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시민들의 ‘반란’, 임대주택 몰수․공유화 방안 가결 

독일 총선이 한창이던 지난 9월 말, 베를린에서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대형 부동산회사가 보유한 주택 24만여 채를 몰수해 공유하자는 주민투표가 가결됐다. 찬성이 56.4%, 반대는 39%에 그쳤다. 마침내 시민들이 뿔난(?) 것. 놀랍다 못해 전율스럽다. 우리는 단군 이래 최대 부동산게이트로 다들 옥신각신, 온통 난리법석이었는데 말이다.

베를린에서 임대주택은 150만 채 남짓. 이 중 3000채 이상을 보유한 기업형 부동산업체는 10여 개, 전체 물량의 15% 정도다. 모다 합치면 24만 채를 넘는다. 저렴한 월세와 훌륭한 치안으로 한때 유럽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졌던 베를린. 하지만 치솟는 월세 때문에 이젠 옛말이 돼버렸다. 스타트업과 예술가들이 몰려들면서 주택난이 심화되고 임대료가 폭등한 것. 최근 5년간 무려 42%가 올라 독일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베를린은 시민 82%가 임대주택에 살 정도로 세입자 비율이 높은 편. 월세 상승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시민들의 항의 시위까지 초래할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된 지 오래다.

이번 주민투표는 ‘도이체보넨 몰수’ 시민행동이 발의한 것. 이 단체는 2019년부터 대형 부동산업체가 보유한 주택을 몰수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자 요구해 왔다. 도이체보넨은 독일 전역에 15만 채 이상을 보유한 대표적인 부동산기업. 몰수된 주택은 공공기관이 관리하고, 임차인 조직도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래야만 최소한 '미친' 월세 상승률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시민행동은 "투기꾼들과 이익에 눈먼 부동산업자들을 몰아낼 것"이라 목청 돋운다.

베를린 시민들의 ‘반란’은 독일 헌법 15조에 근거한다. 15조는 ‘토지와 천연자원, 생산수단은 사회화(공유화)를 위한 손해배상의 방식과 규모를 정하는 법률을 통해 공유재산이나 공유경제의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실제 적용된 적이 거의 없어 공유화가 법적으로 가능한지는 여전히 남겨진 숙제다.

생태도시 꾸리찌바를 소개한 도서(박용남, 2009, 녹색평론사)
생태도시 꾸리찌바를 소개한 도서(박용남, 2009, 녹색평론사)

 

‘솔 크리아도(창조된 땅)’... 다시 꾸리찌바에서 배우자!

브라질 변방도시, 꾸리찌바. 시내버스를 `땅 위의 지하철'처럼 발달시킨 교통난이 없는 도시, 차보다 자전거가 주인인 도시, 각종 폐기물을 생필품과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도시,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도시계획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킨 도시, 진정으로 환경과 인간이 공존하는 도시. 그간 꾸리찌바에 쏟아진 찬사다. 그래선지 몇 해 전까지 생태도시의 전형으로 벤치마킹 열풍이 불기도 했다.

이 도시의 독특한 시스템, ‘솔 크리아도'(창조된 땅). 시 재정에 압박을 주지 않으면서 역사적 건축물을 복구하고, 녹지대를 만들고,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안됐다.

대부분의 도시들은 각 구역에 따라 지을 수 있는 건물 층수를 규정한다. 하지만 꾸리찌바에는 두개의 기준, 즉 통상 허용기준과 최대 허용기준이 있다. 가령 대지 1만㎥의 호텔을 통상 허용기준 10층, 최대 허용기준이 15층인 구역에 세우려고 한다. 만약 호텔 소유자가 15층을 건축하려면 '솔 크리아도' 시장에서 5만㎥의 땅을 사야 한다. 시청은 다만 그 시장에서 공급과 수요를 중계할 뿐이다.

그럼 ‘솔 크리아도' 땅은 어디서 공급받을 수 있는가? 한 가지 원천은 역사적 건축물이다. 예를 들어, '클럽 이탈리아노'는 '가리발디 하우스'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역사적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이 재산은 전체 대지가 2만5,000㎥지만, 매우 심각한 복구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클럽은 건물 복구에 필요한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 건물이 규정상 2층 높이까지 지을 수 있는 구역에 입지해 있기 때문에 가장 높은 값을 부른, 가령 앞에 언급한 호텔 소유자에게 5만㎥를 팔았다. 이 돈은 클럽 건축물 복구비용에 쓰였다. 결국 호텔 소유자는 시청의 행정적 개입 없이 역사적 건축물의 복구비를 지불하고 호텔의 나머지 층을 지을 수 있는 권리를 얻은 것.

