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면 고산리 (사진=녹색연합)
제주 한경면 고산리 연안 조간대 나타난 갯녹음 현상.  (사진=녹색연합)

 

전에는 바다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만 원 벌었는데, 이제 천 원 밖에 못 번다. 감태가 파릇파릇했는데 최근 몇 년간 많이 사라졌다. 감태들 밑에 소라가 숨어 지내는데 이제 죽은 소라 찾기가 더 쉽다. 제주 연안 암반이 벌겋게 됐다가 허옇게 변했다. 동북하수처리장이 들어서고 난 뒤 바닷속이 눈에 띄게 척박해졌다.

김영숙(69)씨는 해녀다. 제주도 월정 바다에서 평생 물질을 했다. 해산물을 따서 쌀도 사고, 아이들 공부도 시켰지만 십수년간 변해버린 바닷속 상황에 지금은 제 입 풀칠도 힘들다. 옛날 그 많던 연안생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 바다 사막화 ‘심각 단계’

'기후위기'와 '육지오염' 등 바다 스트레스 요인이 증가하며 제주도 연안 전반에 걸쳐 갯녹음이 심각한것이 확인됐다. 해양 생물의 은신처나 산란장 역할을 하는 연안 해조류 군집도 거의 멸종 상태인 것으로 보고됐다.

녹색연합은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두 달간 제주 연안 조간대(썰물로 물이 빠지는 경계지역) 200곳(전체)을 조사했다.

3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지점 200곳(전체) 가운데 갯녹음(사막화 또는 백화) 현상이 확인된 지점은 198곳. 나머지 2곳은 모래 해변이다. 해안마을로 따지면 97개 해안마을 전체 조간대 암반에서 갯녹음이 확인된 것. 갯녹음이란 해조류가 사라지고 하얀 석회조류가 암반을 뒤덮는 현상을 말한다. 

녹색연합이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두 달간 제주 연안 조간대(썰물로 물이 빠지는 경계지역) 200곳 전체를 조사한 결과 198곳에서 갯녹음이 발견됐다.
녹색연합이 지난 9월부터 10월까지 두 달간 제주 연안 조간대(썰물로 물이 빠지는 경계지역) 200곳 전체를 조사한 결과 198곳에서 갯녹음이 발견됐다.

특히 수중 5m 이내 서귀포항 동방파제 지역은 이미 극심한 갯녹음 현상이 진행돼 아무것도 살지 않은 죽음의 바다로 변해 있었다.

서귀포 외돌개 수심 15m 지점에서도 감태 등 대형 갈조류가 거의 사라졌으며, 대정면 광어양식장 배출수 인근에서도 갯녹음 현상이 심각했다.

해조류 전문가에 따르면 갯녹음 현상은 5m 이내 수심에서 미역·모자반 등 해조류가 먼저 사라지고 다음으로 수심 5~10m 이하에서 감태·다시마 등 대형 갈조류가, 마지막 조간대서 톳 등이 순서대로 사라지는 경향을 띈다. 

조사지점 중 조간대 해조류 서식이 확인된 지점
조사지점 중 조간대 해조류 서식이 확인된 지점. 서귀포 권역 조간대 해조류는 거의 전멸 상태다. 

# 서귀포 권역은 조간대 해조류 군집 거의 전멸

이번 조간대 조사에서 해조류 군집이 발견된 지점은 전체 조사지점 200곳 가운데 단 30곳. 마을로 따지면 97곳 해안마을 중 18곳에 불과했다.

제주시 권역의 경우 한경면 용수리, 신창리, 판포리 3곳, 한림읍 월령리, 금능리, 수원리, 귀덕리, 협재리 비양도 5곳, 애월읍 고내리, 신엄리, 하귀1리 3곳, 제주시 삼양이동, 삼양삼동 2곳, 조천읍 함덕리 1곳, 구좌읍 동복리, 김녕리, 하도리 3곳 등 총 17곳에서 조간대 해조류가 발견됐지만 해조류 피도 30% 이하로 '갯녹음 심각' 상태였다. 

서귀포시 권역은 더 심각했다. 안덕면 사계리를 뺀 나머지 해안마을에는 조간대 해조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녹조류인 ‘구멍갈파래’ 창궐 지점도 다수 발견했다. 

'구멍갈파래' 확인 지역은 광어양식장이나 화훼단지 배출수 주변으로 녹색연합은 “육상 오염원 통제 정책이 시급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 갯녹음이 말하는 세 가지 큰 문제

1. 종 다양성과 어업 생산량 감소 = 제주 바다 조간대는 해양생명 터전이다. 제주 해녀는 대부분 제주 바다의 조간대와 조하대 10m 이내 바다에서 물질을 하며 톳, 모자반, 우뭇가사리를 캐고 소라, 전복, 해삼 등을 잡는다.

