 현장 영상을 그대로 사용한, 윤리적이지 못한 연출들이 있었다. 한류에 힘입어 한국의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들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이 콘텐츠들이 윤리적으로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제주도에서 연구 조사를 할 때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감독님들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제주 4.3을 다루는 형태는 다르지만, 우리가 갖는 공통적인 고민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잘 질문하면 좋을까?’ 였다. 슬픔, 두려움, 괴로움 등 여러 감정이 얽혀있을 기억에 섣불리 다가서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터뷰 대상자의 안위에 관한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런 것에 대한 교육이나 지침이 있다면 좋을 텐데, 하고 이어진 이야기에 연구윤리와 심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의 경우 소속 대학에서 연구윤리교육을 받고 심의를 통해 위의 고민에 관련해 사전 검사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연구는 그런 게 있어요?”, “영화는 그런 게 없어요?”라며 서로 놀란 기억이 있다. 질문하고 대답을 듣는 방법이 다를 뿐 서로의 작업 과정이 유사한데, 한쪽은 사전심의나 통용되고 있는 지침이 없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놀람과 동시에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연구자들이 받는 연구윤리심의에 대해 쉽게 말하자면, 연구자가 연구윤리에서 강조하는 원칙과 규범을 잘 지키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연구설계에 따라 심의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인간대상연구의 경우 대부분 심의대상이 된다. (이외에도 인체유래물연구 또한 심의대상이다) 연구 과제가 어떤 것인지, 무엇을 위해 하는지, 올바른 방법으로 조사 및 실험을 하는지, 수집된 연구자료 및 개인정보들을 어떻게 얼마간 보관할 것인지, 연구에 관한 설명서 및 동의서 양식까지 미리 검수하는 과정을 거친다. 궁극적으로는 심의를 통해 연구자가 연구에 참가한 대상자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안전과 권리 보장을 하는지 등을 검토하는 것이다.

나 또한 인간대상연구를 진행했기 때문에 심의과정을 거쳤는데, 이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과정이다. 연구에 따라 다르겠지만, 완전한 연구승인을 받기까지는 보통 몇 개월이 걸린다. 같은 연구실을 썼던 선배들이 본인들의 경험에 입각하여 나의 심사 기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자 온갖 꿀정보들을 다 전수하여 주었으나, 나 또한 승인을 받기까지는 3개월 이상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심의위원회가 소명하라는 것들을 최대한 상세하게, 근거자료와 함께 제시하고 보충하다 보면 훌쩍 시간이 흘러 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과정들은 과거 연구자들이 저질렀던 비윤리적 연구들 때문에 필요성이 제기되고 발전해 온 반성적 규범인 만큼, 연구자가 기꺼이 수행해야 할 의무이자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책임이다. 

미디어 콘텐츠 또한 그 파급력이 큰 만큼 창작자의 윤리의식은 당연히 동반되어야 한다.

먼저 영국의 경우 대학교를 예로 들어 보자면, 연극이나 영화 등의 제작과정은 연구과정과 크게 다른 것들이 없었다. 연구자들에게 연구윤리를 교육하는 것처럼 학생 때부터 제작자에게 요구되는 윤리의식에 대해 상당 시간 할애하여 교육한다고 한다. 게다가 학생들이 과제의 일환으로 작품을 찍는다고 해도 연구윤리심의와 거의 동일한 과정의 심의를 통과해야만 촬영 허가가 나온다고 한다. 대학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과 관련된 기관들에서도 촬영 시 유의해야 할 사안들에 대해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 또한 업계 차원에서의 윤리의식 향상 의지가 엿보였다. 주요 제작사들을 중심으로 사전 동의 및 관련 교육 등을 진행하거나, 표준근로계약서를 필수로 도입하는 등 제도적으로도 노력 중인 듯하다.

대학의 경우 연극영화과와 같은 전공은 창작윤리에 관한 강의를 수강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저작권, 초상권, 영화인의 인권, 성 평등 정책 등 창작윤리의 범위에 속할 수 있는 주제들에 관한 가이드라인들이나 연구보고서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공적 기금으로 운용되는 프로젝트의 경우 윤리에 관한 서약서를 받기도 하고, 필요한 경우 동의서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 및 제도들을 적용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범위와 대상 또한 한정적인 듯하다. 때문에 제작을 관장하는 기관이나 제작자의 소속 등에 따라 창작윤리에 대한 이해도 또한 상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이번 글에서는 드라마로 인해 제기된 문제의식인 만큼 미디어 중에서도 극과 영화를 위주로 이야기했지만, 사실 ‘사람’을 존중하고 권리를 보장하며 그의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 어느 분야에서도 제기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연구를 하는 사람이든, 글을 쓰는 사람이든, 영상을 찍는 사람이든,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든 표현 방법이 다를 뿐, 결국 모두 사람에 대한,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것임에는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개인의 책임 의식이 없다면 심의제도와 각종 가이드라인의 목적을 완전히 발휘하기 어렵다. 게다가 요즘은 유튜브 등의 플랫폼 덕분에 창작부터 유통까지 과거보다 창작활동에 크게 구애받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이다. 때문에 창작자 스스로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김지민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제주 4·3에 대해 연구 중인 김지민은 온 마을이 키운 박사 과정생이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제주와 런던을 잇는 [지민in런던]은 매월 둘째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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