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코너에 무거운 싸움(투쟁)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아도 무겁고 심각한 기사들이 많은 요즈음인데, 굳이 독자들 마음에 돌덩어리를 얹어 드릴 필요는 없지 않나 싶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 편하게 읽고 웃음 한 번 지을 수 있도록 초보 이장 경험담을 최대한 짧게 풀어 보려고 나름 고민한다.

근데 이번 달에는 싸움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자가 7월부터 공사를 슬금슬금 재개하는가 싶더니, 동시에 사업 찬성 인사들이 대책위원과 마을을 상대로 고소와 소송을 걸어왔다. 그리고 10월 29일, 사업자는 공사 진행을 빌미로 올해 말로 끝나는 사업기간을 2024년까지 연장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주도에 제출했다.

제주도는 11월에 개발사업심의회를 열어 사업기간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마을회와 반대대책위는 비상이 걸렸다. 기자회견, 1인 시위, 탄원서 등 사업 기간 연장 반대를 위한 투쟁을 또다시 시작했고, 이장이자 반대대책위원인 나는 정신이 반쯤 날아간 상태다.(연재 날짜를 지키지 못했다고 이해해 달라고 구구절절 변명하는 건 아니다.)

연재 날짜를 훌쩍 넘긴 어느 날, 제주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문득 투쟁 이야기가 무겁게만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는 소소한 디테일들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투쟁의 이유, 가치 등 심각한 소재는 과감히 뛰어넘고, 1인 시위와 관련된 나만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팁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말 많고 탈 많은 제주에서 1인 시위를 처음 시도하는 소심형 초심자들을 위한 안내글이라고 할까?

(사진=이상영 제공)
(사진=이상영 제공)

피켓 선정의 기술

먼저 1인 시위 필수도구인 피켓부터 알아보자. 초심자들은 흔히 손에 들고 진행하는 작은 피켓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잠시는 편하지만 오랫동안 들고 있으면 양팔이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히려 1미터 정도 크기의 대형피켓을 준비해 아랫부분을 바닥에 내려놓고 윗부분에 손을 가볍게 올려 놓으면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통 피켓 재질은 가벼운 스티로폼의 일종인 폼보드를 이용하는데, 내 경험으로는 무겁지만 단단한 합판이 최고다. 따뜻한 햇살에 밀려오는 졸음을 견디지 못한 몸뚱이를 슬쩍 기대도 부러지지 않고 잘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피켓의 진정성! 힘들더라도 손수 자르고 붙여 만든 핸드메이드 피켓이 공장에서 나온 제품보다 아무래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듯하다. 물론 손수 만들다 보면 ‘그냥 돈 주고 살 걸...’ 하는 후회가 따르기는 한다.

1인시위와 풍수지리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제주도청 1인 시위 최고의 명당자리는 민원인들과 공무원들의 통행이 많은 본관 현관 처마 밑이다. 눈과 비 등의 자연재해도 피할 수 있는 이곳은 나 같은 새가슴형 초심자에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혹시 그곳에 다른 시위자들이 먼저 피켓을 들고 있을 경우엔 슬쩍 그 옆자리에 서보자. 물론 청원경찰 아저씨들이 쳐다보는 눈초리가 뒤통수에 팍팍 꽂히겠지만, 그게 바로 1인 시위의 효과가 높다는 뜻이다.

특히 건물을 관리하는 총무과 중간급 공무원까지 나와서 호들갑을 떠는 날에는 운 좋게 귀인(도지사)을 만날 확률도 높아진다는 걸 기억하자. 하지만 맘 편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곳은 보통 도청 입구다. 그곳에서 많은 시위자들을 만날 수 있는데, 서로 인사하는 게 좋다. 보통 SNS 게시 등을 위해 1인 시위 인증 사진이 필요한데, 시위자들이 서로서로 찍어주는 경우가 많다. 다른 시위자가 없을 때는 과감히 청원경찰에게 사진을 부탁해 보자. 단 공짜는 없기 때문에 청원경찰도 상부보고용 사진 촬영을 요구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시선 처리의 기술

사실 이 부분은 제일 자신이 없다. 1인 시위의 경우 보통 피켓만으로 우리의 주장을 전달해야 한다. 먼저 자신이 평소 대인관계에 자신이 있고 과감하고 적극적인 성격이라면 시민들과 눈을 맞추고 내 이야기를 전달해 보자. 하지만 이건 고수의 단계다. 보통 나같이 무뚝뚝한 남자가 서 있으면, 시민들도 부담스러워 피켓에 쓰여진 글자를 곁눈질로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기 일쑤다. 이럴 경우 나는 도청 맞은 편 교육청 꼭대기에 달린 대형시계를 쳐다본다.

부담스러운 내 시선 신경쓰지 마시고, 편하게 피켓에 있는 글에 집중해 달라는 성의 표시다. 단, 기자들을 만났을 때는 적극적인 눈 맞춤이 필요하다. 누가 기자냐구? 자주 서 있다 보면 기자처럼 생긴(?)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에게 적극적이고 간절한 구애의 눈빛으로 어필해 언론에 기사 한 줄, 사진 한 컷이라도 등장해 보자. 기자에게 사진이 찍혔다면 오늘 목적은 다 이룬 것이니 더 고생말고 퇴근하자.

오늘 수고했어...셀프 토닥토닥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보상이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곳에서 진행하는 1인 시위는 신체적으로 힘들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매우 고단하다. 이런 나(우리)의 노고를 위로할 강력한 보상이 필요하다. 1인 시위 전에 인근에 있는 맛있는 식당과 카페를 꼭 검색하거나 지인들에게 물어보자. 1인 시위를 진행하는 곳은 주로 사람의 통행이 많은 중심지라 상업시설이 집중되어 있어 내공있는 맛집들이 많을 확률이 높다. 한라산 중산간 마을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맛난 음식과 달달한 바닐라라떼 한 잔 마실 생각에 들떠 있다 보면 어느새 1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이처럼 확실한 자기 보상은 지치기 쉬운 1인 시위의 자기 출석율을 높이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꼭 기억하자.

끝으로...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절박한 심정에서 1인 시위를 하시는 분들이 길고 힘든 싸움에서 지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두 힘냅시다!

이상영 선흘2리장(사진=김재훈 기자)
이상영 선흘2리장(사진=김재훈 기자)

 

선흘2리 마을회장 이상영 씨는 '20년간 학교에서 지리와 사회를 가르치다 제주로 이주한 지 3년째인 초보 제주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2년 전에 참여한 마을총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이 된 후, 최근 이장으로 선출·임명되었다. 1973년생인 이상영 이장의 고군분투 마을공동체회복기를 매달 1회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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