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엔 사라봉 꼭대기에서 시원한 바람을 받으며 떠오르는 보름달을 맞았다. 넓게 퍼진  붉은 구름 가운데를 적황의 금빛으로 물들이면서 서서히 솟아오른 풍성한 보름달을 만나는 순간! 달에게 고하리라 다짐했던 기원을 마음으로 전했다. 서서히 창백해져가는 달의 표면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슬그머니 달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믿거나 말거나! 

달을 향한 인간의 애정이 자연현상과 맞물리며 삶에 깊이 스며든다. 바닷물은 달의 운행으로 밀려 나가고 끌려 들어온다. 소설가 현기영은 그의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에 실린 <잠녀潛女의 일생>에서 “바다의 밀물과 썰물 사이가 잠녀의 일생이다. 달이 바닷물을 끌어당겨 만조가 되었을 때, 그 밀물의 끝, 썰물의 시작, 그 파도의 흰 거품 속에서 여아들이 태어났다. 아기들은 자라면서 물가 깅이통에서 물장구치며 헤엄을 배우다가 열서너 살이 되면 얕은 바다에서 물질을 시작하고 점점 성장함에 따라 더 먼 바다의 작은 섬들로 차례차례 옮아가다가. 마침내 육지 바다로 진출한다”라고 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고 검은 현무암 덩어리들이 드러난 해안. '깅이통'은 밀물에 잠겼다가 썰물에 드러나는 작은 물웅덩이를 말한다. 현기영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명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그 조그만 웅덩이가 “작은 것들의 세계, 소우주, 우주의 눈” 이라 했다. 

움푹 패인 해안 바윗덩어리나 돌덩이들에 갇힌 그 얕은 바닷물에는 수많은 생명들의 삶이 있다. 임형묵감독의 다큐멘터리 『조수 웅덩이』에서 화려한 유리공예품 같은 다양한 색상과 모양의 아름다운 작은 생명체들을 본 적이 있다. 조수 웅덩이에는 이런 생명체들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흔적들도 밀물과 썰물에 떠밀리며 그 물웅덩이에 갇히기도 한다. 제주4・3에 관한 다큐멘터리 <거듭되는 항거>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큰 반향을 얻었고 57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 <이별의 공동체>라는 작품을 전시했던 제인 진 카이젠은 바리데기 무속신화에서 ‘페미니즘적․디아스포라적 맥락을 읽어’내며 이 이야기를 재해석하기 위해 1년 여간 제주에 머무르며 연구 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제인 진 카이젠은 거스톤 손딩 퀑과 함께 제주해안의 조수웅덩이에서 영감을 받아 조명상자에 담긴 6점의 사진연작인 <달의 당김>이라는 작품을 창작했다. 

이 연작은 썰물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풍경들 속에 존재하는 미세하고 세밀한 부분을 좀 더 되새겨볼 수 있게 한다. 썰물일 때 제주의 현무암에 좌초된 생명들과 인간의 문화적 산물들이 ‘해녀들과 심방들이 자연과 교감해왔던’ 곳인 제주해안의 풍경과 조수웅덩이 세상에서 자연의 일부인 우리와 대화한다. 이들은 아름다운 산과 바다와 암반 등 제주의 자연에서 깊은 아름다움과 동시에 뼈아픈 역사의 흔적을 바라봐왔다. “자연이야말로 정말 예술작품과 공조” 한다며 자연과 삶과 예술이 서로 의지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시간은 이미 가을인데 한낮의 기온은 여전히 후덥지근하다. 이상 기후의 조짐은 이미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대홍수로 집이 무너지고 떠내려가는 상황이 선진유럽국가에서도 발생하여 그곳 주민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우주를 여행하게 된 과학기술의 시대에 산불, 폭염, 폭우, 가뭄, 폭설 등 이상 자연현상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경고는 이미 오래전에 있었지만 우리는 이를 무시해왔다. 조수웅덩이가 있는 제주 해안의 조간대는 해안습지로서 생태계에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깅이통' 우주가 예술가들의 작품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소중하게 보존돼야 할 것이다. 

 

안혜경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

예술은 뜬구름 잡는 이들의 영역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해 굳어진 뇌를 두드리는 감동의 영역이다. 안혜경 대표가 매월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예술비밥'은 예술이란 투명한 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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