조간대 해조류 군집은 주 바다의 어업 생산성을 담당하는 것 외에도 생물종 다양성 유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양생태계 1차 생산자로서 연안에 서식하는 다양한 동물들의 먹이, 산란장, 은신처 등을 제공하고 다른 해양식물과 부착성 저서동물의 서식 기질 역할도 한다.

김영숙 해녀는 “해조류 군집은 해양 생태계의 종다양성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감태뿐 아니라 톳이나 우뭇가사리, 모자반 등 해조류가 사라지니까 그것을 먹는 소라·전복·해삼도 줄었다. 잡히는 게 줄어드니까 이제 물질만으론 살림살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바닷속 1차 생산자가 줄어드니까 제주 연안에 서식하던 동물들이 먹이를 찾아 이동하기도 하고, 굶어 죽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윤상훈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오염원 통제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이제 제주해녀는 유물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덕면 사계기 형세섬 갯녹음 현상 (사진=녹색연합)
안덕면 사계기 형세섬 갯녹음 현상 (사진=녹색연합)

2. 경관파괴 = 제주도 기간산업중 하나인 관광산업의 자원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독특한 자연경관이다. 성산일출봉, 산방산, 용머리 해안과 곳곳의 주상절리 등 빼어난 해양경관이 도내 주요 수입원인 셈이다. 

제주도 해안마을 갯녹음 심각 현상은 해양 생태계뿐 아니라 경관도 훼손시키고 있다.

녹색연합은 “서귀포시 권역의 경우 성산일출봉을 시작으로 섭지코지 등 주요 해안 관광지가 갯녹음으로 인한 경관 훼손이 심각했다”고 전했다.

제주시 권역도 고산리 수월봉 지질공원, 협재해수욕장, 애월 해안도로, 함덕해수욕장, 함덕·북촌리 서우봉 일대, 제주 북동 해안 등도 갯녹음 현상이 심각했다. 

녹색연합은 “경관파괴는 갯녹음이 제주 바다 조간대까지 확산되면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며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3.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유력한 탄소흡수원 상실 = 무엇보다 해양생태계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유력한 환경 수단 중 하나다. 온실가스 흡수 속도가 육상 생태계보다 최대 50배 빠르며 식물로 고정된 탄소가 오랜 기간 분해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 온실가스 감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한국수산자원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특히 해양식물은 중요한 탄소흡수원이다. 해양식물들은 광합성을 통해 탄소를 흡수하고 영양분으로 합성하며 바이오매스 형태로 토양에 탄소를 저장한다. 해양식물에 의해 흡수된 탄소를 ‘블루카본’이라 하는데, 블루카본 자원 중 하나인 해조류가 해양오염, 기후변화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사라지고 있다. 해양생태의 보고이자 오염물질 정화를 담당하는 '바다숲'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 기후변화와 육상오염원 원인 추정

갯녹음은 현재 실태조사 정도에 머물러 있을 뿐 발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구체적인 연구는 전무하다. 다만 △수온 상승 △환경오염 △육상생태계와 단절 △해수의 염도 변화 △서식처 경쟁(무절석회조류 우점) △식해(성게 등 초식동물의 과도한 먹이활동) 등을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녹색연합은 “제주의 경우 주요 원인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과 환경오염이 복합적 요인이라는 의견이 많지만 아직 추정과 현상 확인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 요인 =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의 결과로 제주연안에서 갯녹음 발생면적은 1998년에는 2,931ha였으나, 2003년에는 4,541ha로 5년 전에 비해 10.9%가 증가했다.

또한 최근에 초분광항공영상으로 분석된 제주해역의 갯녹음 발생비율은 마을어장(수심 10m 이내)의 38%가 갯녹음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국수산자원공단에 빠르면 갯녹음이 1998년에는 제주도 남부해역에서 주로 발생했으나, 2012년에는 제주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제주 연안에서 1968년부터 관측된 연간 수온증가 값은 갯녹음 해역이 0.038℃, 해중림 해역이 0.024℃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갯녹음 (사진=녹색연합)
갯녹음은 연안 암반 지역에서 해조류가 사라지고 흰색의 석회 조류가 달라붙어 암반 지역이 흰색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바다 사막화라고도 하며, 백화나 백화현상이라고도 부른다. (사진=녹색연합)

한국환경생태학회지(2017)에 실린 ‘제주연안에서 기후변화가 갯녹음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갯녹음을 유발하는 원인생물인 ‘무절산호조류’도 해중림 해역보다 갯녹음 해역에서 월등히 빨리 확산됐다.

