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신살이 뻗쳤다. 제주도의회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제주 행정이 제주도의회를 자동문으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시가 한라도서관 주변 도시 숲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오등봉도시공원 민간특례사업 관련해 사업자와 맞은 협약서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홍명환 제주도의원이 공개한 협약서에는 해당 사업에 대한 실시계획 인가 기한을 확정하고, 그 기한을 넘길 시 제주시장의 귀책사유로 삼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사업의 인가를 득하기 위해서는 제주도의회의 환경영향평가 심의 등의 절차가 필요하지만 제주시는 도의회의 심의를 프리패스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협약을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오등봉공원에 추진되는 아파트의 규모는 신제주 제원아파트의 두 배가 넘는다(세대 수 기준). 제원아파트가 주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규모가 두 배를 넘어서는 아파트가 오등봉공원 일대에 미치게 될 교통 문제, 하수 문제, 학교 문제, 도심녹지 공간 훼손 문제 등 다양한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는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제주도는 오등봉공원 민간특례 개발사업을 도시공원 일몰제와 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속전속결로 추진했다. 특히 코로나19 탓에 설명회나 공청회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 행정이 사업을 급히 추진하면서 사업에 대한 공론의 장이 형성되지 않았다. 도민 입장에서는 이 사업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졸속사업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그러나 제주도의회는 이 사업에 대해서도 어김없이 자동문 역할을 해줬다. 제주도 행정당국은 제주도의회가 자동문 노릇을 해낼 것이라고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제주도의원들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제주도의회 사전에 의회의 핵심 기능인 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골키퍼 없는 골대에 공을 차 넣는 축구선수도 제주 행정보다는 신중할 것이다. 대형 개발사업 관련 심의 때마다 늘 자동문 노릇을 해온 제주도의회가 만만해도 한참 만만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안창남 제주도의원은 지난 20일 제주시를 상대로 한 행정사무감사에서 오등봉공원 민간특례사업과 관련해 “시민단체에 끌려다니다 보면 행정의 사업 추진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의기관(도의회)과 의논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만만한 제주도의회와 의논해서 해결하라는 말로 들린다. 안창남 의원의 주문은 제주도 행정 관계자가 듣기에는 꽤 좋은 요청이다. 제주도 행정 입장에서는 다가서면 알아서 열리는 ‘자동문’과 대화하는 것이 사안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시민단체와 얘기를 나누는 것보다 훨씬 수월할 것이다.

안창남 의원은 이날 뜬금없이 비자림로를 거론하며 “비자림로에 말똥구리(소똥구리)가 살고 있기나 한가?”라고 물었다. ‘의원 나으리’가 물었으니 정치인들과는 ‘겸상도 못할’ 시민들이 다시 찾아내야 할 일인가? 대청마루에 앉아 호통치는 나으리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도민의 ‘심부름꾼’으로서 직접 가서 자세를 낮추고 찾아보기를 권한다. 시민들은 의외로 쉽게 찾아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난개발에 맞서는 문지기 역할도 하면서 골대를 잘 지키길 권한다.

시민을 만만하게 여기는 의원들이 제주도의회에 앉아 있으니 제주 행정이 도의회를 만만하게 취급하는 것은 아닌지 제주도의원들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