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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비(非)희생자…누가, 왜 선을 긋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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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비(非)희생자…누가, 왜 선을 긋나
  • 조수진 기자
  • 승인 2021.10.28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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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제주대안연구공동체, ‘2021 제주인권포럼’ 개최
4.3평화공원 위령제단 위패(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4.3평화공원 위령제단 위패(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희생자가 되지 못한 희생자, 비(非)희생자. 

무장대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평화공원에서 위패를 떼어내고, 장애가 생겼으나 증거 부족을 이유로 희생자로 인정 받지 못하고, 낙인이 찍힐까 가족들이 신고하지 못하고….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된 지 20여년이 지나고 정부 차원의 진상조서보고서가 발간됐다. 대통령의 사과가 이뤄졌고 지난 27일엔 정부가 희생자 보상 방안까지 발표하며 4·3은 이제야 볕으로 나온 듯하다. 하지만 지금도 다양한 이유로 희생자로 인정 받지 못하고 그늘 안에 갇힌 희생자가 적지 않다. 

28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제주대안연구공동체가 주최·주관하는 ‘2021 제주인권포럼’이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열리고 있다. 이날 오후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가 마련한 ‘인권 실현을 위한 4·3운동의 과제-배제된 기억에서 내일의 역사로’ 세션을 진행했다. 

첫 발제자 고성만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희생자’는 4·3이 법·제도적으로 재평가되는 과정에서 새롭게 재구성된 집단으로 공적 해결의 주요 성과로 공표될 뿐만 아니라 제주 및 한국 사회의 갈등 지형을 반영한다”고 짚었다. 

고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논리(2001년 희생자 인정 단서조항;편집자)의 연장선상에서 인명 피해 당사자들 중에서도 ‘남로당 제주도당 핵심간부’와 ‘무장대 수괴급 등’을 구체화하고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을 ‘희생자’로 재구성했다”며 “이는 사건 당사자들의 경험과 기억을 왜곡하고 새로운 금기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국가주의에 기초한 희생과 비-희생을 가르는 배타적 선 긋기와 무장대만을 배제하려는 선별의 논리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며 “이는 국가폭력의 수행 주체(토벌대)를 비무장 주민들과 ‘희생자’라는 틀 속에 재구성해 폭력 현장의 구체적 사실을 묵인하고 죄과를 면책해 버린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선 긋기 논리에 입각한 과거 청산 프로그램과 희생자 정책은 정부 공인 ‘희생자’와 거기서 배제된 이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갈등과 불평등 문제에도 무관심하다”며 “공동체의 재생과 공존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오직 ‘희생자’ 자격을 획득한 이들에게만 허용되고 의도적으로 입을 다물어버리는 사람들의 출현은 피할 수 없게 됐으며 비-희생자들은 점점 ‘유령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양성주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처장은 “당시 희생된 사람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제주4·3희생자로 결정해야 한다”며 “그래야 진정한 화해와 상행의 틀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 사무처장은 또 “대통령이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했다고 하지만 그전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졌느냐”며 “누구를 반드시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책임자에 대한 진상규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해자라는 표현이 어렵다면 국가폭력 책임자라는 표현을 써도 좋다.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이 돼야 이승만 정부와 미국의 책임 규명도 이뤄질 수 있다”며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는 기간에 예외 없이 부당한 것이며 이로 인한 피해가 있다면 반드시 피해자 회복 조치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28일 ㈔제주대안연구공동체가 주최·주관한 ‘2021 제주인권포럼’이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8일 ㈔제주대안연구공동체가 주최·주관한 ‘2021 제주인권포럼’이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김은희 제주4·3연구소 연구실장은 헌법재판소가 달아놓은 단서 조항을 우선 지적했다. 보수 우익단체가 4·3희생자 선정을 두고 부적절하다며 헌법소원을 내자 헌재가 “무장유격대에 가담한 자 중 군경의 진압에 주도적으로 대항한 자, 제주4·3사건 발발의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 핵심간부 등 희생자의 범위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이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김 연구실장은 “어떤 분은 동사무소에 유족증 재발급을 받으러 갔다가 빼앗기고 또 어떤 분은 형제가 희생자 철회 동의서에 서명한 걸 몰랐다가 나중에 유족증을 반납하라고 해서 너무 놀랐다고 하더라”며 “이분들은 4·3평화공원도 못가겠다고 한다. 이분들이 겪었을 상실과 상처는 말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4·3의 상황과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며 무장대로 활동했던 이의 인터뷰 내용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며 토론을 마쳤다. 