녹색연합은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상승이 제주도 갯녹음을 확산시키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육상오염원 요인 = 녹색연합은 제주 연안 갯녹음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연안 환경오염을 꼽았다. 양식장 배출수와 하수종말처리장의 과부하 같은 직접적 요인 외에도 육지부에서 발생한 비점오염물질 등이 우수에 섞여 바다로 유입돼 연안 갯녹음 현상을 부추겼을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은 △과다한 비료 사용 농장 △밀집된 축사 △총질소량이 높은 용출수 △해안도로 △항만 및 방파제 △난개발 △해수 우류 변화 등을 복합적인 바다 오염원으로 보고 있다.

녹색연합은 제주의 경우 농업 등 기간산업 부분과 난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비점오염물질이 빗물에 섞여 바다에 유입되며 연안 오염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에 따르면 7월이나 8월 월동채소 파종기에 과다하게 사용한 비료가 여름철 폭우와 맞물려 바다로 유입되면 수질 악화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하천정비·연안 육상해역의 개발 등에서 발생한 오염물질도 수질오염의 한 축이다. 2016년 발생한 도두하수처리장 사례처럼 미처리 오폐수 해양 방류수도 마찬가지다. 육상 양식장 배출수 등도 바다 사막화를 부추긴다. 

녹색연합은  “제주 연안 전반에서 수질관리가 시급하다”면서 이는 상주 인구 및 관광객 증가와 연안 개발사업 등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했다.

따라서 제주도의 섬 환경수용성을 중심으로 수질관리, 오염물질 배출시설 및 산업 규제, 연안개발사업 계획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문제는 정책

한국수산자원공단은 갯녹음 방지를 위해 인공어초와 해조류 등을 옮겨심는 인공 바다숲 조성사업을 추진중이다. 하지만 제주의 경우 지자체에 바다숲 관리·감독 권한을 떠넘긴 채 수수방관 했던 사실이 2019년 감사원 조사 결과 드러났다.

현재 공단의 바다숲 조성사업에는 지난 2009년부터 2030년까지 인공 바다숲 5만4000ha 조성을 목표로 매년 3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현재까지 2만6644ha의 바다숲이 조성되었으며 지난해 말 기준 3143억 원이 투입됐지만 제주의 경우 관리감독 부실로 해조류와 해저 서식동물 개체수가 인공바다숲 조성 전보다 1/5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정은 지난해부터 2024년까지 1733억 원을 들여 추진하는 ‘제주바당 살리기’ 계획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원인 통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인공바다숲 조성, 수산종자 매입 방류, 바다지킴이, 침적폐기물 수거 등 '사후 약방문'에 집중돼 있어서다. 

녹색연합은 ”원인 통제 없이 임시처방식으로는 제대로 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미역 등 대형 해조류가 사라진 암반에 분홍색 석회조류가 뒤덮고 그 위에 밤송이처럼 성게들이 살고 있는 갯녹음 현장. 암반이 있는 우리나라 모든 연안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미역 등 대형 해조류가 사라진 암반에 분홍색 석회조류가 뒤덮고 그 위에 밤송이처럼 성게들이 살고 있는 갯녹음 현장. 암반이 있는 우리나라 모든 연안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진=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 대책은?

이에 녹색연합은 △현황 파악을 위한 데이터 축적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상승 △육상 유입 오염원에 대한 구체적 규명 △이 세가지에 근거한 근본, 통합적 관리 정책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먼저 도와 도의회는 제주 바다 비상상황을 선포하고, 이에 맞는 조직, 인력, 예산 배정을 요구했다.

제주 연안 조간대·조하대 전체 갯녹음 상황과 마을별 피해 조사, 수온 상승과 해양오염 등 갯녹음 발생 원인에 대한 정밀 조사의 필요성도 피력했다.

도와 도의회는 섬 환경수용성을 최우선으로 육상부 오염물질 배출 시설과 산업에 대한 규제 및 관리를 강화하고, 대규모 개발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시처방식 정책이 아니라 해양생태계 보호 및 복원, 경관자원 관리에 실효성 있는 ‘제주 바다 살리기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지역주민, 시민사회, 지자체, 기관, 정부부처로 구성된 민관합동협의체를 구성할 것도 제안했다.

이와 더불어 해양수산부, 문화재청, 환경부 등 중앙 부처가 제주도의 갯녹음 확산 방지, 해양생태계 보호를 위한 지원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제주 연안 조간대 전체 갯녹음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바다 사막화 현상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조간대의 경우 물때와 안전 등을 고려해야 하는 등 조사가 까다로워 지금까지는 조하대 중심으로만 연구가 진행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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