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급속하게 진행된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렸고, 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준 위기적 사건이었다. 전세계를 강타한 팬데믹이 '인류 미래에 대한 예고편'이라면 '시장 만능' 정책은 이제 지속가능하지 않다. 제주투데이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열쇠가 사회적경제에 있다고 보고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사회적경제, 제주를 잇다>를 총 7회에 걸쳐 연재한다. 

2019년 진행된 제주 사회적경제 한마당 '가치를 품다, 사람이 좋다'. 

국가마다 뜻을 달리하는 사회적경제. 딱 하나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에서 사회적경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소외계층·실업·빈곤·의료·환경 등의 사회문제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해 해결하고자하는 움직임이자,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복지 수준을 높이며 지역공동체의 발전과 사람중심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경제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OECD는 국가와 시장 사이 존재하는 조직들이 경제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EU는 참여적 경영시스템을 갖춘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경제적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복잡한 설명보다 간명한 사례가 있다. 세계적인 축구명문구단인 FC바르셀로나 주인도 협동조합이다. 

자본주의 질서 속에 ‘사회적’이란 단어가 혼합된 경제언어는 이질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급속한 자본주의화에서 비롯된 불평등과 지난 2년의 팬데믹 경험은 사회 공공성에 관한 요구를 증대시켰다. 이를 강조한 경제의 한 축이 사회적경제다. 

한국에서 사회적경제 움직임은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과 함께 본격화됐다. 최근 기업차원에서도 사회적가치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일찍이 사회적 가치와 공공성을 체득해온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이 재조명되고 있다. 

제주사회적경제 조직 현황(자료=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주사회적경제 조직 현황 (그래픽=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사회적경제 조직은 크게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4가지로 분류된다. 

현재 전국 협동조합 수만 2만개를 돌파했으며 제주지역도 2014년 '제주사회적경제기본조례' 제정 등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며 그 영역이 커지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1차 사회적경제 종합계획에 따르면 2016년 285개이던 사회적경제 조직은 2021년 10월 현재 600개 정도로 약 315개 늘어났다. 

업종도 다변화되고 있다. 2019년 말 현재 제조업이 18%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문화예술관광 15.3%, 농림어업과 교육이 10%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길훈 전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초기 시민사회나 복지 기관 중심으로 사회적경제 전환이 이뤄졌다면 지금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회적경제체로 전환되고 있다. 제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 수준이지만 노동자는 2800명 정도”라고 밝혔다. 

제주지역 사회적경제 업종별 현황 및 산업분야 현황 (출처=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제주사회적경제 업종별 및 산업분야 현황 (출처=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일자리 창출에 국한됐던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2019년 진행한 제주특별자치도 사회적경제 실태 및 인식조사에 따르면 제주지역 사회적가치 유형은 일자리 제공형 37%, 지역사회공헌 26%, 사회서비스 제공 11%, 취약계층의 자활·자립 6%, 경제적자생력 확보 6%, 농업활성화 4%, 환경·에너지·생태 5% 등이다. 

역할의 다양화는 사회적경제의 평가 체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단순 재무적 성과만 측정하는 대차대조표로는 인권·환경·노동·지역사회 공헌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출처=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출처=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일자리 창출을 넘어 사회 구성원리를 바꾸는 사회적경제 조직들

◆인화로 = 장애인・여성 등 취약계층 일자리 문제는 고용시장에서 또다른 화두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힘을 모아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 방법이 없을까하는 고민에서 출발한 조직이 바로 인화로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송창윤/ 이하 인화로).

인화로는 지난 2017년 조합원 및 지역주민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다 2018년부터는 아예 취약계층 여성 중심으로 ‘늘솜창작소’를 꾸렸다. 10여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침구류·의류·가방·잡화 등 제품 생산까지 한다.

또한 제주특별자자치도 여성청소년가족과와 함께 5년 째 진행하고 있는 '여성공동체 창업인큐베이팅 지원사업' 노하우를 활용해 여성 창업 지원에도 나섰다. 코로나19로 수입이 급격하게 줄어든 여성 소상공인과 공방 창업을 진행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창업비 지원 협약식을 진행했다. 500만원에서 최대 1000만원까지 총 12명의 여성 소상공인 핸드메이커에게 지급했다.

