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제주특별자치도와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 ㈔제주민예총 등이 공동주최한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 학술대회, 신축항쟁 지역의 기억과 역사적 진실’이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 8일 제주특별자치도와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 ㈔제주민예총 등이 공동주최한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 학술대회, 신축항쟁 지역의 기억과 역사적 진실’이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120년 전 제주민들과 천주교회가 충돌해 300명이 넘는 교인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 이 비극적인 역사를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다. 제주4·3과 마찬가지로 그 성격이 사회적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겐 동명의 영화 개봉 이후 ‘이재수의 난’으로 잘 알려져 있고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에 초점을 맞춘 ‘신축항쟁’, 그리고 제주천주교회는 종교적 박해라는 관점을 담아 교인과 비교인 사이에 빚어진 분쟁이라는 뜻으로 ‘신축교안’이라 부르고 있다. 

지난 8일 제주특별자치도와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 ㈔제주민예총 등이 공동주최한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 학술대회, 신축항쟁 지역의 기억과 역사적 진실’이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렸다. 

#“탐라 멸망 이후 흘러온 제주민 저항사의 귀결”

이날 박찬식 제주역사연구소장은 ‘저항의 제주 역사로 본 신축항쟁’ 주제로 첫 발표자로 나섰다. 

박 소장은 “신축항쟁에서 주민공동체 수호 의식은 보이지만 ‘반제국주의 및 반봉건’의 근대 민족적 선진의식이 개입되었는지는 의문”이라며 “공동체의 생존권을 지키려는 제주민의 순수한 집단적 저항이며 ‘반프랑스’, ‘반제국주의’로 바라보는 것은 무리한 외피 씌우기”라고 설명했다. 

박 소장에 따르면 신축항쟁을 전후해 제주민들의 삶과 문화는 외부로부터 들어온 봉세관과 천주교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제주민들은 고려 때 호종단이 입도해 지맥을 끊어버려 탐라의 전통을 말살하고 200년 전 이형상 목사가 부임해 신당을 모두 불태워 버림으로써 토착문화를 부정한 사실을 떠올렸다. 

천주교는 제주민들이 믿고 모셔온 제주신령을 ‘악귀’로 여겨 배격했고 이에 대해 제주민들은 천주교를 ‘제주를 빼앗기 위해’ 온 것으로 인식해 강력히 저항했다. 

여기서 제주 섬 전체의 역사를 볼 때 “집단 저항의 움직임이 탐라국의 멸망과 때를 같이하여 일어났고 이후에도 장기 지속적으로 탐라국 독립과 자치에 대한 집단적인 감성과 기대 심리가 잠복해 있다가 표출되곤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축항쟁에서도 이 같은 탐라복권 의식의 조각들을 엿볼 수 있다는 것. 박 소장은 “일개 관노의 지위에서 모두가 꺼리던 지도자를 자청해 죽음의 길로 나아간 이재수는 당시 제주민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재수가 제주성을 함락한 뒤 “서양 사람을 쳐 없애서 제주성을 회복했다”라는 발언이나 재판정에서도 “우리가 죽인 것은 역적이지 양민이 아니라”라고 한 최후 진술은 제주민 나름의 자치 관념을 엿보게 한다고 부연했다. 

신축항쟁에서 나타난 탐라복권 의식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 법정사 항일투쟁으로 이어졌다. 1919년 3·1독립운동 이후 민족주의 사회주의 등 근대 신사상에 근거를 둔 항일운동 이면에도 공동체 자치 관념이 잠재했다. 

박 소장은 “특히 ‘우리계’ 조직을 통한 아나키즘 운동, 조천면에서의 소비조합 운동, 제주-일본 간 통항선을 ‘우리 배로 띄우자’는 동아통항조합의 자주운항운동, 1932년 해녀 노동공동체의 집단적인 항일 생존권 투쟁에 자치적인 공동체 운동의 면면이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공동체의 자존과 정체성 지키는 저항운동 떠올려야”

박 소장은 발표를 마무리하며 “제주도 역사에서 외부의 영향이 어떤 방향으로 미치느냐에 따라 제주도민의 대응은 관용과 저항으로 나타났다”며 “신축항쟁 당시 처음에는 천주교의 매력에 이끌려 상당수의 화전민을 비롯한 제주민들이 입교하기도 했으나 토착신앙 거부, 기존 토착사회 시스템 무시, 징세 수취체계 교란 등 도민정서에 반하는 활동으로 일관하자 결국 민회가 열렸고, 민군의 타도 대상으로 천주교회라는 외부 세력이 설정됐다”고 피력했다. 

