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카모메 식당》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푸른숲

《카모메 식당》은 영화로 유명하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잔잔하면서도 보고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그런 평들이 주를 이룬다. 그런 영화평들에 기대서 말해본다면, 솔직히 소설은 기대에 못 미친다. 소설의 작품성 보다는 영화의 완성도가 더 뛰어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우선 소설의 메인 주인공은 사치에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사고로 죽자 아버지를 돌보며 생활하게 된 사치에는 요리에 남다른 애정과 솜씨를 보인다. 그녀가 요리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이미지는 “어머니가 만들어준 집 밥과 아버지가 만들어준 오니기리”(p.19). 곧 부모에게서 난 음식인데, 그것을 사치에는 “정말로 사람이 날마다 먹는 음식”이라고 정의한다.

그녀가 자신의 가게에서 만들고 싶은 음식도 바로 그런 음식이다. “화려하게 담지 않아도 좋아. 소박해도 좋으니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을 만한 가게를 만들고 싶어.”(p.20) “옛날 식당처럼 이웃 사람들이 와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음식은 소박하지만 맛있는 그런 식당이 좋았다. 겉으로만 세련되고 알맹이 없는 가게는 절대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p.22)

그녀는 실제로 그렇게 한다. 어쨌든 사치에는 망설임 없이 일본을 떠나 핀란드로 가고, 그곳에서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핀란드의 한 모퉁이에 있는 카모메 식당으로 사람들이 하나씩, 천천히 모여든다. 그들의 이야기가 바로 영화와 소설 <카모메 식당> 이야기다.

소설은 흔히 하는 말로 ‘로망’들로 채워져 있다. 일종의 로망 집합소 같다고나 할까. 소설에서 각각 한 장씩 차지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미도리와 마사코, 그리고 소설 전편에 계속 등장하는 핀란드 청년 토미와 중년부인 리사의 경우가 다 그에 해당된다. 아, 그리고 개과천선하는 늙은 도둑도 포함된다. 어쨌든 사실상 그들이 소설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미도리와 마사코는 가족 문제로 상처를 받고서는 고향인 일본을 떠나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삶을 꿈꾸며 핀란드로 온다. 핀란드 여성 리사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의 외도로 여태껏 굳건한 것만 같았던 삶이 속절없이 무너져내린 리사 역시 카모메 식당을 통해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는다. 일본 대중문화에 흠뻑 취한 토미는 카모메 식당의 그녀들을 통해 충족될 수 없었던 자신의 욕망을 조금이나마 채워나간다. 곧 모두에게 카모메 식당은 이른바 힐링의 공간이 된다. 자신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누구나 마음 한 켠에 갖고 있는 ‘로망’이 충족되는 바로 그런 공간인 셈이다.

하지만 ‘소설적 공간’은 헐겁다. 그것도 너무나! 가령 자신의 두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곳으로 ‘핀란드’라는 지명이 등장할 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하는 ‘우연’은 모든 이야기의 큰 대목에서 한결같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미도리가 핀란드를 자신의 여행지로 택한 방법은 지도책을 펼쳐놓고 눈감고 찍기. “손가락으로 짚은 곳이 알라스카였다면 알라스카에 갔겠네요?” “예, 그럼요.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 가기로 마음먹었으니까요.”(p.70) 역시 “텔레비전에서 본 뉴스가 계기가 됐”(p.135)다는 마사코 ,“아무 것도 할 의욕이 없어서 터덜터덜 걷다 보니 당신 가게인 거예요. 카모메 식당 맞죠?”(p.146)라는 리사, 모두가 다 우연을 통해 같은 곳으로 모인다.

이 정도로 막강한 위력의 우연이라면,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우연이지 않을까? 한가지 더 말해보자면, 사치에가 핀란드에서 개업하기로 결정한 다음 그녀 앞에 놓인 문제는 창업 및 이주 자금이었는데, 사치에는 복권 당첨으로 그 문제를 ‘깨끗이(!)’ 해결한다! 고백하자면 전체 200p 분량의 짧은 소설 중 27~28p에 등장하는 복권 당첨 장면에서 이 소설을 집어던져 버릴까도 했었다.

그나마 분량이 짧아서 끝까지 참고 읽었다고나 할까. 삶이 아무리 우연의 연속이라지만, 이거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참고로 영화에서는 이들의 이런 사연들을 상당 부분 누락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곧 핀란드 카모메 식당의 ‘현재성’을 다루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하긴 그 어떤 영화감독이 이런 우연을 다 감당하랴!

어쨌든 카모메 식당은 상당히 여성적인 공간이다. ‘갈매기’라는 이름 자체에서 연상되는 게, 갈매기는 먼바다 혹은 난바다의 동물로 상상되는 게 아니라, 물과 뭍의 경계에 있는 그 어떤 날짐승이다. 경계에 있다는 것은 위태로운 일이다. 횡단과 선택과 모험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러나 사치에는 그 갈매기를 다르게 혹은 그녀만의 독법으로 읽는다. ““갈매기……라.” 일본에서 갈매기라고 하면 귀여운 해군 아저씨를 상징하거나 흘러간 가요에 조연으로 자주 등장하지만, 핀란드 갈매기는 어딘지 모르게 태평하고 뻔뻔한 것이 마치 자신을 닮은 것 같은 기분이다. “갈매기라…… 그럼 카모메 식당……으로 할까요?””(p.36)

사치에가 만들어내는 공간은 각박한 나머지 끊임없이 상처를 안겨주는 현실에서 벗어나 “태평스럽고”, 그래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눈에는 “뻔뻔한 것”이 된다. 그 공간은,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는 여성적인 공간이다. 그런 여성적인 공간은 괴테의 <파우스트>의 마지막 문장,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가는도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아주 오래되고도 또 그만큼 강력한 염원이다. 영화 <카모메 식당>은 과연 그것을 보여주고 있을까?

사치에가 창업할 곳을 정하는 대목: “미국인은 맛을 모를 것 같았고, 영국도 그다지 와 닿지 않았고, 한국과 중국에는 끼어들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인도도 아프리카 대륙도…….”(p.23) 한국 요식업의 각박한 현실을 일본인 처자 사치에도 알고 있다! 나는 내 식당에서 유토피아를 읽지 않는다! 다만 내일 만들 시나몬 롤이 문제일 뿐. 《카모메 식당》에는 시나몬 롤이 등장한다. 가을이라 이틀 전에 시나몬 롤을 오랜만에 만들었는데, 엉망진창이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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