‘솔 크리아도’로 재조성된 꾸리찌바의 식물원 (사진=강종우 제공)
‘솔 크리아도’로 재조성된 꾸리찌바의 식물원 (사진=강종우 제공)

‘솔 크리아도' 땅을 공급하는 또 다른 원천은 수목을 보호하면서 공동주택을 건설할 수 있는 녹지대들이다. 대규모 토지소유자가 한쪽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조건으로 땅의 일부를 주거지로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새로운 주택들은 공원에서 걸어서 닿을만한 거리에 있어 부가적인 이점이 생겼다. 그리고 시민들도 주말에 어슬렁거릴 수 있는 또 하나의 공원을 갖게 됐다. 시 당국 입장에선 빚을 지거나 세금을 올릴 필요가 없었다. 모두가 이긴 것. 그 덕분에 꾸리찌바는 다른 도시들이 엄청난 재정지출로 얻는 공공재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획득했다. 참으로 ‘재미와 장난으로 만든 꿈의 도시’, 꾸리찌바답다.

부동산문제의 또 다른 해법...공동체 토지신탁이 필요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다. 정부나 정치권, 전문가와 언론 다 나서 부동산시장 잡기에 혈안이다. 온갖 처방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마뜩한 묘수는 보이지 않는다. 갈수록 이대로 안 된다는 목소리만 높아진다. 무언가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동산 불패신화'. 곧잘 회자되는 말이다. 땅의 가치는 절대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믿음, 아니 멈출 수 없는 욕망을 품고 있다. 이런 기대가 가처분 소득을 넘는 부동산광풍을 부추겼다, 개인들의 기대치는 한없이 치솟지만, 땅이 제 가치를 갖도록 사회적 여건은 뒷받침되지 못했다. 부동산이 ‘영끌이’ 투기에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나 양산하는 애물단지가 된 꼴이다. 정작 필요한 건 기대와 욕심에 휘둘리던 땅의 역할을 바로잡는 일. 그렇다. 문제는 다름 아닌 바로 그 ‘땅’에 있다! 공동체의 발전과 가치를 반영하도록 회복시켜야 한다.

공동체토지신탁과 사회적경제 관계모형 (그래픽=강종우 제공)
공동체토지신탁과 사회적경제 관계모형 (그래픽=강종우 제공)

공동체 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 CLT). 지역 차원에서 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솔루션이다. 공동체 토지신탁은 땅의 영구적인 보유와 관리를 통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지역기반 비영리조직이다. 지역주민들에게 부담가능한 주택이나 건물을 보장해주는 기능을 갖는다. 우선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을 분리한다. 토지는 99년 장기임대로 하고, 건물은 판매 또는 임대한다. 저렴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환매 시 가격을 관리한다. 환매 가격은 공동체 토지신탁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판매자와 매입자 그리고 공동체 토지신탁 모두가 만족하는 가격결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셈.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가는 가치를 서로 주고받음으로써 개인과 공동체 간의 균형을 맞춰 간다. 공동체 토지신탁은 보유토지에 사용료를 거둬서 지역에 재투자한다. 다양한 공공시설을 공급하거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 투자한다.

미국에서는 2008년 9월 주택담보 부실 문제가 극심해지자 그 해결방안으로 급부상했다. 공동체 토지신탁을 통해 은행에 압류된 주택이나 토지 등을 매입하여 하우스 푸어들이 쫓겨나지 않도록 막았다. 장기적으로는 저렴함이 보장되는 지속가능한 주거환경을 조성했다. 또한 지역주민, 거주자, 공공기관이 결합된 의사결정구조(거버넌스)를 통해 다양한 지역의제들을 함께 풀어나가는 역할도 맡았다. 때문에 영국, 캐나다, 호주, 벨기에 등 공동체 토지신탁을 도입하는 나라들이 속속 늘어났다. 미국은 250여 개, 영국은 100여 개나 운영된다.

제주에서도 시작해보자. 공동체 토지신탁이야말로 지역사회 이익공유시스템이다. 지역 안에 공간적 접근성과 포용성이 확대되고 공동체 회복력도 나아진다. 양극화와 둥지 내몰림에 대응하고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시민자산화의 지렛대다. 이미 마을자산을 활용해서 폐교위기를 이겨낸 애월읍 봉성마을 문화주택 사례도 보인다.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이나 사회적부동산처럼 사회적경제조직을 활용할 수도 있다. 영국의 로컬리티(Locality)같은 비영리 혁신기구도 눈여겨보자. 주택기금이나 토지은행, 지역개발기금, 사회투자펀드 등 다양한 정책자원을 결합하면 성공가능성도 높다. 공동체토지신탁, 주택문제를 해결하고 토지가치를 공동체 방식으로 풀어가는 새롭고 혁신적인 방안 아닌가.

집은 풍성한 삶을 위한 접속이지 자산증식을 위한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사는 곳(Living Place)이지 사는 것(Buying Things)이 아니다.

땅은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결속시키는 도구이지,

사람들을 마을에서 떠나게 만들고 분열시키는 재화가 아니다.

현재의 위기 상황은 오히려 공동체와 땅이 제 역할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의로운 전환을 재촉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강종우 제주살림충전소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이 제주살림충소장이란 새로운 직함으로 '호박벌의 제주비상'을 월 2회로 늘려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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