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농산물의 정의를 말해 보라고 하면 소비자들은 농약을 쓰지 않고 재배한 농산물이라고 대답한다. 농업인들은 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으면 ‘유기농’이고, 합성농약은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를 권장량의 ⅓이하로 사용하면 ‘무농약’이라고 구분하여 답한다.
과연 합성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면 친환경농산물인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친환경농업은 생물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에서의 생물적 순환과 활동을 촉진하며, 농업생태계를 건강하게 보전하기 위하여 합성농약, 화학비료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아니하거나 사용을 최소화한 건강한 환경에서 농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따라서 생물다양성의 증진, 생물학적 순환 촉진, 건강한 농업생태계의 보전에 반하는 농산물은 친환경농산물이 아니다. 필자는 비닐하우스에서 난·냉방 장치로 온습도를 조절하고, 양액으로 비배관리를 하여 생산한 농산물에 친환경인증마크를 붙이는 것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순환 없이 생물다양성과 지구환경을 해치고 온실가스까지 배출하는 농산물은 아무리 합성농약과 화학비료가 없다고 해도 친환경농산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21년 한국생활과학회지에 실린 김효정·김미라의 '한국 성인의 건강식품 및 구매 결정 요인'에 의하면 소비자들이 친환경식품을 구입하는 이유는 ‘안전하다고 생각해서’(45.6%), ‘건강에 좋을 것 같아서’(36%), ‘맛이 좋아서’(8.5%), ‘환경보호를 위해서’(9.8%)로 조사되었다. 소비자들은 잔류농약이 검출되지 않는 농산물이 친환경농산물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친환경 농산물에서 농약이 검출되기라도 하면 언론은 “못 믿을 친환경인증제도, 살충제 범벅”이란 제목 등으로 친환경농산물의 소비를 중단하는 소비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해당 품목의 농산물이 아예 팔리지 않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통업체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생산자에게 잔류농약 시험성적서를 요구하고, 정부는 생산 과정보다는 생산물의 농약사용 여부를 집중 점검한다.
친환경농산물의 잔류농약 검사에 있어, 미국에서는 인증을 내준 후에 5%의 농가만을 대상으로 하고, EU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예 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1회 이상 실시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친환경농산물의 잔류농약 검출비율(허용기준 초과가 아닌 농약검출 여부)이 높은 것도 아니다. 친환경농산물 잔류농약 검출율은 우리나라가 5.2%(2020년)로 EU 14%(2014∼2016년), 미국 23%(2002년)보다 훨씬 낮다. 세계적으로 친환경농산물의 농약 검출율이 높은 것은 바람, 물, 항공방제 등 불가항력적인 비산과 인증관리를 생산물보다는 생산과정의 생태환경 보전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언론과 소비자들이 친환경 농산물의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 친환경농산물은 농약 안전성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농약 문제에 너무 매달리다 보니 생태환경보전을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소비자가 농업 양식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소비자가 친환경 농산물을 잔류농약이 없는 농산물이 아니라 생물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에서의 생물적 순환과 활동을 촉진하며, 농업생태계를 건강하게 보전하기 위한 농산물이라고 인식할 때 농업인이 콩과 작물, 풋거름 작물, 심근성 작물을 이용한 돌려짓기로 토양생태계를 유지하고, 보기 좋게 보이기 위한 과도한 자재의 투입에서 벗어나 생물 다양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유기(有機)'는 생명체라는 뜻이지만 필자는 생명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한다. 땅에서 생명이 자라나고, 거기서 나온 잉여물이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그 땅에서 생명이 다시 자라는 순환원리를 따르는 농업이 유기농이다. 그래서 유기농은 외부로부터의 자재투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럴 때에만 자원의 약탈 없이 범지구적인 자원의 정의가 실현되고,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의 생명존중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친환경농산물이 나와 가족의 건강에 기여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과 지구를 건강하게 해주기 때문에 일반농산물보다 높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고지식한 아빠라는 소리를 들으며 딸에게 말한다. ‘우리는 미래의 지구를 빌려 쓰는 나그네이고, 덜 쓰고 덜 싸는 사람이 미래의 지구에게는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격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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