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공사장 노동자(사진출처=픽사베이)
자료사진. 공사장 노동자(사진출처=픽사베이)

2012년 대선에 도전할 당시 손학규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늦게까지 일하지 않는 삶을 제시한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저녁이야 그렇다치고, 노동자들은 ‘점심이 있는 삶’은 살고 있는가? 노동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주4일제 근무 제도는 노동자에게 ‘점심이 있는 삶’을 보장해줄까?

몇몇 대선 후보가 주4일 근무 제도 공약을 내걸었다. '진보정당이 제시하는 파격적인 판타지 같은 실현 불가능한 공약'이라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이재명 더불민주당 대선 후보도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이런 의문들이 떠오른다. 주4일제가 도입되면 노동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특효약일까. 실현 가능성은 있을까. 전세계적으로 주4일제를 안착시킨 나라는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긴 한국이 주4일제를 도입한다?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도 미루는 나라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시급 1만원 공약도 '空약'에 그치고 말았다. 주4일제 도입에 대한 재계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주5일제 도입 때 나라가 망한다고 걱정하던 재계와 일부 언론이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마냥 낙관적이지는 않다.

주4일제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 “불가능하다”로 귀결되어서는 곤란하다. 가능하다는 쪽이든, 불가능하다는 쪽이든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며 검토해야 한다. 이를테면 법정휴가 일수 확대, 안식년제 제도화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한 상상과 근로기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 하루 빨리 적용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주4일제라는 파격이 다른 대안에 대한 상상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대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점심시간 2시간제. 노동자들은 지금 어떤 점심 시간을 보내고 있나. 노동자들은 점심 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 마시며 대화 나누고,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고, 때로는 부족한 잠까지 잔다. 이 모든 것을 점심시간 1시간 동안 처리한다. 음식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한다. 점심식사는 맛을 음미하는 음식이라기보다는 오후 노동을 위해 위장에 쑤셔 넣는 배터리로 기능한다. 식사 속도의 관점에서 보자면 노동자에게는 모든 점심식사가 ‘패스트’푸드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 건설현장을 나선 노동자의 경우 허겁지겁 식사를 마친 뒤 잠깐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쪽잠에 들까 싶으면 다시 일어나야 한다. 선잠에서 깨어나 오히려 더 처지는 몸으로 벽돌과 시멘트를 짊어들고, 금속 절단기의 전원을 켜고, 로프에 매달린다.

점심시간 2시간제 도입되면 노동자는 근무하는 날마다 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노동자는 점심식사의 맛을 음미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점심식사 후 자기계발이나 운동을 할 수 있다. 이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회사가 밀집한 곳의 카페·체육시설 등 상권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단계적 일상회복 기간에 맞춰 실험적으로 시행해 볼 수도 있다. 1시간 동안 식당에 밀집하는 손님들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주당 노동 시간 감축 효과는 주4일제가 유리하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노동자의 경우 주4일제는 주당 8시간의 노동시간을 감축한다. 점심시간 2시간제는 주당 5시간을 감축하는 효과가 있다. 주4일제보다 주당 3시간 더 근무하는 셈이다. 이는 법정휴가 일수 확대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주4일제가 주당 노동시간을 감축 효과는 우세하다. 하지만 근무하는 날에 노동자에게 ‘점심이 있는 삶’을 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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