이어 “새로운 향촌사회 권력과 부세 징수체계의 재편 과정에서 일어난 신축항쟁은 최고봉에 이른 도민 공동체 저항이었다”며 “이재수 등은 도내 정치사회 체계 개편 과정의 주인공이자 제주의 토착 사회문화 체계를 저변에서부터 지켜내고자 했던 공동체 수호의 주역이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신축항쟁 120주년을 맞이한 현재 제주도민들은 또다른 시대적 전환점에 놓여있다”며 “21세기 미래 대안으로 선택한 국제자유도시와 특별자치도는 벽두부터 위기 상황에 봉착했고 급격한 외래자본의 유입에 따른 내부 혼돈 상황을 겪고 있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외부의 영향을 우리가 주체적으로 수용・관용할 수 있는 정도의 유연한 대외관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신축항쟁 120주년을 맞아 공동체의 자존과 정체성을 지키는 내재적 발전 움직임과 제주민의 정의로운 자치, 자결의 저항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떠올려본다”고 맺었다. 

지난 8일 제주특별자치도와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 ㈔제주민예총 등이 공동주최한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 학술대회, 신축항쟁 지역의 기억과 역사적 진실’이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지난 8일 제주특별자치도와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 ㈔제주민예총 등이 공동주최한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 학술대회, 신축항쟁 지역의 기억과 역사적 진실’이 제주4·3평화교육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DB)

#이재수는 영웅인가

이어 김동현 문학평론가가 ‘비어있는 사실과 재현으로서의 기억-<속음청사>, <이재수 실기>, <변방에 우짖는 새>, <봉화>를 중심으로’ 주제로 다음 발표를 진행했다. 

김 문학평론가는 ‘이재수’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춰 그를 영웅이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역사적 ‘사실’은 당대 다양한 민중들의 욕망과 대한제국과 프랑스와의 외교적 대응 등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라며 “신축항쟁은 재현으로서의 기억과 그 구성에 담긴 욕망을 살펴볼 때 역사적 기술이 간과하고 있는 혹은 외면하고 있는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재수’라는 인물의 실체를 들여다 보기 위해선 ‘영웅’과 ‘순교’ 사이를 들여다봐야 한다”며 “이재수를 ‘영웅’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인물의 실체를 오히려 가로막는 제한된 기억이 될 가능성이 높고 천주교민들의 죽음을 ‘억울한 죽음’, ‘신앙을 지키기 위한 죽음’으로만 기억하는 것도 당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던 다양한 욕망들을 단순화하는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문학평론가는 진성기의 <남국의 민담>에 실린 이재수와 관련된 설화들을 소개하며 “이재수는 천부적 재능을 지닌 ‘영웅’으로 묘사되지 않고 오히려 신분적 차별을 받는 인물이며 그러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장두로 나서는 인물”이라며 “평범하지만 당시 상황에서 책임을 다하려는 윤리의식과 책임감을 지닌 인물로 묘사된다”는 데 주목했다. 

아울러 김윤식의 <속음청사>를 들며 “이재수를 시민적 윤리의식의 소유자로 해석할 수도 있는 대목이 있다”며 “이재수의 영웅적 면모가 부각된 데에는 그의 누이 이순옥이 구술한 <이재수실기>에서 영웅 설화의 구조를 그대로 차용한 기이한 출생과 영웅적 면모의 부각 등을 서술한 영향력이 컸다”고 분석했다. 

구술자의 욕망이 기억으로 재구성되어가는 과정에서 인물에 대한 해석과 관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김 문학평론가는 또 해방 이후 연재된 최금동의 <봉화>에서 “‘진정한 지도자를 찾는 인민의 소리’, ‘청년 이재수’라는 수사적 연결을 통해 당대적 욕망, 특히 나라만들기라는 시대 과제를 수행하는 청년의 임무를 강조하기 위해 영웅으로서의 이재수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대와 화자에 따라 달라지는 시각의 변화를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기억이 고정되지 않은 동시에 새롭게 창안되는 움직이는 기억이라는 점을 보여준다”며 “기억의 재현과 역사적 진실이 뫼비우스 띠처럼 얽혀있기 때문에 기억의 대결이 일종의 대립과 왜곡으로만 귀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도민적 입장에서는 장두 전통의 계승자이자 창안자로서 ‘영웅 이재수’의 면모를 기억하는 것이 손쉬운 방법인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300여명의 천주교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웅’이라는 표상이 우리 삶의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초월적 존재 혹은 난마 같이 얽힌 현실적 고민을 단숨에 해결하는 힘을 지닌 존재로 상상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 시대의 영웅이란 지극히 평범하고 작고 나약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시민윤리, 그 평범한 윤리성을 구현해 가는 작은 힘들이 아닐까”라며 “때론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윤리를 저버리지 않는 인간의 탄생, 그것이 영웅의 탄생이라면 이재수야말로 시민적 윤리성의 구현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주진오 상명대 교수가 ‘신축항쟁에서 제주4·3으로’ 기조강연에, 허원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연구원이 ‘광무연간 제주도의 부세제도와 부세수취’로 제3주제 발표, 김선필 제주학연구센터 연구원이 ‘천주교회를 중심으로 바라본 신축교안의 발생 원인과 현재의 평가’로 제4주제 발표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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