인화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협력해 제주시 원도심에 '포스트아일랜드' 매장을 열었다. (사진=인화로)
인화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협력해 제주시 원도심에 '포스트아일랜드' 매장을 열었다. (사진=인화로)

인화로는 기세를 몰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협력해 제주시 원도심에 '포스트아일랜드' 매장을 열었다. 

취약계층 여성 중심의 ‘포스트아일랜드’ 매장은 벌써 입소문이 날 정도로 시장경쟁에서도 자신하고 있다.

송창윤 이사장은 “여성을 비롯해 지역주민과 함께 마을공동체와 결합하면서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실현해 가기 위한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다”면서 “사회적가치가 구호만이 아니라 연대와 협동으로 현실 경제와 지역사회 공동체 속에서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실천해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9년 11월 7일 플로베 롯데점이 롯데면세점 제주점 4층에 첫 선을 보였다. 개점식 참가자들이 기념 커팅식을 진행하고 있다.
2019년 11월 7일 플로베 롯데점이 롯데면세점 제주점 4층에 첫 선을 보였다. 개점식 참가자들이 기념 커팅식을 진행하고 있다.

◆일배움터= 제주 1세대 사회적기업인 사회복지법인 제주황새왓카리타스 일배움터(원장 오영순 / 이하 일배움터)는 중증장애인이 작업능력과 잠재능력을 향상시켜 지역사회 안에서 인격적인 독립과 존중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남들처럼 그렇게 평범하게'가 슬로건인 일배움터는 직업재활서비스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일상생활, 직업적응훈련, 사회적응훈련 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원예사업팀・도자기공방・까페 등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청년 발달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커피숍 '플로베'는 제주도 명물로 자리잡았다.

2019년 9월 처음 문을 연 ‘플로베’는 벌써 4호점까지 냈다. '플로베'에 종사하는 청년 장애인들은 주변부 노동이 아닌 ‘바리스타’와  같은 핵심적인 일들을 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매장에서 노동 주체가 되는 셈이다.  

오영순 일배움터 원장은 “시혜와 돌봄의 시각이 아니라 노동이라는 가치를 직접 실현할 수 있는 일터의 기능을 사회적기업 등을 통해 이뤄나가고 있다”면서 “발달장애인들이 일을 통해서 소소하게 직업적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밝혔다.

4·3 유족들을 위한 자체사회공헌사업인 4·3 반려식물 나누기. (사진=일배움터)
4·3 유족들을 위한 자체사회공헌사업인 4·3 반려식물 나누기. (사진=일배움터)

일배움터는 최근 플로베 매장에서 환경을 위한 ‘반려컵’ 캠페인으로 호응을 얻고 있기도 하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직접 키운 식물들을 4·3 유족들에게 무료로 배달하는 4·3 반려식물 자원활동을 2년넘게 꾸준하게 펼치는 등 또 다른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다.

제주의 사회적경제가 '인화로'나 '일배움터'처럼 성공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21년 현재 제주의 사회적기업의 양적 성장과 함께 사회 곳곳에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기반은 조성됐다. 

사회적기업협의회를 비롯해 사회적경제 유형별 당사자 조직체도 모두 꾸려져 있다. 통합지원기관의 역할을 하는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를 비롯해 중간지원조직인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사회적경제 활성화 플랫품도 갖춰져 있다. 

이를 토대로 제2차 제주특별자치도 사회적경제발전기본계획은 2025년까지 제주의 사회적경제기업을 1047개로, 2020년 보다 200%를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일자리 창출 규모는 2020년 2800여명에서 2025년 3779명으로 130% 증가시킨다는 목표가 담겼다. 나아가 연대와 협력의 제주 공동체 복원을 비전으로 사회적경제 선도도시 도약을 꿈꾸고 있다. 

강호진 제주사회적경제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관이 주도하는 지원이란 일부 비판도 있었지만 제주의 사회적 경제 조직의 역량 등을 감안하면 다른 16개 시도 중에서도 활성화 가능성이 매우 큰 지역”이라면서 “양적 성장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질적인 전환과 함께 구호만 사회적경제 선도도시가 아닌 실질적으로 선도 할 수 있도록 예산과 정책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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