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길로 돌아갈까?》 게일 콜드웰 지음, 이승민 옮김, 문학동네
《먼길로 돌아갈까?》
게일 콜드웰 지음, 이승민 옮김, 문학동네

이른 아침, 도저히 침대에 파묻힐 수 없을 정도로 소란스럽다. 나의 개가 만들어내는 소란이다. 굿모닝 인사를 대신해 그는 짖는다. 그런 다음 앞발을 가지런히 모아 바르게 앉는다. 잠시 정적. 가장 조심해야 할 때다. 5분만 더 누워 있고 싶지만 게으름 피우는 몸짓을 들키는 순간 정적을 가르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침인사 다음은 산책을 가자는 요청이다. 강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도 견딜 수 없는 톤과 데시벨이다. 그의 시선에서 벗어나 몸을 숨겨 보지만 허사다. 짖는 소리만 요란해질 뿐이다. 더 사나워지기 전에 나서야 한다. 부스스한 머리를 올려 묶는다. 그러면 그는 빠르게 눈치채고 문 앞으로 달려가 꼬리를 흔들고, 몸통을 흔든다. 급한 마음에 이족보행까지 시도한다.

나의 아침 풍경을 네가 보았다면, 아마 감탄을 했겠지. 드디어 개도 키우다니! 나는 스무 살 시절에 고집하던 바와는 다르게, 도시에 살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무려 개와 함께 지내고 있다. 심지어 결혼까지 했고. 개와 함께하는 아침산책은 꼬박 한 시간이 걸리는데, 그가 풀숲에 코를 박고 이른 아침에만 존재하는 냄새를 다 흡수하려 드는 동안 나는 누군가 책을 대신 읽어주는 유튜브를 듣는다. 집중하지는 않고 흘려듣는다. 그러다가 문득 딴 생각에 빠진다. 누군가 캐럴라인 냅을 읽어주면 좋겠다고. 그게 너일 수는 없으니까 그저 누구라도 그래주었으면.

빼어난 솜씨의 에세이스트답게 그녀는 자기의 내면으로 우리를 우아하게 끌고 들어가서 자기 자신을 다 열어 보인 다음, 우리도 그렇게 하길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알코올 중독과 거식증에서 얼마나 힘겹게 빠져나왔을지, 그렇게 빠져나온 다음에 찾아온 자유와 해방감은 얼마나 아름다고 소중했을지,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면 누군가 먼저 물었을 게 분명하다. 먼 길로 돌아갈까?

《먼 길로 돌아갈까?》는 캐럴라인 냅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아니었다면 씌어지지 않았을 책이다. 혹은 완전히 다르게 쓰였겠지. 이 책은 그녀의 친구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보스톤 글로브>지의 북섹션 평론가 게일 콜드웰이 쓴 미처 다 나누지 못한 우정의 기록이다. 용기 내어 쓰는 애도의 기록이고. 그러니까 상실과 부재로부터 시작하는 책이고, 끝내 그것을 메울 수 없는 책이다.

이런 걸 상항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함께 자기 생의 슬픔과 기쁨을 공유하고, 둘 사이에서만 유효한 짜릿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신들에게 늘 날카로운 발톱을 들이대온 세상을 험담하면서 이제 그 포악한 세상을 어떻게 견뎌나갈지 함께 궁리하는 두 사람의 뒷모습 같은 것 말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함께 걷던 길에서 한 사람이 사라져 버린 풍경은 어떨까. 게일 콜드웰은 친구거나 자매였던 캐럴라인 냅의 부재에 대해서 이렇게 쓴다.

“이 모든 게 기억나는 것은 내가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위기의 순간에 나눈 대화는 마치 나무에 난 상흔처럼 윤이 난다. 지금은 내 기억을 떠올리며 깜짝 놀라지만, 그럴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캐럴라인의 목소리를 내 가슴에 새겨놓았으니까. 그 목소리, 그 억양과 음역과 타이밍이 완벽한 유머까지. 이것을 잃은 일은 없다.”

나는 활자에 포획되지 않는 감정들까지 읽어볼 수 있다. 비어있는 단 한 자리에서 태어나는 가슴 먹먹한 기분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제대로 쓰지 못하겠지만, 이별과 상실을 경험했던 이라면 누구라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 한 여자의 인생에서 그 내밀한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또 다른 여자가 가족과 연인 아닌 이름으로 존재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너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시를 암송할 때도 있었고, 네가 읽은 소설을 따라 읽기도 했다. 네가 타인을 어떻게 돌보는지 눈여겨보았다가 흉내내 보기도 했다. 나는 너에게서 배운 그런 것들을 이제는 마치 처음부터 나에게서 비롯된 것인 양 한다. 그때 네가 날마다 쏟아내던 개에 대한 찬양을 좀 더 귀 기울여 들어둘 걸 그랬지. 인간이 아닌 존재와 함께 사는 일이 인간을 얼마나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는지 진즉에 알아들을 걸 그랬지. 게일 콜드웰은 이렇게 마저 쓴다.

“옛날 나바호족 사람들은 러그를 짤 때 어울리지 않는 실을 한 가닥씩 넣고 그 도드라지는 색이 바깥 테두리로 이어지게 했다. 이 의도된 결함은 러그 안에 갇힌 에너지를 풀어주고 또다른 창조로 이어지도록 길을 낸다는 뜻에서 영혼의 줄이라 불렸으며, 이 줄의 유무로 진품을 가릴 수 있다. 인생에서 굳게 품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에는 모두 이런 영혼의 줄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로 한다. 부재할 때조차 나를 살도록 격려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영혼의 줄이라고 내식대로 해석하면서 말이다. 내일은 나의 개에게 먼 길로 돌아가자고 할 참이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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