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연주 제공)
당근밭. (사진=김연주 제공)

올해로 당근농사 2년차. 작년에는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조그만 밭 하나를 겨우 파종했다. ‘언니네 텃밭(친환경·농산물 직거래 장터;편집자)’ 유기농에 내려고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파종했다지요. 모든 일이 처음인 우리는 당근보다 먼저 올라오는 풀들을 보고 기겁을 했었지요. 남편과 저는 당근밭을 바라보며 매일같이 으르렁 댔지요.

남편은 풀밭을 보며 “갈아엎어야지. 당근밭이 되겠냐”고 신경질적으로 다그치고, 난 “해보지 않은 당근 농사에 적어도 제초제는 치지 말아야 언니네텃밭에라도 낼 수 있으니 그리해보자”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당근밭 검질을 한 번도 매어보지 않은지라 저리 어린 당근들이 자라고 있는데 풀을 뽑다가 당근을 다 뽑아 버리면 어쩌나 걱정만 하고 한숨만 쉬기를 며칠.

솎는 작업은 나중에 하더라도 먼저 검질을 매라는 여성농민회 선배 언니들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갈아엎는 일은 피했지만 저 풀밭을 어찌 다 맬 것인가? 500평 남짓 당근밭이 태평양처럼 넓어 보이는 것은 내 눈에만 그런 것이지요? 어디서 지내다 세상에 나왔는지 이름모를 풀들도 많았지만 배추를 닮은 야생갓이 그리도 많이 자라고 있었다. 

(사진=김연주 제공)
(사진=김연주 제공)

풀이 너무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당근을 최대한 배려하며 풀을 뽑으려 하니 진도는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풀을 뽑아 당근만을 살려둔 곳은 제법 당근밭 태가 났다. 하루는 어머님께 부탁드려 남편과 셋이서 검질을 맸으나 아직도 당근밭이 아닌 풀밭이 더 넓은 상황이므로 급하게 인부를 투입하기로 했다. 게다가 풀들은 하루가 다르게 폭풍 성장하고 당근은 더 숨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우여곡절과 가정불화를 이겨내고 당근 검질을 다 매고 나니 제법 당근밭은 당근밭다워졌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는 뿌듯함까지도 느껴졌다. 작년의 그 경험은 정말이지 소중한 경험이어서 올해는 느긋하게 혼자서 검질을 맨다. 시기를 잘 맞춰 어렵지 않게 차근차근 점령해 나갔다. 

발아가 잘 안되어서 1차, 2차, 3차에 걸쳐 파종을 하다 보니 한 번에 매야할 평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당근밭 생리를 알아버렸다고나 할까? 당근밭은 검질매기를 한 번만 꼼꼼하게 하면 두 번 세 번 검질을 매지 않아도 된다. 키가 크지 않은 작물이다 보니 풀과의 전쟁에서 밀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우려일 뿐이었다. 

흰당근. (사진=김연주 제공)
흰당근. (사진=김연주 제공)

 

당근잎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면서는 다른 풀들이 자랄 틈을 전혀 주지 않고 혼자서만 쑥쑥 자라는 아주 착한 작물인 것이었다. 세 번의 파종과 여러 차례로 나눠 진행된 검질매기를 마치고 이제 당근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자기 몫의 성장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뜨거운 태양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몸을 키우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당도를 올려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조그맣게 자연재배 당근농사도 도전해보는 의미 있는 2021년이다. 호미 하나로 높게 두둑을 만들고 씨앗을 바람 타지 않게 조심히 훌훌 뿌려주었지요. 긁개를 가지고 꼼꼼히 흙을 덮어주며 잘 자라 달라고 기도도 드렸지요.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왜 그리 걱정스럽고 조바심나는지요. 500평 당근밭에 싹이 트는 건 순식간이었던 것 같은데, 요 조그만 자연재배밭에 싹이 트는 것은 그리 어렵고 어렵네요.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걸까요? 싹이 텄어요. 비료도 퇴비도 하지 않아 아직은 여리여리. 잘 자라 줄지도 걱정이네요. 손으로 대충 뿌려주다 보니 두둑 가운데로만 몰려 있어나 봐요. 두둑 가장자리는 많이 비어있네요. 노심초사 기다리던 자연재배 밭의 당근도 잘 자라주고 2년차 여유만만 당근밭은 이제 당근이 다 으스대는 듯하네요.

흡사 산삼같이 보이는 흰당근. (사진=김연주 제공)
흡사 산삼처럼 보이는 흰당근. (사진=김연주 제공)


또 하나 토종 당근 재배 원년으로 기록될 2021년이다. 토종 씨드림 사무국을 통해 토종 흰 당근 씨앗을 공급받고 상업적 재배를 해보기로 했다. 흰 당근은 당근잎의 자람새가 덜 풍성하다 겨울의 시금치처럼 옆으로 퍼져 자라는 경향도 있다. 당근 알도 튼실하게 자라줄지 모르겠다. 

이제껏 보아온 흰 당근은 흡사 산삼처럼 늙어 보였다. 난 젊은이 흰 당근을 수확하고 싶다. 잘 될까? 아직은 주황색 당근보다 잘 자라지 못하고 튼실하지도 못하다. 전국여성농민회 토종축제장에서 맛본 흰당근 나물도 맛있고 좋았지만 보통의 당근들처럼 미끈덩 잘생긴 몸매를 뽐내며 시장에 내고 싶은 게다. 수확기가 되어 과연 어떤 흰당근을 만나게 될지 지금부터 설렌다.

당근나물. (사진=김연주 제공)
당근나물. (사진=김연주 제공)

겨울 당근 수확을 마친 밭 한켠에는 전에 볼 수 없던 그림이 하나 더 그려질 것이다. 돌담옆 한켠으로 씨앗을 받기 위해 남겨진 당근이 봄을 맞이할 것이다. 담장을 훨씬 넘기는 큰 키로 자라고 하얗게 꽃을 피우겠지? 어지러운 봄바람을 잘 이겨내고 태양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흠뻑 받아 씨앗이 영글겠지? 씨앗을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다시 흰 당근의 대를 이어 가야겠지.

흰당근은 단맛이 더 좋고 육질이 부드럽다는 평이 많다. 토종 흰당근만의 맛을 오래오래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었으면 한다. 대를 이어 농민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시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당근이 되기를 기원한다.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3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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