“매 맞지 않으려고 (…) 살아보려고 산에 숨고 죽지 않으려고 대항해서 싸운 것뿐이지 무슨 사상이 있어서가 아니지. 난 사상도 없고 배우지도 못해 좀 모자라지만 내 자신이 산에 올라가게 된 것도. 삼십 몇 년 간 왜정 치하에서... 살다가 해방이 되었는데 왜 우리가 또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느냐 이거였어. 왜정 시대에 왜놈과 붙어 먹단 사람들이 다시 미군정 쪽에 붙어먹으니 이것이 잘못된 거라. 그러니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투쟁을 안 할 수가 있겠어. 그때 우리가 한 행동이 나라를 팔아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난 나 자신을 후회하진 않아.”
 
김경훈 시인은 본인이 ‘희생자 신고 철회서’ 서명과 도장을 받으러 다닌 경험을 고백하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김 시인은 “서류를 가지고 신고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철회서에 도장을 받았다”며 “헌법재판소 판결이나 4·3위원회의 결정과 사회 분위기 때문에 희생자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설득을 하면서 기어이 도장을 받아냈다. 반응은 대체로 체념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철회서를 받을 때 신고인들에게 ‘4·3공원 위패는 철거되지 않는다’고 약속했는데 당국은 철회서가 들어가자마자 바로 위패를 떼어냈다”며 “그걸 보고 신고인 한 분은 저에게 눈물로 항의하기도 했다”며 “저도 눈물로 속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4·3 때 양민들이 억울하게 아무런 이유 없이 많이 죽었다’는 고정된 인식에서부터 먼저 벗어나야 한다”며 “그분들은 친일을 처단하고 해방을 기념하는 3·1시위에서부터 분단을 반대하고 제주공동체를 지키다 희생되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석윤 제주공공정책연구소 나눔 소장은 사회 질서가 작동하는 방식에 따라서 규정되는 배제의 여러 양태를 설명했다. 

첫째 나치 독일의 배제 방식인 죽음과 절멸, 둘째 반려동물 유기 등 버림에 의한 배제, 셋째 장애 특수학교 등 격리에 의한 배제, 넷째 지원과 조건부 포섭을 통한 배제, 다섯째 주변화와 정상화를 통한 배제, 마지막으로 차별을 통한 배제 등이 있다. 

김 소장은 “배제는 기본적으로 한 사회의 정상적인 규범이 강력하게 작동할 때 거기서 벗어난 이들에 대해 작동하는 것”이라며 “배제는 우리 사회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 합의를 어떻게 번복해야 하고, 새롭게 합의된 내용을 제도화시킬 것인가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고 강조했다. 

또 “국가가 ‘양민학살론’에 입각한 해원과 상생이 국가를 향해 용서와 화해로 재코드화하면서 평화의 주체와 가혹성에 대한 암시를 삭제했다”며 “용서와 화해의 제안자라는 제주의 위치와 가해자이며 학살자라는 국가의 위치는 국가가 평화담론을 주도하면서 순식간에 역전되기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사자(死者)의 기억을 지금의 법정에서 판단하는 게 올바르것 인지를 짚어봐야 한다”며 “그분들이 꿈꾼 세상이 지금 법질서에선 좌익일 수도 우익일 수도 있지만 그 시절엔 오히려 바람직하고 권장해야 할 주장 아니었을까. 돌아가신 희생자의 기억을 지금의 우리가 재단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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